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아이들 왜 죽었는지라도 정확히 알고 싶어”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해병캠프 (자료사진)

 



- 의혹 남았는데 검찰은 수사 마무리. 책임지고 협상한다던 동문회도 나 몰라라
- 학생 5명 사망한 해병 캠프 업체, 이름만 바꿔서 영업 재개하기로
- 겨우내 칼바람 맞으며 1인 시위 했는데 봄, 여름에 더 못 할 것 없다는 심정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3월 12일 (수)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후식 (해병대캠프 유족대표)


◇ 정관용> 지난해 7월 태안에서 있었던 해병대캠프사고, 여러분 기억나시죠. 이 사설 해병대캠프훈련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 목숨을 잃었던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 유가족 분들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라. 관련업체 대표 구속, 수사하라 이렇게 촉구를 했습니다. 지금 청와대 앞에서 100일 가까이 1인시위도 벌이고 있다고 그럽니다. 어떤 사연인지 유족 대표 분을 오늘 우리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이병학 군을 잃으신 아버님, 이후식 대표이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후식> 네,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오늘도 1인시위를 하고 오셨습니까?

◆ 이후식> 네. 저는 오늘 시위 당번이 아니라 김동환 아버님인 김영철 그 분이 하셨고. 저는 오늘 그 2시에 기자회견이 있어서 같이 참여했다가 지금 이 스튜디오로 이동했습니다.

◇ 정관용> 그럼 당번을 정해서 한 가족씩 이렇게 청와대 앞에 시위를 하시는 건가요?

◆ 이후식> 네, 맞습니다. 처음에는 네 가족이 돌아가면서 하다가 지금 한 가정은 아무래도 직업이, 직장생활하다 보니까 어려운 상태가 돼서 지금 빠져 있고. 세 가족이서 지금 현재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다들 자택이 지방이시잖아요.

◆ 이후식> 네. 저희는 공주사대부고가 전국모집 학교다보니까 학생들의 부모가 사는 지역이 다 제각기 달라요.

◇ 정관용> 이후식 대표님은 어디 사세요?

◆ 이후식> 저는 논산입니다.

◇ 정관용> 논산에서 1인시위 할 때마다 매번 왔다 갔다 하시는 건가요?

◆ 이후식> 네, 맞습니다. 제가 아침에 5시 30분에 기상을 해서 그 첫 고속버스를 타고 청와대에 와서 시위하고 집에 돌아가면 10시쯤 됩니다.

◇ 정관용> 벌써 100일 가까이 1인시위를 하고 계시고.

◆ 이후식> 네, 오늘이 꼭 100일째입니다.

◇ 정관용> 아, 오늘이?

◆ 이후식> 네.

◇ 정관용> 그리고 지난주에는 참여연대와 기자회견도 하셨고.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오늘도 기자회견도 하셨고.

◆ 이후식> 네.

◇ 정관용> 뭘 요구하고 계신지를 말씀 듣기 전에 좀 되돌아 올라가보죠. 이게 작년 7월이니까 벌써 8개월이 지났는데. 그때 아드님은 어떻게 해서 그 해병대캠프 훈련에 가게 됐었죠?

◆ 이후식> 충청남도에서는 아무래도 해변에 영업하는 곳이 이런 곳이 많아요. 특히 해병대캠프를 운영해서 돈벌이를 하는 업체들이 많다 보니까 충남도교육청에서 해병대캠프를 장려하고.

◇ 정관용> 도교육청 차원에서?

◆ 이후식> 네. 그리고 또 공문까지 내려 보내서 권장까지 했어요. 그리고 다녀와서는 또 평가까지 하는. 이런 것이 맞물리다 보니까 사대부고 학생들도 어쩔 수 없이 해병대캠프에 참가했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 정관용> 그러면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전 학생을 보낸 거다?

◆ 이후식> 네. 저희가 저희 아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2학년이었던 전 학생들이 단 열외자 한 명도 없이 모두 참가했습니다.

◇ 정관용> 한꺼번에.

◆ 이후식> 네.

◇ 정관용> 그런데 그 캠프가 정식 해병대 출신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그런 곳도 아니고. 어떤 업체에다 의뢰를 했죠? 또 그 업체는 어디다가 그걸 또 하청을 줬죠?

