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을 앞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절대권력의 횡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게 법치다. 민주주의의 요체가 법치인 이유다. 대통령이 정치를 포기하고 계엄의 총칼을 집어들자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도 충격적이지만 내란수습의 과정 또한 도전의 연속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당연히 이행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무시하고, 헌법재판소는 우선순위 0순위가 돼야 할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헌법과 법치가 흔들리는 것에 비례해 국민들의 불안감과 피로도는 증폭되고 있다.
'법꾸라지' 윤석열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한덕수 국무총리의 행태도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헌재의 탄핵심판 기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복귀한 한덕수 대행은 직무복귀 이틀째인 25일에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때까지 마 후보자 임명을 미룰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헌법을 무시하는 지도자의 발언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한덕수 대행은 국무회의에서 "헌재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바른소리'를 했다.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사회질서를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겠지만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한 대행이 헌재의 총리 탄핵소추 기각을 면죄부로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재판관 임명 보류에 대해 헌재는 지난달 27일과 전날 두 차례에 걸쳐 분명하게 위헌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가 밝힌 이상 한덕수 대행에겐 재판관 임명을 이행할 헌법적 의무가 주어졌다. 마은혁 후보자는 국회에서 후보자로 선출된 지 석 달이 되었고, 헌재의 위헌판단 후에도 26일이나 경과한 만큼 '검토 기간'은 충분했다고 본다. 임명이 늦어질수록 내란세력을 이롭게 하려는 '방탄'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한 대행은 전날 "이제 좌우가 없다", "합리와 상식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오로지 나라와 국민 전체를 바라보겠다"고도 했다. 이 발언이 본질을 흐리는 정치언어인 이유는 12.3 비상계엄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법치파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회(老獪)한 공직자의 영혼없는 말이 되지 않으려면 위헌 판단이 내려진데 대해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마 후보자를 즉각 임명해 헌법준수 의지를 보여주는 게 우선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박종민·류연정 기자헌법재판소도 탄핵심판 지연 자체가 점점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는 점을 직시하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준비기일에 앞서 "탄핵심판 중 이 사건을 최우선으로 심리하기로 했다"고 약속했다. 헌정질서의 조기 정상화을 위해 대통령 파면 여부를 신속히 가리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탄핵심판 변론을 종결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선고 날짜 조차 공지하지 않는 건 지극히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헌법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틀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TV로 생중계된 비상계엄의 전 과정과 탄핵심판에서 청취한 증언, 수사기관의 진술조서 등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 여부를 판단할 근거는 충분했고, 평의를 위한 기간도 지금까지 1달이나 주어졌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4대 의무를 진 국민은 최상의 정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헌재는 국민의 권리가 더 이상 침해되지 않도록, 그리고 국민불안과 사회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정치권에 눈 돌리지 말고 오로지 헌법에 입각해 존재 이유를 입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