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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 위 마지막 아침, 세상의 벽은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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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일만에 현대차 철탑에서 내려오는 최병승 씨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최병승 현대차 해고자 (비정규직 노조)


여러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철탑 위에 올라갔던 현대차 비정규직 출신 근로자죠. 최병승 씨, 천의봉 씨를 기억하십니까? 얼마 전에 저희가 이 시간에 인터뷰를 했습니다마는 날이 하도 더워서 도대체 저분들은 저 위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는 우리 청취자들 문자도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두 사람이 오늘 오후 1시에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무려 296일만의 일입니다. 어제 발표를 했는데, 오늘 저희와 첫 인터뷰이자 철탑 위에서의 마지막 인터뷰가 되겠네요. 최병승 씨 연결돼 있습니다.

◇ 김현정> 오늘 아침이 철탑 위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네요.

◆ 최병승> 하.. 그렇습니다. (웃음)

◇ 김현정> 오늘 아침은 좀 다릅니까?

◆ 최병승> 일단은 똑같고요. 대신에 뭔가 좀 정리하려고 하니까 좀 슬프네요.

◇ 김현정> ‘시원하십니까, 섭섭하십니까?’ 제가 이 질문을 드리려고 했는데 슬프세요?

◆ 최병승> 네. 뭐... 시원섭섭합니다.

◇ 김현정> 슬프다면 왜 슬픈 감정이 들까요?

◆ 최병승> ‘세상의 벽이 굉장히.. 참 높은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받고, 또 법의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많은 것들을 던져서.. 최소한 법적인 평결조차 이행할 것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저희가 부족해서 내려간다고 하는 게 많이 서글프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사실 ‘최병승 씨는 정규직이 맞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똑같은 동료들도 다 정규직화가 돼야지 마땅한 겁니다’ 라고 요구하면서 거기에 있었던 건데. 지금 상황이 달라진 게 있어서 내려오신 건가요? 어떻게 결심을 하신 거죠?

◆ 최병승> 농성기간도 워낙 오래 됐고요. 오래되다보니까 몸도 마음도 그렇게 편한 편은 아니고요. 아직 싸움이 끝나지는 않았고 어떠한 것도 지금 진척된 게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고, 또 지속될 것 같아서 조금 체력이 있을 때 내려가서 조금 몸을 보호하고 난 이후에 다시 싸움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너무 나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가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서, 부족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 김현정>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 최병승> 아직 농성을 못할 정도는 아니고요. 근데 하루하루 가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상황이 그래서.. 그렇게 정리를 한 겁니다.

◇ 김현정> 워낙 최병승 씨가 긍정적인 성격이에요.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를 영 안 하는 분인 걸 제가 알기는 압니다만, 그래도 솔직하게 296일 동안 철탑 위에서 제일 힘든 건 어떤 거였습니까?

(자료사진)

 

◆ 최병승> 어떤 고립감과 외로움 같은 거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지지도 해 주시고, 응원도 해 주셔서 그런 고립감과 외로움을 많이 달랠 수 있었는데요.

◇ 김현정> 기차가 지나가네요. 소리가 들려요.

◆ 최병승> 네. 노동자들이 갖는 현실의 벽이라고 하는 게 너무 높으니까 벽 앞에서 넘지도 못하고, 그것을 깨지도 못하고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는.. 그런 우리의 상황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농성을 접는 과정에서도 그런 힘듦이 계속 아쉬움과 미련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현정> 세상의 벽, 내가 넘을 수 없는 벽. 또 그 속에서의 고립감. 정신적으로 그런 게 힘들었다면 육체적으로도 사실은 울산이 엄청 더웠는데, 지상보다 더 더운 철탑 위에서 시원하게 씻을 수도 없고. 그런 것도 솔직히 힘들지 않으셨어요?

◆ 최병승> 어우... 그거는 당연히 힘들죠. 너무 더웠어요, 정말로. (웃음) 날씨까지 안 도와주니까 ‘정말 우리한테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 김현정> 그럴 때는 솔직히 후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최병승 씨는 대법원에서 이 사람은 정규직으로 봐야 된다고 판결을 받은 상황이었고요. 현대차에서도 최병승은 우리 정규직이 맞다, 내려오기만 하면 우리가 받아준다. 내려오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냥 그때 내려갈 걸 이런 생각이 들진 않으셨어요?