◆ 이후식> 공주사대부고 교장선생님이 어떠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영 T&Y 라는 사설 업체에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하는 과정이 따지고, 묻고, 조사하고, 이것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인 계약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대표로 있는 오백근 대표는 작은 돈으로 운영을 하기 위해서 본인이 직영하는 것이 아니라 코오롱트레블이라는 업체에 하청을 줬고. 또 코오롱트레블은 해병대리더십이라는 캠프훈련 담당업체에 또 하청을 주었어요.

◇ 정관용> 재하청까지 됐군요.

◆ 이후식>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한영 T&Y를 거쳐 코오롱트레블을 거쳐 해병대리더십이라는 업체로까지.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그 현장에서 학생들을 한 건 해병대리더십이라는 업체가 되겠네요.

◆ 이후식> 네, 맞습니다. 하청의 맨 아랫단계인. 사실 인증이 되어 있지 않는 사설업체죠. 사설업체이고 또 아무래도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까 제대로 된 교관을 쓰지를 못하고, 일당 교관을 주로 써서 하루하루 이런 식으로 그냥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일당 교관?

◆ 이후식> 네.

◇ 정관용> 교관들이 몇 명이나 파견됐나요?

◆ 이후식> 저희가 조사한 걸로는 약 한 20여 명이었는데, 실질적으로 투입된 인원은 한 7, 8명 정도. 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그 현장에 학교 측의 지도교사는 없었고?

◆ 이후식> 네. 어이없게도 그 교장선생님이 캠프에 참가하면서 교관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으니까 선생님들은 참여하지 마라 해서 선생님들은 또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고 전혀 참여하신 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하청을 줬던 코오롱트레블이나 한영 T&Y업체 직원들도 없었고.

◆ 이후식> 네, 맞습니다. 한영 T&Y에서는 일임을 했다는 것만으로 전혀 뒤처리라든지 안전에 대한 준비, 의식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청으로만 그냥 일임한 걸로 이렇게 되어 있죠, 지금.

◇ 정관용> 결국 하청에 재하청을 받은 해병대리더십에서 일당 교관들, 그것도 정원에 부족한 7, 8명 정도만 나와 있었다?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몇 박 며칠의 훈련이었죠?

◆ 이후식> 2박 3일이었죠.

◇ 정관용> 그런데 그 사고가 난 건 며칠째였습니까?

◆ 이후식> 이튿날이었습니다. IBS 훈련이 끝나고.

◇ 정관용> IBS 훈련이 뭡니까?

◆ 이후식> IBS 훈련이라는 것은 상륙작전을 할 때 해병대원들이 무동력보트를 타고 육상으로 올라오는 이런 훈련 과정이거든요. 그런 훈련과정을 답습하는 이런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노보트를 타고 약 한...

◇ 정관용> 노를 젓는 보트.

◆ 이후식> 네, 그렇죠.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약 50~80m 바다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그런 훈련입니다.

◇ 정관용> 그러면 보트에 타고 있는 상태로 노를 저어서 나갔다가, 다시 노를 저어서 돌아오는 거지 않습니까?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이럴 때는 다 구명조끼를 입어야 되잖아요.

◆ 이후식> 네,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구명조끼도 없었다면서요.

◆ 이후식> 보트를 탈 때는 구명조끼를 입었고요. 갔다 와서 1조가 2조한테 구명조끼를 넘겨주고, 1조는 그들이 말하는 소위 뒤풀이 훈련이라는...

◇ 정관용> 뒤풀이?

◆ 이후식> 네, 이런 훈련을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그 당시에 사실, 지금 수사상에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교육대장인 김경호라는 사람이 빠져 있었어요. 열외가 되어 있습니다.

◇ 정관용> 열외로?

◆ 이후식> 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지휘 체계가 무너져버렸고. 그러다 보니까 무자격 교관을 시켜서 뒤풀이 훈련을 맡겼고 그 상태에서 또 뒤풀이 훈련이 끝났는데 완전히. 끝났는데 무자격 교관이 우리 아이들을...

◇ 정관용> 뒤풀이 훈련은 어떤 걸 한 거예요?

◆ 이후식> 뒤풀이 훈련이라는 것은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 정관용> 해변에서?

◆ 이후식> 네, 맞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행위를 거기서 반복하는 거죠.

◇ 정관용> 네. 그리고 나서요.

