◇ 류연정> 네, 지난 10월 9일이 연휴였죠.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한글날이었습니다. 우리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당연한 일상입니다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은 배움의 꿈이, 한글입니다. 오늘은 대구 삼일야학 김대희 교장과 함께 늦은 나이에 배움을 시작한 어르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삼일야학이 이어온 특별한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대희> 반갑습니다. 초대해 줘서, 열심히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 류연정>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오마이뉴스의 조정훈 기자, 함께하고 있습니다.
◆ 김대희> 안녕하세요.
◆ 조정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류연정> 한글날은 교장선생님한테는 좀 특별한 날일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 김대희> 그렇습니다. 평생을 글을 모르고 살다가 그 한을 풀고자 모인 사람들한테. 우리가 눈이 시력이 나쁘면 백내장 수술해서 앞에 훤하게 보이듯이. 그분들의 세상을 밝게 해주고. 단지 세상만 밝게 해주는 게 아니고 그분들에게 삶의 원동력을, 또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류연정> 그럼, 글을 가르치시고 한글을 또 다른 거 또 가르치세요?
◆ 김대희> 지금은 뭐, 한글도 가르치지만 또 학력이 없어 가지고 사회생활에 지장이 많은 분들한테 초등, 중등, 고등의 학력 취득을 하기 위한 검정고시도 운영하고 있고. 또 거기에 더 나아가 가지고 대학에 진학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배움의 공간이네요. 정말. 우리 조정훈 기자도 대구에 야학이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소개를 잠깐 해주시죠. 삼일야학 누가 지어서 어떻게 운영이 되어 왔는지.
◆ 김대희> 이게 1970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민들이 못 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문맹률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별로 학교를 하나씩 만들어라 해가지고 2년제 실업학교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기가 이제 저희들은 대구에서 1972년 5월에 가장 마지막에 학교를 설립했었는데 설립하고 보니까 운영 주체는 있는데 이 가르칠 선생님들이 없어가지고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류연정> 그럼, 선생님께서는 대학생 때부터 여기 합류하셨다고.
◆ 김대희> 네.
◇ 류연정> 그렇군요. 그럼, 꾸준히 하셨어요? 한 번도 공백 없이.
◆ 김대희> 그 당시에는 한 10년 정도 하면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 의무 교육이 되고. 또 복지 국가가 되니까 이런 학교가 없어지지 않겠나 했었는데 교육의 수요가 점점 더 늘어나고 지금은 성인들을 상대로 하는 그런 이제 수업이 되고 있습니다.
◆ 조정훈> 그 야학이라고 하니까 저도 옛날에 읽었던 전태일. 같은 경우 그 젊은 여공들과 함께 야학에서 공부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 류연정> 주로 노동자들이 그렇죠
◆ 조정훈> 주로 노동자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 김대희> 그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시골에서 도시에 와서 또 낮에 직장 다니고 밤에 공부하고 또 밤에 직장 다니면 낮에 와서 공부하는 형태로 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학교가 의무 교육이 돼서 다 해소가 되었고, 그 당시에 70년대 80년대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 나이 든 분들. 특히 여성분들. 또 남성분들도 많습니다만 남성분들이 낯가림이 많아 가지고 전체의 한 10% 정도밖에 남성분이 없고, 여성분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그렇군요. 뭐, 학교를 못 다니셨거나 다니셨어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배움을 잘 못 하신 분들이 지금 특히 어르신들 거의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교육부에서 뭐, 지원이 됩니까?
◆ 김대희> 지금 교육부 산하의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공모 사업으로 해서. 지방자치단체하고 매칭해가지고 2천만 원 한도인데, 지방자치단체가 재원이 적으면 그걸 못 합니다. 그래서 복지관에 한글만 가르치는 데는 300만 원, 300만 원 해서. 한 600만 원 정도 나오고 저희들 같은 경우에는 대구에서 유일한 야간 학교라고 해가지고 2천만 원인데 올해는 국가평생교육원은 그것도 이제 뭐 천만 원이 재원이 안 돼 800만 원을 주고. 구청에서 천만 원 해가지고 1,800만 원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 류연정> 공모 사업, 지자체 지원 조금씩 있고. 뭐, 일반 학교처럼 꾸준히 예산이 있고 그런 게 아니네요.
◆ 김대희> 없습니다. 이것도 이제 우리가 공모를 하면 5월 달에 예산 집행돼서 12월에 마감이 돼 버리니까 공백기가 또 생깁니다.
◇ 류연정> 그렇군요. 그러면 교사들은 다 봉사입니까?
◆ 김대희> 100% 자원봉사입니다.
◇ 류연정> 와 이거 대단하신데요. 봉사로 이렇게.
◆ 조정훈> 주로 어떤 분들이 이렇게 자원봉사로 교사를 하시나요?
