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헤다'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기자분들 중에 연극 보신 분 계신가요?"
"'파과'는요?"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 시작 전 주인공 '헤다'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62)이 취재진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손을 든 취재진들을 확인한 뒤 미소를 지었다.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 이혜영이 13년 만에 다시 '헤다 가블러'로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으로 나선 헨리크 입센 원작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헤다 가블러'는 '근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대표작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제약을 거부하고 자유를 갈망하다 끝내 파멸을 맞이하는 복잡한 내면을 지닌 여성 주인공을 그렸다. '헤다 가블러'는 결혼한 후에도 남편의 성이 아닌 원래 이름으로 살아가겠다는 헤다의 의지를 나타낸다. 6개월 동안의 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36시간 만에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이혜영이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 연기상과 제49회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받는 등 '원조 헤다'로 호평받은 2012년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을 맡은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초연 때 헤다를 '신'으로 해석했다면 이번에는 보다 인간적으로 접근했다"고 차별점을 설명했다.
박 감독은 "'헤다 가블러'는 흔히 여성서사, 여성의 해방이나 자유 의지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해석되는데 21세기에 와서는 젠더를 초월한 한 존재,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본다"고 말했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으로 나선 헨리크 입센 원작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초연 때 지금은 돌아가신 김의경 선생님이 '헤다 가블러'를 하자고 해서 '그게 뭐예요?' 했어요. 이렇게 세련되고 충격적인 작품을 왜 여태까지 안했을까 여쭤봤더니 '이혜영 같은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지'라고 하셨죠. 헤다는 내가 있으니까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했고, (이번에도) 그 착각을 방해하는 요소는 아무 것도 만나지 않고 있어요."
이혜영이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60대 초반인 이혜영이 신혼여행을 막 마치고 온 새 신부인 '헤다 가블러'를 연기한 데 대해선 "카메라에 담기는 배우의 모습은 나이를 먹은 대로 나온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나이가 문제 되지 않는다. 나 스스로 '헤다'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극이 좋은 것은 라이브라 '일회성' 예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다른 공연을 새 관객과 만든다"면서 "나이 때문에 걱정한 것은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였다. 마침 영화 '파과' 홍보와 연극 연습이 겹쳤는데, "보컬 훈련도 하고 링거를 맞는 등 체력 관리에 더욱 신경 썼다. 그리고 출연진 가운데 가장 선배이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헤다'로서 신뢰를 주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으로 나선 헨리크 입센 원작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늙어서 연기가 안 되면 어떡하겠어요. 연습도 공연이라고 생각하며 '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지난달 개봉한 액션 영화 '파과'에서 60대 여성 킬러를 연기하며 갈비뼈 3개가 부서지는 부상까지 당했지만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연극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하는 등 강행군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당초 지난 8일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헤다의 불안을 자극하는 브라크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윤상화의 갑작스러운 건강상 문제로 배우가 교체되고 개막이 미뤄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긴급 투입된 배우 홍선우는 짧은 연습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틀 만에 대사를 모두 외우며 브라크 검사 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혜영은 "개막 전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모두가 절망했다"며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모두가 지난 일주일간 고통과 죄의식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 이렇게 공연을 하는 게 기적 같다"고 했다.
이혜영은 LG아트센터에서 동시에 '헤다'로 열연 중인 배우 이영애에 대해서는 "배우가 다르고 프로덕션 전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한 것 같다"고 즉답을 피했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으로 나선 헨리크 입센 원작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