◆ 이후식> 그리고 나서 무자격 교관이 훈련이 다 끝났다는 학생들을 깊은 바다로 유인을 하게 된 거예요.

◇ 정관용>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 이후식> 네.

◇ 정관용> 구명조끼도 없이?

◆ 이후식> 그렇죠.

◇ 정관용> 걸어서?

◆ 이후식> 네, 맞습니다. 저희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의혹을 품고 있는데도...

◇ 정관용> 왜 그런지는 모르는 거네요.

◆ 이후식> 네. 저희들이 공판이 열렸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 검사님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뭔가 이유를 설명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그 당시 수사 검사가 말씀하시기를 ‘이미 본인들이 잘못했다고 시인을 했는데 굳이 그것을 왜 밝힙니까’라고 대답을 하는 거예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개 조가 그 당시 20명씩이었습니까, 10명씩이었습니까?

◆ 이후식> 10명씩 해서 8개 조가 나가니까 80명이죠.

◇ 정관용> 전체는 그런데, 한 조별로 보트를 타고 나갔다 왔을 거 아니에요.

◆ 이후식> 아니에요. 쉽게 얘기해서 8개 조가 동시에 나갔다가...

◇ 정관용> 한꺼번에 80명 단위로?

◆ 이후식> 그렇죠.

◇ 정관용> 그럼 80명이 와서 80명 전체가 뒤풀이 훈련도 하고.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80명 전체를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이후식> 그래서 바다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통 해병대 인원들도 저희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분들도 예를 들어서 목 부위 정도 되면 상당한 위험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저희 학생들 증언을 들어보니까 178cm 되는 학생이 목이 잠기는 깊은 바다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순간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약 한 20여명이 서로 당기고, 밀고, 당기고, 하다 보니까 아비규환이 발생했고. 거기에서 학생들끼리 구조 활동을 해서 그나마 다섯 명이 실종되고 나머지는 구조가 된 걸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 정관용> 그때 파도가 셌나요?

◆ 이후식> 그때 이철규 당시 교관이 저희들한테 증언한 바로는, 파도가 거의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 정관용> 잠잠했다?

◆ 이후식> 네.

◇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순식간에 가다가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상태가 돼 버렸고, 아비규환해서 서로들 손잡고 끌어당기고 이렇게 했죠?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러는 가운데 아무튼 다섯 명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또 일부 보도에 의하면 그 다섯 명 가운데 한 두 명은 나머지 세 명을 구하려고 하다가 또 빠졌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진상이 좀 파악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 이후식> 지금 해경에서 조사한 바로는 다섯 학생 중에 두 학생은 친구들을 구조하다가 결국 실종이 됐다라고 했고요. 나머지 세 학생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그런 증거라든가 증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다섯 학생들이 실상적으로 누가 누구를 도와 준 것이 아니라 서로가 살려고 처음에는 했었을 거예요.

◇ 정관용> 당연하죠.

◆ 이후식> 그러니 처음에는 아수라장이 됐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똑똑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려고 손에 손을 붙잡고 구조 활동을 했기 때문에 실상 거기에 증언이 없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결코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단정을 할 수는 없는 거죠.

◇ 정관용> 사건이 나고 경찰이 다 수사를 했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누구누구가 어떤 처벌을 받았습니까?

◆ 이후식> 우선 사고업체인 오백근 대표는.

◇ 정관용> 한영 T&Y.

◆ 이후식> 그렇죠.

◇ 정관용> 처음에 계약한.

◆ 이후식> 네. 한영 T&Y 오백근 대표는 과실치사 혐의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요. 수상 레저안전법에 의해서 위반에 의해서 징역 6개월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징역 6개월도 과하다면서 지금 항소를 한 상태이고.

◇ 정관용>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요?

◆ 이후식> 다른 교관들, 행위자들은 금고 1년 4개월에서 2년까지 본인들의 과실에 따라서 실형을 선고받았어요.

◇ 정관용> 몇 명이요, 교관 몇 명?

◆ 이후식> 교관 세 명이죠.

◇ 정관용> 세 명. 그러면 처벌받은 사람은 한영 T&Y 대표 한 사람하고 교관 세 명. 이 네 명이 다입니까?

◆ 이후식> 네, 그리고 한영 T&Y 측의 현장소장 격으로 인정을 해서 거기에 김선진 이사가 또 과실치사 혐의로 해서 1년 6개월을 받았고요. 또 코오롱트레블의 이사라고, 사실은 이사가 아니지만, 이사라고 또 덤탱이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사에서 그분이 또 과실치사 혐의로 해서 똑같은 1년 6개월을 받았습니다.

