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북 영천시 육군3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9기 졸업 및 임관식. 연합뉴스12·3 내란 사태와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육·해·공군 사관학교, 또는 육군3사관학교 등까지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사관학교 통합은 군 합동성 강화 등을 이유로 과거에도 몇 차례 시도됐지만 이번에는 1979년 이후 무려 45년만의 쿠데타에 따른 충격파로 인해 현실성이 더 높아졌다.
군 안팎에선 6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 대대적인 군 개혁이 불가피하고 여기에는 사관학교 개편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토론회에서 "어떻게 된 게 세계에서 1개 학교가 성공한 쿠데타 두 번(5·16, 12·12)을 포함해 다섯 번 내지 일곱 번의 (유사) 쿠데타를 기획하는 것은 보다보다 처음 봤다"며 사관학교 통합을 주장했다.
육사 출신의 거듭된 쿠데타에 '개혁' 공감대 높아져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육사‧3사 통합에 이어 3군 사관학교 통합이라는 단계적 방안을 추진할 때 3사 총동문회가 실력행사까지 거론하며 강력 반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해‧공군 역시 각 군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논리와 함께 육군 위주의 통합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특히 이번 통합 논의는 육사 출신 장교들의 대거 쿠데타 연루가 주된 배경이라는 점에서 해‧공군의 피해의식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해사와 공사의 영문 이름이 각각 'Naval Academy'와 'Air Force Academy'인 반면 육사는 군을 혼자 대표하듯 'Military Academy'인 것은 그 패권적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육군(육사)의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관학교 통합은 군의 핵심을 차지했던 과거 달콤한 위상과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사 5년차 전역자 모임인 '대륙회' 회장 송철수 서울안보포럼(SDF) 사무국장은 "쿠데타 방지와 사관학교 통합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며, 문제는 오히려 정치적 군 인사에 있다"고 말했다.
'제복 입은 시민' 독일군 벤치마킹 필요성도 대두
하지만 이미 수십년 전 척결된 줄 알았던 쿠데타 DNA가 또 다시 육사 출신에 의해 발현됐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부인하기 어렵다.
육사는 윤석열 정권 2년차인 2023년에도 뜬금없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로 정체성 논란과 함께 육사 이전 필요성을 자초한 바 있다.
아들까지 2대가 육사 출신인 예비역 장교 A씨는 "육사가 쿠데타 양성 학교라는 오명을 쓴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아직도 거기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아프지만 과거와 철저히 단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관학교 통합은 각 군에 맡겼던 장교 육성을 일반 정부기관, 즉 문민화 된 국방부로 이관한다는 의미도 있다. 군의 특수성과 함께 '제복 입은 시민' 의식 간의 균형을 취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세계사적인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독일의 장교 양성 체계를 벤치마킹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독일 육군의 경우 장교 후보생 과정(6개월)을 마치고 4년제 일반 대학과 비슷한 '연방군 대학'과 이후 '장교 교육 2‧3단계'를 거쳐 일선 소대장에 배치한다.
교육 기간은 통상 6년 남짓이며, 장교 후보생도 말단 병사부터 단계별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군의 일치감과 상호존중 문화를 철저하게 내면화한다.
동‧서독 통일 후 장교학교가 이전한 드렌스덴이 히틀러에 저항했던 슈타우펜베르크 같은 '반골 장교'의 본산이었다는 점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인구 감소 따른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도 필요성 거론
사관학교 통합은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와 관련해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도 요구된다.
육사 300여명, 해사 170여명, 공사 200여명의 입학정원을 가진 소규모 학교를 별도 운영하는데 따른 예산 중첩을 더 용인하기도 어려워졌다.
우리나라는 미국 사관학교 제도를 모방했지만 정작 그 내용은 따라 잡지 못했다. 단적으로 미국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민간 교수 비율이 20~50%인데 비해 우리는 10%대 초반에 불과하며 그나마 모교 출신의 신참 위관급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 예비역 해군 장교는 "(서울의 일반 대학과) 같은 조건에서 급여가 뻔한 해사 교수로 부임한다는 것은 사명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사관학교는 미국 전체 공립대학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하버드 등 사립대학과 비교해도 별로 밀리지 않는 학문적 전문성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 사관학교들이 기존의 여러 이유에다 최근 12·3 사태까지 겹치는 악순환으로 인해 우수 인재들이 기피하는 현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