◆ 김대희> 저희가 이제 학교 설립할 때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했었는데 한 10년 전부터 도저히 안 돼서, 우리 대학생들 중에 직장을 구해서 나가 있는 분들을 새로 모셔 와 가지고 그분들이 한… 반 정도.
◇ 류연정> 그럼, 직장 다니면서 저녁에는 공부 가르치시고 봉사로.
◆ 김대희> 교무부장하고 중요한 분 한 10분 정도는 전부 다 15년 차, 12년 차, 10년 차 내가 모시고 있고. 또 직장 사회인들도 있고. 얼마 전에는 경북대학교에 소아청소년과에 있던 의사 선생님도 와서 하다가, 요새는 세종에 이제 공무원으로 이제 같이 근무하고. 그래서 그런 분들이 와서 하고 나머지는 일반 대학생들이 와서 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지금도 또 새로운 교사 모집을 하시던데요. 그럼. 누구나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뭐 자격증이 있어야 하나요?
◆ 김대희> 누구나 할 수는 있는데 우리 학교하고 이념이 좀 맞아야 되고. 우리가 특별한 거는 자원봉사 교사를 모집하면은 3개월 동안 연수를 합니다. 연수를 해서 강의 시연도 하고 자기가 가르킬 커리큘럼도 짜지만. 우리 선생님들하고 화합하고 학생들하고 접근성 이걸 따져서 얼마 전에는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변호사 한 분이 와서 3주 동안 연수 잘 받고. 학교에서 회의 결과 도저히 안 되겠다고 다음에 모시겠다고 하니까. 그분이 장학금을 또 50만 원 기탁하고 물러나 주신,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 류연정> 그렇군요. 뭔가 이념도 잘 맞고, 어르신들하고 융합 그런 것도 또 중요하겠습니다.
대단하신데 그럼, 선생님은 지금 몇십년 간 봉사를 하시는 거예요?
◆ 조정훈> 그럼,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봉사만 하시면 생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 김대희> 제 사업은 따로 있습니다. 전에는 건설회사도 하고 또 택시도 경영을 했고. 주유소도 하고 이것저것 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으니까. 이제 그것도 이제 그만두고 현재는 이사업만 하는데. 원래 이제 집사람하고 약속을 50년째 하고 나면 물러나기로 했는데. 이걸 물러나니까 후배들이 맡을 사람이 없어서 재정은 내가 좀 보탤 테니까 누가 나서서 행정 업무를 좀 봐줄 사람을 찾았는데 없어서, 할 수 없이 제가 하고 있는데. 다행히 후배 한 7분들이 재정에 요새 일부 보탬을 좀 줘서 좀 원활하게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50년을. 그럼. 봉사하시고 사비도 투입을 하시고. 그야말로 이 봉사단체네요. 완전. 대단하십니다. 어르신들 보면서 또 그만큼의 감동이 있으니까 계속 하시는 것 같은데.
◆ 김대희> 그렇죠. 그분들이 글을 하나 알아가고 생활에 적응이 되고 또 본인이 느껴가지고 본인이 발전되는 거 보면 상당히 기쁘고. 한 분은 운전 면허, 대행 면허증 가지고 있는 분인데 한글을 모르는 분이 있어요. 내가 면허증을 어떻게 땄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분이 관광버스를 하는데 시 외에 가면은 전부 다 머릿속에 지도를 다 외워서 갔어야 됐어요.
◇ 류연정> 표지판을 못 읽으시는군요.
◆ 김대희> 표지판도 그렇고 내비게이션 칠 줄을 몰라서. 그래서 그분을 이제 가르쳐서 졸업을 하니까 자유자재로 해서. 그 고령에서 와서 수업을 했습니다. 지금도 현재 경산 진량 쪽에서 그다음에 청도에서, 김천에서 와서 수업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 류연정> 먼 길을 오시는군요. 지금 학교는 어디있죠?
◆ 김대희> 대구 서남시장.
◇ 류연정> 달서구.
◆ 김대희> 달서구인데, 서남시장 상가 건물 2층을 이제 쓰고 있습니다.
◇ 류연정> 근데 그 멀리서도 찾아오셔서 공부를 하시고. 수업이 다 밤에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요.
◆ 김대희> 밤에 9시 30분에서 40분에 마치면 대구역이나 그 또 서대구역에 가서 기차 타고 귀가를 하시고.
◇ 류연정> 정말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 조정훈> 그러면 학생 모집을 하는 것도 좀 쉽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 김대희> 학생 모집은 우리가 헌수막 광고도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해가지고. 그걸 자녀들이 보고 한다든지 주위의 사람들이 보고 그다음에 우리 졸업하는 사람들이 얘기를 해가지고. 그렇게 모집이 이루어집니다.
