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리아 독재 정권의 붕괴가 김정은에 던진 연쇄적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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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대사가 지난 달 17일~20일 함경북도 청진시와 라선경제무역지대 그리고 두만강 기차역을 잇따라 방문했다. 러시아 대사가 북러 교류 협력의 중심지로 떠오른 북한 북동부 접경지역을 시찰한 것은 북한과의 협력 확대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군 1만여 명을 파병받은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과 인적·물적 교류를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캡처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대사가 지난 달 17일~20일 함경북도 청진시와 라선경제무역지대 그리고 두만강 기차역을 잇따라 방문했다. 러시아 대사가 북러 교류 협력의 중심지로 떠오른 북한 북동부 접경지역을 시찰한 것은 북한과의 협력 확대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군 1만여 명을 파병받은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과 인적·물적 교류를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캡처
북한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두만강 기차역은 현재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북·러간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북·러간 여객 열차도 5년 만에 운행이 재개됐다. 러시아의 하산역에서 두만강 철교를 건너 북한 쪽으로 들어오면 첫번째로 도착하는 기차역이 바로 두만강역이다. 양국간 무기 거래에 철도가 이용될 경우에도 반드시 두만강역을 거쳐야 한다. 북한은 두만강역 건물을 서둘러 신축해 오는 4월 하순에 운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올해 북·러간 협력은 지난해보더 더 활발해질 것이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 일행이 지난달 두만강역을 방문해 역사 신축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북한의 두만강역을 출발해서 두만강을 건너 국경을 넘으면 러시아의  첫 번째 역인 하산역이 나타난다. 두 역 사이의 직선 거리는 불과 3 km다.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페이스북 캡처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 일행이 지난달 두만강역을 방문해 역사 신축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북한의 두만강역을 출발해서 두만강을 건너 국경을 넘으면 러시아의 첫 번째 역인 하산역이 나타난다. 두 역 사이의 직선 거리는 불과 3 km다.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페이스북 캡처
마체고라 대사가 두만강 접경지역 방문에 나선 지난 달 1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서신을 보냈다. 편지에서 푸틴은 지난해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의 이행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현 시대의 위협과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올해도 더욱 일치시켜 나가자"는 내용도 담았다. 러시아가 앞으로도 북한을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지원할테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쓸 무기와 병력을 계속 보내달라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달 31일 푸틴에게 새해 인사를 겸해 답신을 보냈다. 김정은은 양측의 "가장 진실하고도 뜨거운 동지적 신뢰"를 운운하며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또 "올해가 러시아가 신나치즘을 쳐부수고 위대한 승리를 이루는 21세기 전승의 원년이 될 것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편지를 보면 북한과 러시아의 동맹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연말에 서신을 교환하면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파병 한 달여 만에 북한군의 사상자가 이미 1천 명을 넘어선 가운데, 러시아의 추가 파병 요청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연말에 서신을 교환하면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파병 한 달여 만에 북한군의 사상자가 이미 1천 명을 넘어선 가운데, 러시아의 추가 파병 요청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굳건함이 실상과 다를 수도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27일 러시아 쿠르스크에 파병된 북한군이 1주일 새 1천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4일 앞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한군 사상자가 이보다 3배나 많은 3천 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올해 들어 지난 4일에도 러시아 측이 북한군 보병 및 러시아군 낙하산 부대로 구성된 1개 대대를 단 이틀 만에 잃었다고 주장했다.  
 
북한군은 지난해 11월 5일부터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불과 1달 반 만에 총 1만 1천여 명의 병력 중 10% 정도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휴전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전선에서는 여전히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마무리 단계에서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김정은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파병은 김정은에게 정권의 운명을 건 결정이나 다름 없다. 러시아의 북한군 8천 명 추가 파병 요청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승리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말은 단지 푸틴을 위한 덕담만은 아니다. 김정은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 달 초 전해진 시리아 독재 정권의 몰락 소식으로 김정은은 이미 머릿속이 복잡해진 상태일 것이다. 반군에 의해 축출된 시리아의 아사드 세습 정권은 북한의 중요한 무기 판매 시장이자 중동 외교의 핵심적 교두보였다. 김정은은 지난해 2월 쿠바가 북한의 반대를 뿌리치고 한국과 전격 수교했을 때 이상으로 경제적, 외교적, 심리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아사드 정권은 그만큼 북한에 특별했다.
 
북한은 지난 1973년 이스라엘과 전쟁중이던 시리아에 군용기 조종사와 탱크 조종사, 미사일 전문 요원 등 530명을 파병했다.(로이터 통신, 2018년 6월 3일 보도) 당시는 이번에 쫒겨난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같은 세습 정권인 북한은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에게 핵 무기 기술까지 넘겨줬다. 시리아가 북한으로부터 전수한 기술로 핵 개발을 시도하다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이 지난 2008년 1월에 드러났다. 
 
