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끝까지 궤변…윤석열에겐 지킬 명예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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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사태 43일만에 내란 우두머리 체포영장집행

노컷 유튜브 캡처노컷 유튜브 캡처
12.3 내란사태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이 15일 오전 10시 33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됐다. 만시지탄이다.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3일 만이자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1달 하고도 하루가 지나서야 내란 수괴에 대한 직접수사가 가능해졌다.
 
내란 피의자에 대한 당연한 절차인 소환 혹은 체포를 둘러싸고 이렇게나 많은 국가자원을 낭비시키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윤석열은 검찰과 공수처의 소환에 잇따라 불응한 것도 모자라 지난 3일엔 법원이 발부한 1차 체포영장의 집행도 물리력을 동원해 막아섰다. 결국 이날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경찰은 1200명 가량의 인원과 장비를 동원해야 했다. 여론전에 따른 국론분열이라는 폐해도 낳았다.
 
체포영장 집행이 성공한 이유는 경호처 지휘부의 분열과 직원들의 동요 때문이다. 박종준 전 경호처장과 이진하 경비안전본부장의 경찰 출석을 계기로 지휘부 분열이 시작되더니 시간이 갈수록 다수의 경호처 직원들은 강경대응 동참을 거부했다. 심리적 붕괴가 명령체계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날 공수처와 경찰의 체포작전이 진행중일 당시 상당수의 경호관들은 대기동에 머물거나 휴가를 갔고, 수방사 55경비단도 경찰체포조의 관저 출입을 막아서지 않았다. 이 모든 배경에는 '윤석열 사수'의 명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란죄 피의자에 대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막아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체포를 방해하면 오히려 경호관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수처 가는 길에도 억지와 궤변 가득찬 영상메시지

공수처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통령 윤석열은 전혀 대통령 답지 못한 비루한 뒷모습을 남겼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그 모습 그대로다. 체포조가 턱밑까지 들이닥치자 그제서야 체포가 아닌 자진출두 형식으로 나가겠다며 협상을 제시했다고 한다. 법원이 발부한 것은 '체포영장'이기 때문에 영장집행만이 의무일 뿐 공수처가 자진출두를 협상할 권한은 없다. 또한 검찰과 공수처 출석요구에 불응한 기간과 이후 이어진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신경전의 기간을 합치면 윤석열에게 제발로 걸어나갈 기회는 널려있었다.
 
미리 녹화해 발표한 영상 메지시도 억지와 궤변으로 가득하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체계를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불법적이고 무효인 이런 절차에 응하는 것은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마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도 했다. 전날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의 호소문에 이어 아무말 대잔치나 다름없다.
 
불미스런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면 당당하게 수사기관에 출석하면 그만이었다. 현직대통령이 위헌적인 내란사태를 일으키고도 '헌법과 법체계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를 운운할 수 있는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 공소장에 따르면 12.3 내란사태 당시 군이 탄약고에서 18만 발 이상의 탄약을 불출(拂出)했다고 한다. 1공수여단이 5만여발, 3공수여단과 9공수여단이 13만여발이라고 하니 더 많을 수도 있다. 무력시위로 관저에서 버틴 약 한 달간의 기간을 돌아볼 때 '만에 하나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이라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전날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대통령 윤석열을 사법체계의 피해자인냥 호도했다. 정 실장은 "지금 윤 대통령의 처지는 고성낙일(孤城落日)이라며 "여전히 국가원수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윤 대통령을 마치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기방어권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헌법질서를 파괴한 내란피의자가 수사와 재판 등 법질서를 조롱하고 있는데도 체포하지 말라는 말인지 혼란스럽다. 한남동 공관 주변에 성을 쌓은 사람도, 스스로를 고립시킨 사람도 윤석열 본인이다. 자기방어권 관련 주장도 체포 및 구속적부심, 구속영장실질심사 등 법적으로 얼마든지 보장돼 있는 만큼 근거없는 발언이다. 정진석 실장의 호소문은 국민이 아니라 윤 대통령을 향했어야 했는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경호처 가족들의 눈물…제 식구도 감싸지 못한 윤석열

연합뉴스연합뉴스
일국의 대통령인 윤석열은 국민의 눈물은 고사하고 주변 참모나 공직자 가족들의 눈물도 닦아주지 못했다. 오히려 사지에 내몰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분류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주요 군 지휘관들이 모두 구속됐다. 그런데 윤 대통령측은 "총을 쏴서라도 국회에 진입하라"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며 수하들의 진술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비상계엄 직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저는 이번 계엄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건 윤석열이 아니고 허깨비란 말이었나.
 
특히 근거리에서 자신을 지키는 경호관들에게 강경대응을 주문하며 사지로 내몰다 결국 그들에게마저 버림받은 자로 전락했다. 제식구인 경호처 직원들마저 감싸지 못한 윤석열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낳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한 13일 현직 경호관 아내의 절절한 심정이 담긴 편지가 공개됐다. 경호관 아내는 "최근에는 윗선으로부터 중화기 무장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끔찍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며 "어제도, 오늘도 지옥같은 마음이다. 변함없는 상황에서 내일이 온다는 사실은 또다른 고통"이라고 적었다.
 
남편의 안전문제와 생계불안으로 가정의 평화가 깨질 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떨리는 심정을 대통령 윤석열은 과연 느끼고 있을까? 제식구의 마음도 감싸지 못한다면 이 모든 부조리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피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 윤석열의 마지막 영상메시지에서 그런 기대를 접는다.
 

내면의 결핍이 불러온 불명예

15일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수사처로 압송되고 있다. 과천=박종민 기자15일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수사처로 압송되고 있다. 과천=박종민 기자
대통령 윤석열과 일부 참모들은 마직막 순간까지 대통령의 명예에 집착했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전날 호소문에서 "공수처와 경찰의 목적이 수사인가, 대통령 망신주기인가"라고 따졌고, 윤석열 본인은 이날 영상메지시에서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불법적이고 무효인 절차에 응하는 것은…"이라며 유난히 대통령의 격을 앞세웠다.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직전까지도 호송차를 이용할지, 경호차를 이용할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40여년 전으로 되돌릴 내란사태를 감행하고도 대통령의 격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K-컬쳐의 성과와 노벨문학상 위업,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위상이 만들어낸 국격을 일거에 허물어뜨린 게 위헌적 내란사태였다. 그랬던 그가 유난히 대통령의 명예에 집착한다.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내부에 깃든 명예'라고 하지 않던가. 명예와 양심은 같이 간다는 말일 것이다. 나라가 어찌되든 주변이 어찌되든 자신 만의 세계에 갇힌 모습을 보인 윤석열, 그의 불명예는 내면의 결핍에서 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외신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윤 대통령이 체포된데 대해 "법치에 관한 양국 공동의 약속을 재확인하며, 대한민국과 그 국민이 헌법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기울인 모든 노력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진행된 2시간 반 동안의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영상녹화도 거부했다고 한다. 2년 반 동안 일국의 대통령으로 직무를 수행했고, 누구보다 법을 잘 알만한 법조인 출신으로서 사법절차에 협조하는게 일말이나마 명예를 되찾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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