◇ 정관용> 한영 T&Y, 코오롱트레블의 임원 한 사람씩은 받았고. 그럼 해병대리더십은 그냥 교관들 세 명만 처벌받은 거예요? 그게 다예요?

◆ 이후식> 그렇죠. 해병대리더십의 대표는 김창렬인데. 그 김창렬이가 대표가 아닌, 코오롱트레블의 이사가 된 것처럼 이렇게 해서 처벌을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어차피 이 김창렬은 처벌을 받아야 되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족들께서는 100일째 지금 1인시위까지 하시면서 재수사 필요하다. 어떤 점에서 재수사가 필요합니까? 뭐가 석연치 않은 겁니까?

◆ 이후식> 일단 우리 아이들이 죽은 사인이 정확하지가 않아요. 그 수사발표로 했을 당시에 갯골이 형성돼서 아이들은 갯골에 빠졌었고.

◇ 정관용> 갯골이 뭐죠?

◆ 이후식> 갯골이라는 것은 바다에 갑자기 빠질 수 있는 웅덩이가 있었다는 거죠.

◇ 정관용> 움푹 파인 곳.

◆ 이후식>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곳에 빠졌고 그 당시 파도에 휩쓸려서 그런 아비규환이 발생했다고 했는데. 저희들이 그날과 똑같은 조건을 갖춘 백중사리의 두물인 9월 15일 날 저희들이 직접 해변을 찾아서 하루 종일 그곳을 연구를 하고 조사를 했습니다. 그곳은 딱딱한 뻘로 도저히 갯골이 형성될 수가 없는 지역이었고, 또 아까 말씀드린 대로 파도도 잠잠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사인이 없는 거죠.

◇ 정관용> 어쨌든 너무 깊은 곳에 갔기 때문 아닙니까?

◆ 이후식> 그렇죠. 저기는 그렇게 주장을 하는데. 그 수사를 맡은 수사당국은 가슴 이하에 있었다. 그런데 갯골에 빠져서 죽었다, 이런 식인 거죠.

◇ 정관용> 그러면 가슴 이하까지만 갔고 갯골에 빠진 것 하고 그게 아니라 너무 깊은 곳까지 데리고 간 것이다라고 하는 것 하고. 그게 밝혀지면 결과는 어떤 차이가 나는 겁니까?

◆ 이후식> 저희들이 보기에는 일단 인가항력적으로 사고가 발생이 됐을 때는 과실치사를 적용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보지만, 예를 들어서 너무 깊은 곳에 가서 아이들이 이와 같은 사고를 당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이것도 염두에 둬야 된다는 것이죠.

◇ 정관용> 그렇다면 이 관련 교관들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에 대한 적용되는 죄명이 달라질 수 가 있다.

◆ 이후식> 네. 당연히 달라지죠.

◇ 정관용> 더 중벌에 처해야 한다, 그 말씀이신 거죠.

◆ 이후식> 저희들이 주장하는 것은 중벌도 중벌이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사인은 부모가 알아야 되는 거고, 거기에 따라서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죄에 합당한 죗값을 받아야 되는 것이지. 어떻게 본인들은 죄를 크게 지었는데. 죗값을 묻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면 그들이 뉘우침이 있겠습니까? 또한 과실치사라는 이 범위 내에서의 형량은 고작 5년이 최고형이고. 실질적으로 이번에 판결을 선고공판에서도 전부 다 2년 이하로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섯 아이가 죽어서 그들이 총 받은 것은 6년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이 너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거고. 이러다 보니까 대표들의 잘못을 또 깊게 추궁하지 않았다는 거죠.

◇ 정관용> 그리고 관련업체들은 다 어떻게 됐습니까? 폐업됐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 이후식> 처음에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폐업을 시키니, 사설 해병대캠프는 영원히 종식을 시켜야 되니, 이런 말들이 많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사고업체가 받은 행정처벌은 업무정지 2개월이에요. 업무정지도 전체 업무정지가 아니고 청소년 수련활동에 관한 거기에 관련된 부분만 업무정지 2개월을 받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태안군청과 태안해경이 결과적으로 봐주기식 행정처벌을 한 것이죠.

