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80주년'…창업주·선대회장 리더십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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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한진그룹 창립 80주년 맞아
'수송 불모지'의 하늘·땅에 길 닦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신념을 갖고 추진한 창업자의 철학이 면면히 살아 숨쉬는 기업이야말로, 훌륭한 예술작품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만인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내가 걸어온 길> 중 발췌.

한진그룹이 지난 1일 창립 80주년을 맞이했다. 수송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하늘과 땅에 수송의 길을 새로 만들고 닦아 넓혀놓은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와 조양호 선대회장의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업 예술가' 조중훈 창업주… 신용과 결단으로 역사 새겨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대한항공 제공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대한항공 제공
해방 직후 혼란하던 1945년 당시 스물다섯살이던 조 창업주는 트럭 한 대를 장만하고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교통과 수송은 한 국가의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하므로, 조 창업주는 수송으로 우리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 창업주는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부터 '신용'을 가장 중시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6·25 전쟁 직후 쑥대밭이 됐지만 그간 쌓아온 신용으로 2년 만에 전쟁 직전의 사세를 회복했다. 한진상사는 미 군수품 책임제 수송, 주월미군 군수품 수송 등을 도맡으며 회사를 키워나갔다. 1956년도에는 1인당 국민 소득이 백 달러도 안 되던 시절 7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미군과 직접 맺으며 수송 전문 회사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 무렵 본사도 인천에서 서울로 옮겼다.

조중훈 창업주가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 미군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 한진그룹 제공조중훈 창업주가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 미군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 한진그룹 제공
한진상사 사업이 육송 분야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조 창업주는 '하늘 수송'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처음에는 부실덩어리였던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망설였다. 하지만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이며,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에는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 항공공사 인수를 약속했다. 조 창업주는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에게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며 설득했다.

조 창업주는 항공공사 직원들을 끌어안고 부채 27억짜리 회사의 정상화에 나섰다. 직원들이 쫓겨나면 가족들의 생계까지 어려워질 수 있으니, 능력이 부족하면 자리를 바꿔주거나 교육을 시키면 된다 뜻이었다. 당시 새로운 개념이었던 성과별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항공공사 인수 초기 제트기 1대 외에는 변변한 항공기도 없었지만 민영화 첫해 서울-오사카-타이베이-홍콩-사이공-방콕을 연결하는 동남아 최장 노선을 개설했다.

이후 1973년 미주로 향하는 태평양 노선에 보잉 747 점보기를 투입했고, 이듬해 같은 기종을 추가 도입해 화물기로 투입했다. 전 세계 최초로 점보기를 화물 노선에 투입한 것이다. 오일쇼크 위기를 넘긴 대한항공은 1975년 매출액 1000억 원을 돌파하고 흑자를 기록했다.

조 창업주는 항공 운송 사업에서 안전과 정시성을 가장 중시했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는 조종사들에게 끊임없는 훈련과 완벽한 기술 습득을 요구했다. 또한 제주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조종사 양성 기관인 제주비행훈련원(정석비행장)을 세웠다. 해외 기관에 위탁했던 조종사 훈련을 국내에서 할 수 있게 위함이었다.

'시스템 경영 선구자' 조양호 선대회장… 한진그룹 본격적 도약

조양호 선대회장은 조 창업주가 일군 한진그룹을 본격적으로 성장시켰다.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 육군 제7사단에서 비무장지대 및 베트남 파병 근무 등으로 36개월을 복무하고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제대 직후인 1974년 대한항공 정비 담당 직원으로 입사해 현장에서 기초부터 철저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조 선대회장은 아버지 조 창업주가 그린 '사업의 예술'이라는 밑그림에 '시스템 경영'이라는 색깔을 더했다. 인맥이나 이해관계에 좌우되기보다는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제도를 정착했다. 1989년에는 한진정보통신을 설립해 물류 그룹의 중추가 되는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운항과 객실, 정비, 경영을 유기적으로 융합시켰다.

조 선대회장은 대한항공을 '안전한 항공사'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는 "적당주의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며 "항상 처음 대한다는 자세로 원칙과 규정에 의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쌓아온 데이터와 선진 글로벌 항공사들의 매뉴얼을 총망라해 대한항공을 시스템으로 움직일 매뉴얼을 집대성했다. 안전 운항을 독려할 수 있도록 비행운영품질보증과 안전장려금제도도 시행했다.

1995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함께 보잉 777 항공기를 시찰하는 조양호 선대회장. 한진그룹 제공1995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함께 보잉 777 항공기를 시찰하는 조양호 선대회장. 한진그룹 제공
이후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도 조 선대회장은 차세대 항공기를 도입할 기회를 간파했다. 정확한 판단과 과감한 투자로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날 수 있게 했다. 조양호 선대회장은 2008년 한진그룹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 출범 당시에도 "비용을 줄여 발생한 수익은 승객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며 고객 중심 서비스를 강조했다.

조양호 선대회장은 국제 항공업계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조 선대회장과 각별한 신뢰를 지닌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CEO들은 대한항공과 함께 '스카이팀'을 출범했다. 지난해 말 기준 스카이팀은 18개 항공사가 모인 동맹체로 발전했으며, 전 세계 160개국 1000여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다. 또한 항공업계의 유엔(UN)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 역할도 맡았다. 1996년부터 IATA 최고 정책 심의·의결 기구인 집행위원회 위원을, 2014년부터는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한진'은 한민족의 전진을 의미한다"며 "80년간 우리 국민들의 자부심이 되어 온 한진그룹은 앞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믿고 사랑하는 글로벌 종합수송그룹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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