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정선아. 팜트리아일랜드 제공 "뮤지컬 '이프덴'으로 인생 2막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진 것 같아요."
데뷔 21년차 뮤지컬 배우 정선아(39)의 복귀 일성이다. 정선아는 출산한지 7개월 만인 지난해 12월부터 뮤지컬 '이프덴'(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서고 있다.
'이프덴'은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뮤지컬이다. 정선아는 사소한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리즈'와 '베스'를 번갈아 연기한다. '베스'가 커리어우먼으로서 승승장구하는 반면 '리즈'는 사랑과 가정에 우선순위를 둔다.
정선아는 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동안 '아이다'의 '암네리스 공주', '위키드'의 '글린다' 등 캐릭터가 강한 대극장 뮤지컬을 주로 해온 만큼 어렵게 '이프덴' 출연을 결심했다"며 "현실에서 엄마가 된 만큼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고 말했다.
정선아는 20년 넘게 뮤지컬 한 길을 가고 있다. 고3 때인 2002년 '렌트'(미미 역)로 뮤지컬에 데뷔한 후 '아이다' '위키드' '킹키부츠' '드라큘라' '데스노트' '보디가드' '안나 카레리나' 등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뮤지컬 디바'로 불린다.
정선아는 "(이프덴은) 대사량이 역대급이다. 하루에도 몃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갈만큼 연습과정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19살 신인 배우가 엄마가 됐다. 그동안 용기가 없어 못했던 드라마적 뮤지컬 '이프덴'으로 인생 2막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진 것 같다. '이프덴 앓이'가 오래 갈 것 같다"고 말했다.
팜트리아일랜드 제공 출산 후 7개월 만의 복귀다. 하루라도 빨리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싶었다. 정선아는 "임신 후 몸무게가 급격히 느니까 자존감이 무너졌다. '이프덴' 출연을 결심한 후 22㎏을 감량하고 보컬 레슨도 받았다"며 "'이프덴' 첫 공연 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잊을 수 없다. 공연 끝나자마자 펑펑 울었다. 20년 뮤지컬 인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전 출연작과 관객 피드백의 결도 달라졌다. 정선아는 "예전에는 '정선아 잘하네' '캐릭터랑 싱크로율이 좋네' 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내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고마워했다. "감정 이입해서 웃고 울었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 '작품의 메시지가 주는 힘이 있구나' 느꼈어요."
극중 '리즈'와 '베스'의 삶은 굽이굽이마다 고민과 선택을 반복하는 우리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청년주거, 재활용, 동성애 등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놓는 점도 좋았다는 의견이 많아요."
지난 20년간 슬럼프는 없었을까. "뮤지컬 배우 10년차 정도 됐을 때 슬럼프가 왔어요. 장래희망이었던 뮤지컬 배우의 꿈을 너무 빨리 이루다보니 어느 순간 교만해지고 뮤지컬이 재미없어졌죠.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할까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난 후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뮤지컬에서 실력과 인지도를 쌓은 후 TV나 영화 등 매체로 진출하는 배우들이 많다. 정선아는 "예능대세가 된 김호영 등 매체에서 활약하는 동료 뮤지컬 배우들을 보면 흐뭇하다"면서도 "저는 뮤지컬이 더 좋다.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하노라면 '내가 이것 때문에 태어났구나' 싶다"고 웃었다.
"'19살 때 '렌트'에서 '미미'로 혜성같이 등장하지 않았다면요? 나이가 좀 들었어도 언젠가는 뮤지컬 배우가 됐을 것 같아요. 큰 욕심 없이 지금처럼 제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잘 전달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뮤지컬 '이프덴' 중 한 장면. 쇼노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