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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배반의 정치에 대통령의 책임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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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의장과 여당 지도부를 포함한 정치권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법령심사권을 침해하고 3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같은 법리적 위헌성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권이 민생을 돌보지 않은 채 정치적 야합만 일삼는 집단으로 몰아부쳤다. 특히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유승민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를 향한 독설과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가 청년일자리 창출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의 통과를 관철시키지 못하면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켜 국가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위헌성 문제가 커지자 법안 내용 중 '요구'를 '요청'으로 한 단어만 바꾼 정치적 야합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을 수호하는 대통령으로서 위헌논란이 일고 있는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헌시비를 피하기 위해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마련해 여야의원 211명이 찬성한 법안이라는 점도 존중해야 한다. 특히 법률적 해석을 넘어 국회와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한 대통령의 인식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정치권이 민생을 외면한 채 배신의 정치를 하고 특히 여당 지도부까지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을 정도가 됐다면 이렇게되기까지 방치했던 대통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사실 국회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국회의 입법취지에 걸맞지 않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제정한 것이 발단이었다. 또 이 법안이 제기된 이후에도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충분히 협의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정치권과의 관계나 국회와의 소통을 책임지는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19일 이후 한달 넘게 공석 상태다.

대통령은 현역 여당의원을 포함해 정무특보도 3명이나 두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새누리당 지도부와는 언제든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같은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 그동안 정치권과 꾸준히 소통하고 국정의 동반자로 대해왔다면 오늘 같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와 정치권에 대한 비난에 따라 청와대와 국회와의 갈등은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당장 오늘 처리될 예정이던 각종 민생법안의 처리도 무산됐다. 특히 여당 지도부를 향한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면서 집권당 내 혼선이 가중되고 당청관계는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청와대와 국회의 관계, 당청관계의 파열음은 결국 국정 수행의 차질을 초래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이 국민이 입게 된다. 대통령이 정치권과 정면승부를 택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소통과 정치의 복원에 나서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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