◆ 최병승> 뭐... 그런 생각은 안 했고요. 농성이 너무 많이 길어지니까 같이 농성하고 있는 의봉이한테 미안해서 ‘내가 쟤를 왜 꼬셨을까’ 이런 고민들을 했고요. (웃음)

◇ 김현정> 천의봉 씨한테 미안해서.. 최병승 씨가 같이 하자고 꼬신거예요? (웃음)

◆ 최병승> 네. ‘같이 하자.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웃음) 그런데 너무 길어지니까.. 저도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그런 게 있었고. 부모님 그리고 조합원들한테 미안한 감정들도 많이 들고. 그래서 저 때문에 ‘내가 여기 있어서, 내 고집 때문에 사람들이 고생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같이 만든 거잖아요. 10년 동안 대법원 판결이든 그리고 여러 가지의 법적인 다툼들은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우리 조합원들하고 같이 한 거기 때문에, 저만 그렇게 되는 게 굉장히 두렵기도 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두렵고요. 어쨌든 함께 갈 수 있는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 김현정> 현대차 입장은 지금 변한 게 없는 거죠?

◆ 최병승> 아무것도 없습니다.

◇ 김현정> 아무것도 없고, 일단 내려는 옵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요구사항도 변함은 없는 겁니까?

◆ 최병승> 네. 요구사항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일단 ‘불법파견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불법파견 인정에 따라서 파견법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울산지법이 올해 초에 ‘송전탑 농성을 중단하지 않으면 농성자 1인당, 하루 30만원씩 벌금을 내야 된다.’ 이런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게 1월이니까 벌금 액수가 꽤 많이 쌓였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 최병승> 이제 내려가서 고민해 봐야 하는데요. 돈이 없어서.. 우리 사무장님은 ‘형님 1억이 넘는데 그냥 몸으로 때워야죠.’ 이렇게 얘기하던데요. (웃음)

◇ 김현정> 아, 그냥 들어가서...

◆ 최병승> 네, 들어가서 몸으로 때우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고.

◇ 김현정> 감옥에 들어가서...

◆ 최병승> 그래서 뭐... 네,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내려가서 고민해 봐야 될 문제인 것 같고요. 당장에 답은 없습니다. (웃음)

◇ 김현정> 그래도 밝으시네요. (웃음) 아니, 그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세요?

◆ 최병승> 어쨌든 농성하면서 정말로 많은 분들이 우리 투쟁에 관심 가져주시고 지지해 주셔서 저희는 무조건 남은 싸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왜 잘못됐고 무엇이 불합리한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고. 또 아시면서 저희한테 많은 힘도 주셨기 때문에.. 부족한 저희한테 많은 기운을 주셔서 좀 더 할 수 있는 힘을 가져서 좋습니다.

◇ 김현정> 최병승 씨가 여하튼 오늘 내려옵니다. 내려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 최병승>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역에 가서 라면 먹고 싶었는데요.

◇ 김현정> 라면.. (웃음) 왜 꼭 굳이 역에 가서 드셔야 돼요?

◆ 최병승> 제가 지금 수배생활이 3년째라서 눈치 안 보고 공공장소에서 라면 먹고 싶어요. (웃음) 좀 자유롭고 싶어서. 하지만 오늘 내려가서는 조합원들하고 인사하고, 바로 형사문제가 있어서 경찰서로 출두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라면은 드시고 가셔야겠네요, 그럼.

◆ 최병승> 그랬으면 좋겠는데,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웃음)

◇ 김현정> 최병승, 천의봉 씨가 296일 만에 오늘 철탑에서 내려옵니다. 저는 사실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 것도 상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 걱정하는 문자들도 꽤 많이 왔었는데, 무사히 내려오시게 돼서 다행이고요. 건강 유의하십시오.

◆ 최병승>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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