◇ 정관용> 업무정지 2개월, 부분적으로?

◆ 이후식> 네.

◇ 정관용> 그리고 나머지 업체들, 중간에 재하청한 코오롱트레블, 해병대리더십 이런 업체들은요?

◆ 이후식> 그런 업체들은 논외선상에서도 제외가 돼 있습니다. 아예.

◇ 정관용> 그래요?

◆ 이후식> 네.

◇ 정관용> 그럼 그 업체들은 지금도 영업합니까?

◆ 이후식> 지금 한영 T&Y도 명칭만, 상호만 바꿔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 정관용> 여전히 해병대캠프 훈련 이런 걸로?

◆ 이후식> 네. 얼마 전에 충청투데이에서 기사가 발표가 됐는데요. 그 기자 분이 알아보니까 현재는 손님을 받을 수 없지만 다음 달 중순부터는 손님을 받을 수 있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참. 또 학교 당국자들은 어떤 책임을 졌습니까?

◆ 이후식> 그 당시 저희 유족들이 경황도 없고. 사실 유족들이 자식만 뒷바라지하는데 정렬을 쏟다보니까 경험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유족들은 이상규 전 교장한테, 교장선생님이 사대부고 동문들과 힘을 합쳐서 유족들을 위해서 진상규명이 왜곡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라고 세 차례에 저희들이 기회를 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저희 부탁을 외면하셨고. 또 중간에 아까 말씀드린 선생님들은 여기에 참가하지 말라는 이런 중대 과실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저희 유족들은 거기에 흥분하고 교장선생님을 용서해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중론을 모았고, 그래서 그 다음날 파면을 요구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대부고 동창회 측에서는 굉장히 난감해서 그 당시에 이정석 사무총장이라는 분을 사퇴 수습을 위해서 투입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또 이정석 사무총장이라는 분이 공군장군 출신이고. 또 본인이 자기 명예를 걸고 해 주겠다.

◇ 정관용>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 이후식> 결과적으로는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다 빠져나갔어요.

◇ 정관용> 교장도?

◆ 이후식> 네. 교장선생님은 파면은 됐는데. 그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정석 사무총장도 교육부와 유가족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결국 빠져나가서 총동창회장은 그 사무총장이 한 것은 우리가 책임질 수 없다. 더군다나 또...

◇ 정관용> 그 사무총장이 동문회 사무총장이라는 말이죠?

◆ 이후식> 그렇죠. 동문회 사무총장이죠.

◇ 정관용> 그래서 동문회에서는 뭘 해 주겠다고 약속했죠?

◆ 이후식> 처음에는 장학재단 설립이니, 뭐니, 거창하게 말씀을 하셨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동창회장이...

◇ 정관용> 못하겠다?

◆ 이후식> 네. 동창회장이...

◇ 정관용> 입장을 바꿨다 이거죠.

◆ 이후식> 그렇죠. 입장을 순식간에 바꾼 거죠.

◇ 정관용> 교장은 파면이 됐고. 동문회는 해주기로 했던 약속이 일단 입장이 바뀐 상태고. 지금 재수사 요구에 대해서는 경찰당국이나 뭐라고 답변을 합니까?

◆ 이후식> 지금 수사가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 있고. 유족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실질적으로 왜곡된 것은 없다. 또 김태민 교관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죽이려고 데리고 갔겠느냐. 이러면서 본인이 과실치사 적용한 부분이라든지 판례를 적용한 부분에 대해서 자기는 추호도 앞으로 자기가 서산지청장으로 있는 한 바뀔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계속해서 이렇게 재수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

◆ 이후식> 지금 저희들이 청와대에서 겨우내 칼바람 맞으면서 1인시위를 했습니다. 겨울도 났는데 봄을 못 날 것이고, 여름은 못 나겠습니까? 정말 이 사건에 대해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미래에 이런 사고가 예방이 되기 때문에 저희들은 끝까지 투쟁을 하려고 지금 마음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 정관용> 끝까지?

◆ 이후식> 네.

◇ 정관용> 받아들여질 때까지?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전면 재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 이후식> 네.

◇ 정관용> 그리고 사실 해병대캠프 이런 거 아예 없애자라는 얘기 잠깐 나왔다고 그랬잖아요.

◆ 이후식>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것도 쏙 들어갔죠, 지금은?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