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운전' 주의보 급부상…제2의 이경규 사태 막으려면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2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이경규, 처방약 복용 후 다른 사람 차량 운전
CCTV 보니 접촉사고 내고 거리서 '비틀'…불구속 송치
처방약 먹고 운전했다가 벌금형 받은 다른 사례도 더러 있어
"초기 복용·증량 시 주의…의·약사에게도 설명 의무 있다"
"운전 금지 처방약 지정 필요…연구 통해 기준 정해야"

방송인 이경규씨(64). 연합뉴스방송인 이경규씨(64). 연합뉴스
최근 방송인 이경규씨(64)가 약물 운전 혐의로 검찰에 넘겨지면서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하고 운전했을 때도 운전자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급부상했다.
 
사실 이경규씨 외에도 의사와 약사의 처방으로 받은 약물을 먹고 운전했다가 벌금형 등이 내려진 사례들은 더러 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환자와 의·약사 모두 약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처방약이어도, 몰랐어도…이경규 '약물 운전' 검찰 송치 

연합뉴스연합뉴스
경찰과 이경규씨 소속사 에이디지컴퍼니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이씨는 감기 기운을 느껴 자신의 차를 몰고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한 병원에 다녀왔다. 이씨는 전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감기 기운에 더해, 10년째 앓고 있는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 일전에 처방받았던 약도 먹은 상태였다.
 
그렇게 병원 진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이씨는 차 안에 있던 가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가방을 찾기 위해 다시 병원 쪽으로 향했다.
 
병원 앞에 도착하자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경찰이 이씨를 찾고 있던 것. 가방을 찾으러 돌아갔을 뿐인데, 오히려 이씨는 '차량 절도범'으로 신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영문도 모른 채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알고 보니 이씨가 운전한 것은 다른 사람의 차량이었다. 차종도, 색상도 모두 똑같은 차량이다. 국내에서 흔치 않은 회색 계열 색상의 외제차였기 때문에, 병원 앞에 똑같은 외형의 차량이 있을 줄 몰랐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차량 문도 열려 있고 시동도 잘 걸리니 다른 차량일 것이라곤 더욱 의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운전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오해를 풀었다. 서로 사과도 주고받고 상황은 단순한 소동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또 한 번,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경찰이 이씨를 상대로 진행한 약물 간이시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씨는 10년째 먹은 공황장애 약을 먹었을 뿐이라며 억울한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경찰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한 약물 정밀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자, 경찰은 이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지난달 24일 불러 조사했다.
 
이씨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나오며 취재진을 만나 약물 운전 혐의를 인정했다. 이씨는 "공황장애 약을 먹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것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마약 등 불법 약물을 복용한 것은 절대 아니라면서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정식으로 처방받은 약을 먹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조사를 받고 돌아간 다음날 이씨가 차량 절도 신고를 당한 당일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이씨는 병원에 가기 전 들른 세차장 벽을 살짝 들이받는가 하면, 병원 앞에 주차하는 과정에서 작은 버스와 부딪히기도 했다. 차량에서 내린 이씨는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한 뒤 지난 2일 검찰에 이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운전자가 과로, 질병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처방약을 먹고 운전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면 수사 대상이다.
 

처방 진통제·수면제 먹고 운전, 벌금형…"죄책 가볍지 않아" 

연합뉴스연합뉴스
이씨처럼 처방약을 복용한 뒤 운전대를 잡았다가 벌금형을 받은 사례들이 간간이 발생한다.
 
지난해 8월 2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단독(신한미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받는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23년 9월 11일 약물을 복용한 채 승용차를 몰고 새벽 1시 57분쯤 서울 서대문구에서 마포구까지 약 7㎞ 거리를 이동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날 있었던 교통사고의 통증을 완화하고자 과거 병원에서 처방받은 코데인 성분이 포함된 진통제를 복용한 게 문제였다. 재판부는 "복용한 약물은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은 것이고, 두통과 어지러움을 해소하기 위해 복용한 것이어서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면서도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함으로써 결국 교통상 위험이 발생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2023년 9월 28일 오전 10시 45분쯤 졸피뎀 성분이 포함된 약물을 복용하고 울산 중구에서 700m가량을 운전한 B씨는 지난해 11월 8일 울산지법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약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서도, 운전이 곤란한 상태로 운전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향정신성약·항히스타민제 주의해야…"인식 개선 홍보·입법 등 필요"

연합뉴스연합뉴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약물 중에는 수면·진정 효과가 있는 약도 있고, 알레르기약이나 진통제 중에는 항히스타민 효과 등에 따라서 졸림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약이 있다"며 "(이러한) 약들을 복용할 때는 운전 중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줄 수가 있기 때문에 (특히) 초기 복용할 때와 약을 증량할 때는 꼭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경규씨가 복용한 벤조디아제핀은 진정 작용으로 졸음이나 집중력 저하 등을 유발해 운전 시 주의해야 하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벤조디아제핀은 항불안제로서 불면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치료에 쓰인다. 이외에 B씨가 복용했던 불면증 치료제 제 졸피뎀 등도 운전 시 주의해야 하는 대표적인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다만, 졸피뎀, 코데인 성분, 벤조디아제핀 등 처방약을 복용한 채 운전했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기준은 약을 복용한 뒤의 상태다. 멀쩡하게 운전할 수 있는 상태라면, 수사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 반대로 항히스타민제 등 감기약으로 많이 처방되는 약을 먹더라도 운전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가 된다면, 처벌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처방약을 먹고 운전해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환자, 의·약사, 국가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백 교수는 "의사와 약사에게도 운전을 할 때 사고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설명의 의무가 분명히 있다"며 "환자와 의·약사 양쪽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약사에게는 약을 조제하면 약사법 제24조 4호에 따라 말이나 복약지도서를 통해 복약지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약값에는 이에 따른 복약지도료도 포함된다. 다만 의사에게는 복약지도에 관한 규정이나 의무 사항은 없다.
 
백 교수는 "(약물의 위험성에 대한) 홍보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며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등 국가기관에서 '약물을 복용할 때는 위험성을 숙지하고 주치의와 상의하라'는 것을 알리는 등 사회적 캠페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프렌즈 법률사무소 이동찬 변호사는 "많은 경우 (의·약사가 환자에게)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권유하거나 운전을 조심하라고 안내할 뿐이다"라며 "따라서 많은 경우 환자들이 이 약물을 먹고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것을 예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불법 마약류 외에도) 운전을 금지하는 약물을 지정할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면 수면제 같은 경우는 먹고 12시간 이내에 운전을 금한다거나, 항불안제 같은 경우에도 이제 의사분들에게 그런 부분 고지를 강화하는 (입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약물을 먹었을 때) 운전을 제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통계 같은 연구가 약하다"며 "음주운전 기준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연구를 통해 위험한 약물을 어느 선까지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금부터 알아가야 할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2

1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