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최희연이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베토벤이 침묵 기간을 깨고 작곡하면서 진화해 간 방향은 통일(unity)이에요. 특히 후기 소나타는 합창 교향곡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죠. 갈수록 양극화하는 세계에서 통일성과 화합의 메시지를 보냈던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와 합창 교향곡 같은 작품들은 어느 시대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피아니스트 최희연(57)이 최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이 시대에 베토벤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된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며 베토벤의 소나타가 화합의 메시지를 준다고 답했다.
9년에 걸쳐 32곡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마무리하고 앨범 출시와 함께 리사이틀을 선보인다. 최희연은 2일 대구 공연에 이어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 기업은행챔버홀에서 독주회를 가진다.
최희연은 2015~2023년 독일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마틴 자우어, 조율사 토마스 휩시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 전집 '테스터먼트(Testament)'를 첫 녹음을 한 지 10년 만인 지난달 28일 발매했다.
6세에 인천시향과의 협연으로 데뷔한 최희연은 한국 피아니스트의 중심 계보를 잇는 독보적인 연주자다. 1999년에는 서울대 음악대학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공개 오디션을 통해 교수로 임용됐고 2023년부터는 미국 명문 음대 피바디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히 베토벤 전문가로 이름난 최희연은 2002년부터 금호아트홀에서 4년에 걸쳐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고, 당시 전 석 매진을 기록하며 유명세를 탔다.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2015년 첫 녹음을 시작한 이후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2003년 처음으로 녹음을 결정했으나, 2004년 결혼과 임신으로 한번 무산이 됐고, 이후 후원자가 세상을 뜨면서 다시 중단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는 "(당시) 아이를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모든 것을 아이 생명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계약을 중단했다"고 돌아봤다.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녹음은 무기한 연기됐다.
2015년 녹음을 시작한 이후 자신의 베토벤 연주 실력에 대한 회의감으로 중단하기도 했지만, 프로듀서 마틴 자우어(Martin Sauer), 조율사 토마스 휩시(Thomas Hübsch) 등의 격려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전했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
특히 배우자의 '전폭적인' 지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희연은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계속 이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희생 덕분이었다"며 "남편이 육아까지 담당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자는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역임한 유일준 변호사다.
"미치도록 사랑했던 것 같아요. 베토벤의 음악과 인간으로서 강박적 면모까지도 사랑했던, 그러니까 약간 미쳤던 거죠. 왜 사랑했는지는 묻지 말아 주세요. 그 사랑이 깊어지고 있습니다."베토벤과의 인연에 대해선 "음악을 전혀 전공하지 않은 어머니가 베토벤을 특별히 좋아했다"며 "일찍이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려운 시기에 제가 베토벤 곡을 연주할 때면 어머니가 뛰어와 '작곡가가 누구냐', '너무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베토벤 음악은 어머니께 힘과 용기를 줬던 음악"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은 항상 문제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발전부인데, 해결 과정이 속을 후련하게 해주고 천재적이고 카타르시스를 준다"며 "어떤 드라마틱한(극적인)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신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번 앨범 제목을 증언, 유산을 의미하는 '테스터먼트(Testament)'로 정한 것도 베토벤 음악이 지닌 '투지' 때문이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은 무엇을 강력하게 증언하는 것과 같고, 32개의 소나타는 후대 음악인에게 남긴 유산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2악장은 베토벤의 마음속에 있는 낙원을 표현한 것 같고, 성경 마태복음의 "너희가 어린이의 영혼을 갖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나에게 이 악장의 주제는 일말의 거만, 거짓, 꾸밈도 없는 순수한 영혼의 노래와 같다. 변주를 통해 음표가 세분화되고, 음역이 상승하면 음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의 기쁨을 표현하면서 엑스터시에 이른다. 마지막에 돌아온 주제는 절대 지존자가 깊고 깊은 사랑의 목소리로 "루-드비히!"하는 부름과 연이어 화답하는 '아멘, 아멘'과 같이 들린다. "-앨범 내지 원고 중에서
3월 28일 발매된 피아니스트 최희연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 유니버설뮤직 제공10일 공연의 연주곡은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과 후기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이다.
최희연은 후기 소나타 3곡을 두고 "웬일인지 최근 들어 가장 친밀하게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발트슈타인'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연주와 녹음을 도와준 고(故) 한스 라이그라프(Hans Leygraf) 교수, 고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회장, 고 문계 음반 수집가에게 헌정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최희연은 "신드롬(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 조성진뿐 아니라 반짝반짝하는 한국 피아니스트가 정말 많아 동료 교수들이 한국인들은 어떻게 된 거냐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며 "음악은 곡예나 현상이 아닌 수세기의 역사가 담긴 문화인 만큼 한국에 진정한 음악문화가 생겨 러시아나 프랑스 음악 학교처럼 세계적인 한국 계보가 생길 날을 꿈꾼다"고 강조했다.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