◇ 류연정> 그렇군요. 우리 어르신들이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꾸준하게 열정을. 교사들의 열정도 대단하지만 이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한데. 어르신들이 늦게 사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시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체력적으로도 또 기억 인지력에도 좀 어려움이 있으신데. 그럼에도 이렇게 한글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 김대희>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죠. 왜 그러냐 하면 평생을 주위 사람들한테 공부 못 했다 하는 걸 알리지 않으면 그게 살았기 때문에 그분이 대학을 나왔는지, 초등학교를 못 나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걸 자기를 내어 놓고. 이제 나쁜 말로 까발리고 시작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걸 주위에 알리는 게 첫째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고. 그다음에 50년, 60년 동안 의자에 앉아 공부를 안 해본 사람이 하루 3시간씩 앉아 있으면 그 참 견디기 힘든 과정을 마치는 그러한 용기. 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결석만 하지 않으면 합격은 학교에서 보장시켜 주겠다. 그래서 검정고시 기억률도 한 90% 정도. 어떤 분은 1년 만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다 합격해서 대학 가는 분이 있습니다. 한글이 좀 어려워 그렇지. 우리가 총 12년 과정을 늦으면 3년. 빠르면 2년 만에 대학 진학을 시킬 수 있는 그런 시스템으로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 류연정> 독하게 공부를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류연정의 마이크온은 지금 삼일야학의 김대희 교장과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직접 수업을 하시지는 않죠?
◆ 김대희> 예, 제가 얼마 전까지는 했는데. 지금은 직접 수업은 안 합니다.
◆ 조정훈> 선생님께서는 주로 어떤 과목을 가르치셨어요?
◆ 김대희> 뭐, 제가 제일 못하는 게 진짜 영어였는데. 영어 음악까지도 해 봤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70년대, 80년도에는 학생들이 거의 다 운동권이라고 봐야 되죠. 하다가 대모하는 데 휩쓸려서 검거되면 혼자 들어가서 그 수업을 다 해줘야 되고. 이 과목 저 과목을 했어야 되는데, 제가 주로 많이 하는 거는 과학하고 수학을 주로 했었습니다.
◇ 류연정> 그렇군요. 그럼, 대학생 때 처음에 이걸 접하게 되신 거는. 나는 야학에 가겠다. 이렇게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 김대희> 그렇지는 않았죠. 이 학교는 설립 했는데, 갑자기 보니까 자원봉사자 선생님을 못 구했어요. 그리고 또 그때 학생들은 뭐, 이념에 젖어 있어서 여기에 대한 저걸 뭐 하고 하는데. 그래서 친구들이 우연하게 여기 있는데 우리가 좀 봉사해 보자 해서. 친구 5명이 그럼 우리가 가서 하자 하다가 그 친구들은 뭐, 직장이나 다른 생활 때문에 다 떠나고 대구에 유일하게 내가 남아 있으니까. 어떻게 지금까지 오게 된 그런 상황입니다.
◇ 류연정> 그러니까요. 선생님을 하신다고 또 이 교장 선생님까지 하시기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 하여튼 그만큼 애정이 있으셨던 것 같고요. 한글에 대한 애정도 좀 특별하세요? 글을 가르치다 보니까 우리 한글의 특이점. 매력적인 점, 소중한 점.
◆ 김대희> 한글의 우수성은 우리가 지금 세계가 다 인정하다시피 그걸 알고. 그 한글이 이제는 뭐 K-문화가 돼가고 이 한글을 가지고 한국말로 가지만 세계에 가서도 다 통용이 되는. 그걸 그리고 또 일반 사람들한테는 일상 생활화 돼 있지만 글을 모르는 분들한테는 하나의 새 생명을 불어넣는 그래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게 훈민정음을 제정하신 세종대왕의 뜻대로 온 만민이 밝게 살 수 있는 그러한 글이 아니나 그리 생각합니다.
◇ 류연정> 처음에 한글이 창조됐을 때 그 뜻을 그대로 이제 실천을 하고 계시는군요.
◆ 조정훈>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도 시인이나 수필가가 나오셨다고요?
◆ 김대희> 네, 우리가 상주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오신 분이. 6개월, 8개월 만에 중고등 검정고시를 돼 가지고 그분이 방송통신학교에 또 어문학과를 가서 공부를 하고. 그다음에 대구교육대학에서 시 창작, 수필 창작 수업을 듣고. 내가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것을 책을 발간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재학생 중에서도 시인으로 등단해 가지고 시를 쓰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 류연정> 이분들은 한글 안 배우셨으면 어쩔 뻔했어요. 이렇게 재능이 있고 애정이 있으신데 그렇습니다. 또 저는 재밌는 점이 이제 젊은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거꾸로. 근데 오히려 학생들 어르신들한테서 배우는 점도 많을 것 같아요.
