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퐁피두 사업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전재수 부산시장. 송호재 기자부산시가 이기대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건립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면서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찬반으로 갈라져 정면충돌하고 있다. 박형준 전 부산시장과 국민의힘 부산시당, 시의원들은 '전임 시정 지우기'라며 전재수 부산시장을 향해 공세를 퍼붓는 반면, 조국혁신당 부산시당과 지역 문화예술·시민단체들은 시민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환영하고 나섰다.전재수 시장,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중단 결정
14일 전재수 부산시장은 3개월간의 숙의 과정을 거쳐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건립과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라 스칼라 극장 초청 공연을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시는 이기대 자연환경 훼손과 계약 조건의 공공성 부족, 불확실한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들었다. 대신 북항 복합문화전시공간 조성과 기존 미술관 역량 강화 등 지역 중심의 문화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임 시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한 대형 문화사업이 한꺼번에 중단되면서 정책의 연속성과 예산 운용, 지역 문화예술 발전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박형준 "뒤집기로 부산 미래 없다"…전재수 시정 정면 비판
퐁피두 분관 유치를 주도했던 박형준 전 부산시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재수 시정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형준 국민의힘 전 부산시장. 류영주 기자
박 전 시장은 "뒤집기로 부산의 미래는 없다"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없애는 데서 시정의 존재감을 찾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산의 미래를 위한 정책적 판단보다 전임 시정과의 차별화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사업 중단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다.
환경 훼손 논란에 대해서도 퐁피두 분관 예정지는 숲이 아닌 이미 개발된 공지라며 반박했다. 라 스칼라 공연 역시 상당한 후원금을 확보해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은 "부산 시민이 원하는 것은 전임 시장과 싸우는 시장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를 개척하는 시장"이라며 사업 중단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무책임한 문화 포기 선언…방향 전환 아닌 퇴보"
국민의힘 부산시당도 이날 김병근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전재수 시장의 결정을 '무책임한 문화 포기 선언'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국민의힘 제공부산시당은 "행정의 연속성을 깨트리며 세계적 문화 자산을 부산과 연결할 기회를 포기하고 시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특히 부산시가 내세운 숙의 과정에 대해 "라 스칼라 초청공연 찬성률은 75%인데, 비용을 줄여 추진하자는 의견에서 어떻게 곧바로 공연 포기라는 결론이 나온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과 환경, 계약에 문제가 있다면 입지·규모 조정과 계약조건 개선, 재원 확보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개선할 과제를 사업 포기의 명분으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또 퐁피두 분관 중단으로 남구 주민들이 기대했던 문화·관광 거점과 지역 발전의 기회가 사라졌다며 기존 미술관 역량 강화만으로는 이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시당은 "전재수 시장은 무엇을 포기하는지 설명했을 뿐, 그보다 나은 무엇을 얻는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방향 전환을 가장한 부산 문화 발전의 퇴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업 중단의 판단 근거와 재정적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잘못된 행정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부산 남구 시·구의원들 "전재수 시정과 맞짱"…예산 갈등까지 예고
국민의힘 소속 부산 남구 시·구의원들도 집단 반발에 나섰다.
14일 퐁피두 백지화에 대한 긴급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부산 남구 시,구의원들. 강민정 기자박미순·조상진·성현달 부산시의원 등과 남구 기초의원들은 이날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퐁피두 분관 건립 백지화 결정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특히 성현달 시의원은 "지금 전재수 시정은 자신들의 공약사업을 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예산을 자르고 있다"며 "이번 퐁피두 분관 중단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시의회는 예산과 관련해 협조할 수 없다"며 "전재수 시장과 시의회는 맞짱을 뜨겠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기대가 지역구인 박미순 시의원도 "퐁피두 분관은 남구의 문화·관광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 핵심 사업이었다"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의원들은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쌓아온 국제적 신뢰까지 훼손될 수 있다며 사업 철회에 따른 행정적·재정적 영향 공개와 남구 발전 기회 상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부산 조국혁신당 "박형준 독선적 문화행정에 대한 엄중한 평가"
반면 조국혁신당 부산시당은 퐁피두 분관 백지화 결정을 적극 환영하며 박형준 전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조국혁신당 부산시당(위원장 박용찬)은 이날 논평에서 "이번 결정은 밀실행정과 막대한 재정 부담, 지역 예술계 소외, 이기대 자연환경 훼손에 맞서 목소리를 높여온 시민사회와 지역 예술인들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결정은 박형준 전 시장의 독선적이고 불투명한 문화행정에 대한 엄중한 평가이기도 하다"며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충분한 공론화와 검증 없이 추진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은 부산의 문화정책이 해외 유명 문화시설 유치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예술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부산시에 그동안의 사업 추진 과정과 예산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기대의 생태적 가치를 보전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문화예술·시민단체 31곳 "혈세 낭비 막은 책임 있는 결단"
지역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에서도 부산시의 결정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부산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31개 문화예술·시민단체는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퐁피두 분관 건립 중단과 라 스칼라 공연 철회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석 달간의 폭넓은 숙의 과정을 거쳐 시민사회와 지역 문화예술계의 우려를 경청한 용기 있고 책임 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퐁피두 분관이 들어서기로 했던 이기대 일대. 부산시 제공단체들은 퐁피두 분관의 경우 시비 건립비 1100억 원과 연간 운영비 125억 원이 부담될 수 있었고, 이기대 자연환경 훼손 우려도 컸다고 주장했다.
라 스칼라 공연 역시 100억 원에 달하는 사업비와 불확실한 협찬, 지역 예술인 양성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중단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부산오페라하우스를 해외 유명 공연을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과 기술 인력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극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결단은 멈춤이 아닌 방향 전환"이라며 "세계적인 공연을 단순히 소비하는 도시를 넘어 세계적인 작품을 부산의 힘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적 문화시설 유치' vs '지역 문화 자생력'…정치 쟁점 비화
이번 논란은 단순히 퐁피두 분관 건립 여부를 넘어 부산 문화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대립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박형준 전 시장과 국민의힘 측은 세계적인 문화시설 유치를 통한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과 관광 활성화, 국제 협력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조국혁신당과 사업 중단을 환영하는 시민단체들은 막대한 재정 부담과 자연환경 보존, 지역 예술인의 참여 확대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이 예산 협조 거부까지 언급하면서 퐁피두 분관을 둘러싼 갈등이 향후 부산시의 주요 정책과 예산 심의 과정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전재수 시장은 앞서 "전임 시장의 정책이라고 무조건 뒤집지 않고, 이미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며 시민 체감과 공공성, 재정 및 행정의 책임성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퐁피두 분관 백지화를 계기로 전임 시정의 정책 계승 문제와 부산 문화예술 발전 방향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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