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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데이트폭력 배경은 '솜방망이' 처벌…판결문 79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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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판결문 분석해보니… 반성한다고 '집행유예'

'데이트 폭력'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지만 데이트 폭력은 끊이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모양새입니다. CBS노컷뉴스는 법원의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이용해 2019년 9월부터 2021년 8월 사이 발생한 데이트폭력 판결문 79건을 분석했습니다. 피고인이 반성한다고, 초범이란 이유로 쉽게 '집행유예' 처분이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데이트폭력을 처벌할 길이 막힌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엔 데이트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단일 법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데이트 폭력' 판결문 분석
"반성한다", "전과없다", "합의했다"…감형 요인
전문가들 "피해자의 처벌불원…두려움에서 나온 것일수도"
데이트 폭력 처벌 근거 없어…"외국엔 가정폭력 범죄처럼"


지난 17일 서울 마포 오피스텔에서 한 20대 여성이 연인 관계였던 30대 남성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가해 남성의 폭행이 그대로 찍힌 CCTV가 공개되면서 데이트폭력을 엄벌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왔다.  

데이트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 5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2019년 발생한 데이트폭력은 9858건으로 2016년과 비교해 2621건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4136건, 2018년 1만8671건, 2019년 1만9940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부터 2020년 8월까지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인원만 총 4만4885명에 달한다.

남녀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지만 데이트 폭력은 엄연히 상습폭행, 강간, 살인 같은 강력 범죄의 시작점이다. 최근엔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위한 입법을 요구하는 등 데이트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법감정도 크게 변했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지만, 현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모양새다.

지난 2년간 '데이트 폭력' 판결문 분석해보니… 반성한다고 '집행유예'

CBS노컷뉴스는 법원의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이용해 2019년 9월부터 올해 8월 사이 발생한 데이트폭력 판결문 79건을 분석했다. 판결문 속 혐의와 선고 내용, 양형 이유, 폭행의 원인 등을 따져본 결과 '데이트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단서들이 포착됐다.

판결문에 나타난 데이트폭력 가해자는 주로 집행유예나 벌금형 정도를 선고받았다. 집행유예가 40건, 실형이 31건, 벌금형이 8건, 무죄·선고유예 등이 3건이다. 실형을 받는 경우는 주로 벌금형 이상의 전과가 있거나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였다. 폭행과 상해를 저질렀다고 처음부터 실형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데이트폭력이 초기에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보인다.

폭행 정도가 심각해 원심에서 실형이 내려지더라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바뀐 사건도 11건에 달했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소년보호처분 받은 것 외엔 벌금 70만원 받은 것만 존재한다",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져 합의서가 제출됐다" 등 철저하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이유였다.

2019년 10월 부산에서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다른 남성과 SNS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집에 3시간 넘게 감금하면서 목을 조르고 뺨을 때리는 등 상해를 입혔다. 이어 피해자에게 옷을 벗고 무릎을 꿇으라고 하고 알몸 동영상을 촬영한 후 협박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원심에서 1년 6월의 실형이 내려졌지만, 항소심에서 3년의 집행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이며 촬영한 피해자 동영상이 다른 사람에게 유포되지 않았다"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2019년 9월부터 올해 8월 사이 발생한 데이트폭력 판결문 79건 분석 결과.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 캡처2019년 9월부터 올해 8월 사이 발생한 데이트폭력 판결문 79건 분석 결과.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 캡처

피해자가 '처벌불원' 외친다고…수사기관도 STOP?

지난해 3월 경남 양산에서 한 데이트폭력 가해자는 이별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찾아 주먹을 휘둘렀다. 가해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으면서 "다시는 피해자를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피해자는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고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면했다. 그리고 이틀 뒤 가해자는 '회칼'을 들고 피해자를 찾아가 왼쪽 옆구리를 찌르는 척하며 협박을 했다.

데이트 폭력은 대부분 폭행죄가 적용되는데, 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즉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하다. 재판에서도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는 감형 요인이 되고,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처벌불원'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는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데이트 폭력을 신고해도 가해자를 구속하는 일은 드물어 피해자가 또다시 폭력에 노출되는 게 자명한 사실"이라면서 "합의나 처벌불원의사 밝히는 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폭력이 있고 나서 '내 공간'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데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 '안전한 공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두 사람 사이 친밀성이 데이트 폭력에서 굉장히 '위험한 요소'라고 했다. 그는 "친밀성은 상대방과 상대방 가족에 대한 모든 정보를 또는 거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처벌 불원을 하는이유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처벌불원을 원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어질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울 수 있단 지적이다. 데이트 폭력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활반경, 가족이나 지인 등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결문 속 한 가해자는 피해자를 향해 "집에 못 들어가게 하겠다. 네가 지금 실습 중인 병원에 찾아가서 출퇴근 못하게 하겠다. 네 애비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폭행을 피해 자신의 집으로 도망쳐도 가해자는 집까지 쫓아오는 사례도 있었다.

'데이트 폭력' 처벌 근거 없어…특수성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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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데이트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단일 법안이 없다. 이 때문에 데이트 폭력을 폭행과 상해, 협박죄 등으로 처리한다. 폭행죄가 적용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뿐이다. 앞서 봤듯 폭행·협박죄는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 의사에 따라 처벌이 불가할 수도 있다.

판결문 분석 결과, 데이트 폭력 혐의 중 특수상해 및 상해가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행이 36건, 특수협박 및 협박이 26건으로 뒤를 이었다. 재물 손괴는 21건, 감금(중감금 포함) 14건, 주거침입 10건,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이 9건에 달했고, 강간이 5건, 건조물 침입이 3건 있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을 이처럼 일반 형법으로 다루는 지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데이트 폭력을 일반 그냥 폭력 사건과 유사하게 다루다 보니 처벌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데이트 폭력과 일반 폭력 범죄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 이런 것들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에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해서 가정폭력 범죄에서 처벌 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으로 한꺼번에 처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갖고 단일법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스토킹처벌법'을 내놓은 것처럼 데이트 폭력을 근절할 방법으로 입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폐기되지 않고 국회에 계류 중인 데이트 폭력 방지 관련 법안은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발의한 법안이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무엇보다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처벌 주체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와 합의가 있었다고 관행처럼 감형에 나서기 보단 데이트 폭력의 특수성을 감안해 재범의 고리를 끊어야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재판부 내에도 변화는 감지된다. 지난해 11월 울산지방법원은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피해 여성의 처벌 불원이 있었음에도 징역 10월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의 형을 내렸다.

재판부는 "평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어 가해자가 구속되면 생활에 불편함을 겪게 돼 선처 탄원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 점 등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피해자 처벌불원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피고인을 선처하는 것은 재범 방지, 피고인의 교화 등 형벌의 본래적 목적을 충족하기 어렵고 데이트 폭력 범행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에도 부합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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