◆ 김대희> 많죠. 지금 대학교 1학년 같으면 19세입니다. 19세가 80세 상 할머니를 공부를 가르쳐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걸 이제 항상 구분을 엄하게 둡니다. 그런데 의외로 선생님들이 수업할 때는 단호해요. 단호하고 수업 마치고 나면 손녀같이 그분들한테 애정을 주고. 그래서 항상 우리 선생님들한테 하는 게. 학생들은 우리가 무료로 수업을 시키는데 선생님들한테는 회비를 내가 5천 원씩 받습니다. 그 받는 이유가 당신들은 인생을 배우기 때문에 인생 수업료로 받아야 된다. 특히 우리 그 야학에 나오는 선생님들이 가정이 부유한 선생님들은 없습니다. 자기가 전부 다 알바를 해서 벌어서 학비 조달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분들이 아, 내보다 더 어렵고. 내보다 더 한 분들을 내 하나의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는. 그러한 봉사 정신도 배우고 인생을 많이 배워서 우리 학교에 나오신 선생님들이. 요새 취업이 스펙이 최고 아니라 취업을 하면은 뭐, 거의 다 합격을 해서 가는 게. 여기서 가르친 경험과 인생 경험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 류연정> 그렇죠. 20데, 30대한테는 사실 이렇게 어르신들하고 소통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또 많지 않은데. 그 인생을 배우는 계기군요. 사회를 배우고.
◆ 조정훈> 야학이라는 게 저는 단순히 이렇게 가르치는 곳인 줄만 알았더니. 서로가 배우는 곳이네요.
◆ 김대희> 그렇죠. 우리가 이제 배움 공동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지식 공동체라고. 선생님들은 글을 가르치고 지식을 가르쳐 주지만 또 학생들한테는 그러한 인생 경험과 삶의 지혜를 배우는 서로가 배움을 나눠주는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평생학습 공간. 그렇네요. 그런데 어쨌든 운영하시는 과정은 쉽지 않으실 것 같은데, 가장 절실한 문제. 뭐 도와줬으면 하는 문제. 이런 것들이 있으실까요?
◆ 김대희> 글쎄요. 야학은 원래 뭐, 젊은 사람들이 맨몸으로 시작한 학교인데. 큰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만 가장 이제 안타까운 게 안정적인 교실을 좀 확보해 가지고 지금 우리 교실이 참 협소하거든요. 지금 이 스튜디오만한 곳에 12명이 수업을 합니다. 그래서 좀 상당히 열악해 가지고 그걸 한 10평 정도 좀 넓은 데를 하려고 보니까. 지금 저희들의 임대료에 한 4배를 줘야 됩니다. 그게 이제 지자체 보고도 한번 지자체에서 이걸 좀 해서 우리한테 줄 수 없겠느냐 하는데. 단, 우리가 필요한 조건이 역세권이라야 돼요. 지하철에 가까워야 어르신들이 다니셔 마치고 난 뒤에 바로 타고 영천을 가든지 김천을 가든지 해야 되니까. 그 시간이 맞는데 해서 우리 서남시장의 지하철 바로, 서남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우리 대구시나 달서구에서 이런 부분을 많이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국가에서도.
◆ 김대희> 지자체는 뭐, 아시다시피 대구 지자체가 원체 열악하니까. 타 시도에는 지원을 지금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에는 지방자치단체 세수가 엄청 많거든요. 나쁜 말로 작은 도시라도 대구시보다 예산이 더 많은 데가 있습니다. 그런 데는 뭐, 건물도 얻어주고 그다음에 나머지 학생들한테 장학금도 주고 지원금도 주는데. 대구는 열악하니까 그거는 뭐, 저희들이 감수하고 시작을 해야 되겠죠.
◆ 조정훈> 열악하신데 오히려 대구시를 더 걱정을 해 주시는.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 류연정> 어쨌든 문맹률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또 계속 소외되는 곳은 있잖아요.
◆ 김대희> 그러니까 저희들이 볼 때는 문맹률이라고 하는 게 통계적으로는 한 50% 허수가 나오거든요. 예를 들어서 물어봐도, 초등학교 안 나와도 중학교 나왔습니다 하니까. 그래서 그 허수도 감안하고. 또 앞으로는 이게 이제 학력 위주뿐만 아니고 AI 시대에 컴퓨터. 이제 2학기 때가 좀 조용할 때 검정고시가 내년 4월 달에 있으니까/ 이때 키오스크 연습을 해가지고 식당에서 음식도 주문하고 그다음에 민원 센터에 가서. 그 민원도 출력하고, 은행에 가서 돈 입출금도 하고. 그런 교육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류연정>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 저녁에도 수업하실 텐데.오늘도 또 파이팅 하시고. 또 다음에 자세한 소식 한번 또 더 들어보겠습니다.
◆ 김대희> 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류연정> 네, 저희 오늘 유튜브 이야기 생략하고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저희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 김대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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