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민초결사대'는 12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부정선거 규탄' 행진 집회를 열었다. 시민들은 태극기·성조기와 '천멸중공(간체자) 차이나 아웃(영어)'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송선교 기자12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명동 대로변에서는 "짱X, 북괴, 빨X이들 대한민국에서 어서 빨리 꺼X라"라는 가사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200여 명의 사람들은 명동에 모여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명동에 있던 관광객들과 시민들은 모두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거나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영상을 찍었다.
이날 집회는 보수단체 '민초결사대'가 주최했다. 서울 중구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명동역, 을지로입구역, 시청역 등을 차례로 지난 뒤 다시 중앙우체국 앞으로 돌아오는 행진 형식으로 진행됐다. 집회 신고는 '부정선거 규탄'이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향한 혐오 정서를 분출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날 집회 예고 포스터에도 '천멸중공(天滅中共)'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이들은 행진하며 앞선 노래를 부를뿐더러 "부정선거 중국침략",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 "차이나 아웃(China Out)" 등 구호를 외쳤다. 또 태극기·성조기 등을 손에 쥐고 '천멸중공 CCP 아웃', '차이나 아웃(China Out)'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왜 세상은 중국을 혐오하나, 중국만 모른다'라는 내용이 영어로 적힌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이러한 시위를 '깽판'이라고 비판했던 것도 이들 사이에 화제거리였다. 집회에 참여한 중년 남녀는 행진이 시작되기 전 "이재명이 우리 보고 '깽판'이라더라. 웃기다", "그래서 사람이 적게 나온 거냐" 등 대화를 주고받았다.
경찰은 집회에서 이뤄지는 혐오 표현과 관광객·상인 등과의 충돌 관리에 평소보다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명동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경력 10여 명이 시위대가 못 들어가도록 막고 서 있었다. 또 집회에서 "짱X", "차이나 아웃" 등 혐오 표현이 나오면 현장에서 방송을 통해 "여러분은 관광객·시민들과 마찰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인 언사를 자제해 달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호주에 거주하다 한국으로 여행 온 20대 중국인 연인은 굳은 표정으로 행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호주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사이가 아주 좋은데, 이렇게 나쁘게 대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집회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우리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모욕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호주에서도 최근 백인우월주의 시위가 있었는데, 그건 소수의 의견일 뿐이었다"며 "지금 이 (반중) 집회도 비슷하게 소수의 의견일 것이라 생각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또 "대통령이나 정치계를 향한 분노를 우리(중국인)에게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왼쪽부터 지난 5일과 12일 보수단체 민초결사대의 금요일 집회 예고 포스터. 중국 국기를 공격하는 그림과 '때려잡자', '천멸중공(간체자)' 등 문구가 있다. 인스타그램·스레드 캡처李 대통령 "깽판 아니냐"…경찰은 '제한통고'
이 같은 반중 집회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에서 진행되고 있다. 화요일에는 보수단체 '자유대학'이 지난 6월 24일부터, 금요일에는 민초결사대가 지난 6월 8일부터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월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4월까지는 명동에서 '멸공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집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 집회들에서는 명동 관광객·상인과 시위대 간에 충돌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날 집회에서는 이러한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행진 대열이 명동길을 지나지 못하도록 경로를 바꾸는 제한통고를 민초결사대에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열은 주요 상인들과 관광객이 몰려 있는 명동길을 지나지 않았다. 이날 행진이 시작되기 전 진행자가 제한통고로 경로가 변경됐다고 알리자 일부 참여자들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제한통고는 매주 화요일 유사한 집회를 여는 '자유대학'과 '선관위서버까운동본부' 등에도 내려질 예정이다.
경찰이 제한통고를 내린 주된 이유는 전날 집회 제한을 요청하는 공문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는 전날 "명동 일대 이면도로에서 시위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취지의 공문을 남대문경찰서에 보냈다.
협의회는 공문에서 "좁은 이면도로에 200~500여 명의 시위대가 동시에 지나가면서 안전사고 발생이 우려된다"며 "시위 도중에 특정 국가 관광객들을 겨냥해 폭언과 피켓 시위를 실시해 관광객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상인들은 협의회에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박수돈 사무국장은 "명동 골목에서 시위대가 중국인 관광객에게 직접 시비를 걸고, 이를 제지하는 상인들을 상대로 또 시비를 거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금 관광객을 늘려야 하는데, 특정 국가 관광객을 모욕하는 집회를 하고 있더라"며 "기존 제도로 제재할 방법이 없냐, 영업방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깽판이지"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집회 중) 업무방해죄 구성 요건에 해당할 정도의 행위가 있으면 당연히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는 있다"면서도 "집회 상황마다 사람들의 행위가 다르므로, 단순히 '집회시위나 행인·상인과의 마찰이 업무방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현재까지 (이 집회와 관련해) 업무방해로 수사가 진행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업무방해 성격의 행위가) 집회마다 누적되는 경우 다르게 볼 수 있다"며 "오늘 제한통고도 상인·관광객들과의 충돌이 누적됐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업무방해 여지가 있는 행위가 누적되며 제한통고가 내려졌다는 설명이다.
"혐오 표현은 차별·폭력으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이어지는 반중 집회가 혐오와 차별을 더 악화시킨다며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민센터친구 이진혜 변호사는 "혐오 표현은 차별 행위와 폭력 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그런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규제의 필요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시위에 정통한 A 변호사는 "(집회의) 표현이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면, 지금 중국인들에게는 (집회) 자체가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일반 집회와) 다른 잣대를 대서 (경찰이) 집회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 표현만으로 법적 제재를 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이 변호사는 "지금 한국에는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법률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물리적인 충돌이 있지 않으면 현행법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매주 열리는 반중 집회에서 집회 참여자가 경찰에 입건된 사례는 한 번밖에 없었다. 자유대학 관계자는 지난 7월 22일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이빙 중국대사의 얼굴이 인쇄된 중국 국기 모양 현수막을 찢었다가 남대문경찰서에 입건됐다. 형법 제108조는 한국에 파견된 외국사절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A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혐한 집회가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를 규제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으로 시작해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난 2020년 혐한 시위를 벌이고 재일조선학교를 비방하는 발언을 한 재특회 교토 지부장에게 벌금 50만 엔이 선고됐다.
이어 이 변호사는 "독일 등 유럽에서도 혐오 표현 규제를 엄하게 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의 입법 예시가 부족해서 우리나라에서 못 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