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제공 "언제나 작은 날붙이 안에 가꾸어진 엄마의 정원을 궁금해하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2022년 '플렉시테리언'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에 등장한 작가 이안리가 첫 장편소설 '각자의 정원'을 펴냈다. 이번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사유하는 한 소년의 내밀한 성장 과정을, 섬세하고도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주인공은 아홉 살 소년 재이. 타운하우스 뒷마당 너머 그린벨트 숲이 개발될지 모른다는 소문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거대한 자연에 발을 들인다. 사람들의 관심이 '수달 서식 여부'와 '아파트 분양가'에 쏠릴 때, 재이의 눈은 그 숲의 낯선 풀결과 송사리떼, 들개 떼, 어둠이 내려앉은 나무 그림자에 머문다.
그림 같은 숲 풍경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의 세계에는 '포크로 변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재이의 가족은 대대로 사춘기를 지나며 종종 포크로 변하는 유전적 특성을 지녔다. 재이의 엄마도, 형도 그렇게 날붙이 안에 잠겨 있다. 재이는 가족의 마음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는다.
하지만 소설은 단절이 아닌 사랑을 이야기한다. '알 수 없음'과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이안리가 정의한 사랑이다. 그래서 '각자의 정원'은 성장소설이자, 생태소설이며, 무엇보다 사랑을 배우는 이야기다.
이안리 지음 | 문학동네 | 248쪽
나비클럽 제공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무사타락(無事墮落)'이라는 별칭으로 먼저 입소문을 탄 화제작, 무경의 연작 소설집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이 정식 출간됐다. 작가는 이번 신작을 통해 '악마'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를 앞세워,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속에서 인간이 저지른 작고 찜찜한 선택들을 찬찬히 파고든다.
이야기의 문은 주인공 '나'가 의문스러운 바(bar)에 들어서면서 열리며, 자신을 '악마'라 지칭하는 인물과의 술자리로 이어진다. 아드벡 10년산이 가득 담긴 잔 너머로, 악마는 네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형식은 우아하고 수다스럽지만, 그 내용은 정교한 악의의 기획서처럼 섬뜩하다.
연작은 한국전쟁, 유신시대, 1987년 민주화 이행기, 1990년대 사이비 열풍 등 한국 사회의 그림자를 무대로 한다.
첫 단편 '치지미포, 꿩을 잡지 못하고'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 '아이를 살릴 것인가, 명령을 따를 것인가'라는 비극적 선택의 기로를 그린다. '폐문조거, 문을 열지 못하고'에서는 밀실 살인 사건을 통해 신앙과 맹신, 구원의 본질을 묻는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한 '부복장주, 뱃속에 숨기지 못하고'는 '금괴'라는 고전적 욕망을 매개로 인간의 탐욕을 밀폐된 폐광이라는 공간 안에 가두고, '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는 유신시절 취조실에서 펼쳐지는 도덕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2024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 '낭패불감'도 수록됐다.
무경 지음 | 나비클럽 | 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