2011년 이후 시리아 내전 시기에도 북한은 '학살자' 아사드에게 병력은 물론 화학무기 기술까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드 정권은 13년 동안의 내전에서 전투기와 탱크, 화학무기를 동원해 자국민 약 62만 명을 죽였다. (뉴욕타임스신문, 2024년 12월 11일자 보도) 그런 아사드 정권이 결국 무너졌고 북한은 동맹이나 다름 없는 시리아를 상실하게 됐다.

2024년 12월 8일 시리아의 아사드 일가 세습 독재 정권이 53년 만에 무너졌다. 사진은 당시 시리아의 주요 도시인 홈즈에서 반군들이 공중으로 총을 쏘며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 연합뉴스2024년 12월 8일 시리아의 아사드 일가 세습 독재 정권이 53년 만에 무너졌다. 사진은 당시 시리아의 주요 도시인 홈즈에서 반군들이 공중으로 총을 쏘며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김정은이 더 충격을 받았을 일은 따로 있다.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의해 축출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군은 지난 해 11월 말부터 기습 공격을 시작해 정부군의 거점 도시들을 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도 안 돼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장악하고 정부군을 몰아냈다. 시리아 영토 안에 해군과 공군 기지를 갖고 있는 러시아군은 그동안 반군 진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집중하느라 시리아 내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반군에 쫓기던 아사드 일가는 결국 시리아 내 러시아 공군 기지를 이용해 러시아로 도주했다.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는 하마터면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같은 신세가 될 뻔했다. 지난 2011년 카다피는 하수구에 숨어있다가 시민군에 의해 끌려나와 총살을 당했다. 
 
내전 기간에 러시아는 시리아 내의 공군 기지를 활용해 반군에 공습을 퍼부었다. 푸틴 대통령은 독재자 아사드의 든든한 후견자였다. 이런 배경에는 옛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온 러시아와 아사드 부자 정권의 동맹급 유대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이번에 축출된 독재자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 1971년 지중해 연안의 타르투스 해군 기지를 당시 소련에 내주고 군대의 주둔까지 허용했다. 1980년에는 당시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다. 위기 시 군사 협력이 규정돼 있는 이 조약은 아사드 정권의 몰락 직전까지 유효했다. 
 
가깝게는 지난 해 6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과 만났다. 시리아 반군 진압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정작 아사드 정권이 몰락할 때 푸틴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4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당시 푸틴은 시리아와 관련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아사드 정권은 이 회담 이후 4개월 정도가 지난 12월 8일 붕괴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도와줄 처지가 되지 못했다. '학살자'로 불리는 아사드는 가족들을 데리고 현재 러시아로 도주한 상태다. 러시아 대통령실 제공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4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당시 푸틴은 시리아와 관련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아사드 정권은 이 회담 이후 4개월 정도가 지난 12월 8일 붕괴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도와줄 처지가 되지 못했다. '학살자'로 불리는 아사드는 가족들을 데리고 현재 러시아로 도주한 상태다. 러시아 대통령실 제공
친러 아사드 정권의 몰락으로 러시아와 시리아의 관계도 달라지게 됐다. 우선 시리아에 위치한 러시아의 흐메이님 공군기지와  타르투스 해군기지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난달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보면, 러시아군이 지중해 연안의 흐메이님 공군기지에서 방공 미사일과 공격용 헬기를 수송기에 실어 리비아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의 지중해 동쪽에 해안에 위치한 러시아 해군의 전진기지 타르투스 군항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시리아 반군의 주도 세력인 하야트 타흐리흐 알샴(HTS)과 군사 기지 문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만약 시리아에서 운영 중인 공군 및 해군 기지를 상실한다면 러시아는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두 곳은 그동안 러시이군의 장거리 해외 진출을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 영토에 위치한 러시아의 타르투스 해군 기지.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러시아 해군의 지중해 요충지인 타르투스 기지의 철수 여부가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지중해 연안의 시리아 영토에 위치한 러시아의 타르투스 해군 기지.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러시아 해군의 지중해 요충지인 타르투스 기지의 철수 여부가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에게 있어 아사드 통치 하의 시리아는 옛 소련 연방 소속이 아니면서도 동맹 수준의 관계를 맺고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국가였다. 이런 점은 북한도 비슷하다. 북한과 시리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의 무조건 지지해 왔다. 지난 2022년 6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 지역에 괴뢰 국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세웠을 때 가장 신속하게 공식 인정한 나라도 북한과 시리아다. 두 국가 모두 러시아에 의탁해 서방에 대항해왔다. 세습 독재 정권이라는 점도 똑같다.
 
이런 아사드 정권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북한에도 불길한 소식이다. 더구나 북한은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보내 러시아에 '올인'하고 있다. 순망치한의 관계로 불리는 중국과 거리를 두면서까지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계속 든든한 후견국 역할을 할 것인지 김정은이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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