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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노트, 소주병 덩그러니…고독하게 떠난 청년 소연씨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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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고립·은둔 청년 54만 명. 청년들이 점점 고독해지고 있다. 마음의 문을 닫은 이들은 우울과 무기력에 잠식되고, 4명 중 3명은 죽음을 떠올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CBS노컷뉴스가 고독사 위험 그늘에 놓인 고립·은둔 청년들을 만났다. 청년들은 왜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을까. 고립의 원인부터 정책의 한계, 회복의 가능성까지를 9편에 걸쳐 조명한다.

[고독 死각지대, 고립청년①]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냉동 식품들이 가득했다. 김새별씨 제공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냉동 식품들이 가득했다. 김새별씨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빚 노트, 소주병 덩그러니…고독하게 떠난 청년 소연씨의 '흔적'
(계속)


숫자로 빼곡하게 채워진 노트…청년 고독사 현장에 남겨진 것


"동생이 죽었어요…" 김새별 유품정리업체 대표는 전화기 너머로 유일한 혈육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고인은 지방에서 홀로 지내며 대학 생활을 이어나갔던 이소연(24·가명) 씨였다.
 
소연 씨가 떠난 집은 어수선했다. 고독했던 현장의 주방 싱크대에는 소주 두 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냉장고 문을 열면 금방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얼려진 식품들이 가득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 대학생 신분이었던 그가 감당해야 했던 현실은 왜 이리 벅찼던 걸까. 노트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숫자들은 그가 살아생전 돈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싱크대에는 다 비워진 소주 두 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노트에는 숫자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김새별 씨 제공싱크대에는 다 비워진 소주 두 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노트에는 숫자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김새별 씨 제공
소연 씨의 노트에는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 공과금, 학자금 대출 이자, 체납된 고지서, 지인들에게 빌린 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했던 그는 사망 직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것도 확인됐다.
 
방구석에는 삶의 갈망이 담긴 '흔적'들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책상 위에서 발견된 책 제목처럼 소연 씨는 누구보다 잘 살고 싶은 염원이 가득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서툰 자신의 삶을 응원받고 싶었던 적도 많았을 테다. 책 표지에는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포기하지 말고 버티고 견뎌라'는 문구가 보였다.
 
'잘 사는 게 최대 복수다' 
'조금 서툴더라도 네 인생을 응원해' 
'성숙한 어른이 갖춰야 할 좋은 심리 습관'
 
소연 씨 책상 위에서 발견된 책들. 김새별씨 제공 소연 씨 책상 위에서 발견된 책들. 김새별씨 제공 
김새별 대표는 청년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계기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빈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압박감에 죽는 경우들도 많이 봤어요. 특히 대학 졸업 직후 사망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취업에 대한 부담과 주변에서 바라보는 기대치는 청년들에게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 중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등록금은 물론 교재비, 식비 등 지출은 많은데 아르바이트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것조차도 많이 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 쉽게 놓인다. 저소득 청년 1인 가구 상황도 다르지 않다. 고용불안이 이어지면서 청년층 사이에서 취업을 포기하거나 집세, 생활비에 허덕이다가 수급자로 전락하는 경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20~30대 기초생활수급자는 24만767명으로, 2018년 대비 약 45% 올랐다. 전체 고독사 사망자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중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2022년 39.7%(1301명)에서 2023년에는 41.4%(1413명)에 달했다.

'은둔형 외톨이' 명문대생…끝내 풀지 못한 인생의 '정답'


유품 정리를 하다 발견한 진원 씨의 일기장. 김새별 씨 제공유품 정리를 하다 발견한 진원 씨의 일기장. 김새별 씨 제공
-故진원 씨 일기장 내용 중에서-
#전공 시험? 잘 쳤을리가. 시간 부족으로 3문제 정도 답 못 썼고, 나머지도 제대로 썼는지도 모르겠다. 자취방에 와서 공부를 빙자한 딴짓을 하고 있다. 이제는 오만하기까지 한 내 자신,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혼은 아직도 19세에 머물러 있는데 시간은 당연히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전히 내 탓 같다. 내가 배불러서, 내가 핑계 대서, 내가 어쩌고 저쩌고…난 언제쯤 내가 만든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 떠나간 청년이 또 있었다. 양진원(26·가명) 씨는 어렵게 명문대를 합격한 든든한 아들이자, 가족들의 자랑이었다. 군 제대 후 복학해 학교 근방에서 자취 중이었던 그는 서울로 올라와 보증금 550만원에 좀처럼 빛 하나 들어오지 않던 원룸에서 고군분투했다.
 
책상 위에서 발견된 진원 씨의 일기장에는 자책과 원망이 담긴 글들로 가득했다. 착한 아들, 모범생, 명문대 재학생으로 자라온 고인은 학업과 취업에 대한 압박 속에서 점차 자취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사이 생명이 꺼져가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다짐들도 해봤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고장 나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았던 진원 씨는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가두며 은둔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둔형 외톨이'란 일체 사회 활동을 거부한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유품 정리를 하다 발견한 일기장과 개인 태블릿 PC에 그가 검색했던 단어들이 이를 설명해 준다.
 
"은둔형 외톨이"
"ㅈ ㅏ ㅅ ㅏ ㄹ"


진원씨가 태블릿 PC에 검색했던 단어들. 김새별 씨 제공진원씨가 태블릿 PC에 검색했던 단어들. 김새별 씨 제공

매일 10명이 '고독한 죽음'?…현장은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소연 씨와 진원 씨처럼,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청년들은 그저 '예외적인 개인'이 아니었다.

매일 10명 이상이 고독한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고 통계는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고독사 사망자는 3661명에 달하는데 그중에서도 청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앞선 5년간 5~7%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망자들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 3천 건에 가까운 유품을 정리한 김 대표는 "고독사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 청년의 수는 더 많을 것"이라면서 "전 연령 중 약 25% 정도로 체감된다"고 말했다.
 
고독한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숫자는 더 많다.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청년의 삶 실태조사(2022)' 및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 고립·은둔 청년 규모가 최대 약 5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첫 전국 단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총괄한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적인 고립과 은둔 생활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청년들이 자살 또는 고독사할 확률은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고립·은둔하고 있는 청년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은 통계에서도 극명하게 확인됐던 바이기도 합니다. 고립된 청년 4명 중에 3명 정도가 스스로 자살 생각을 했고, 4명 중 1명이 실제로 시도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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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두의 문제…"청년 고독사 심각성 인지해야"


"청년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찾아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청년들의 고립된 죽음은 어쩌면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비극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역임하며 자살자의 사인을 밝혀내는 작업에 참여했던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전에 고독사라고 하면 흔히 1인 가구 독거노인을 떠올리지만, 최근 청년들의 고독사도 외면할 수 없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노인 같은 경우는 다양한 지역 사회 서비스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고독사 예방 서비스가 굉장히 적습니다. 그마저도 서울이나 경기도에 일부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청년들이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고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김성아 연구원은 청년들의 고립과 고독사 문제가 굉장히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현상인 만큼 정부에서 실행 중인 사업 한두 개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제언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고립·은둔청년지원 사업이 있고, 고독사 예방 관련된 별개의 사업도 따로 있고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외로움에 대응해서 '문화로 사회 연대' 사업들을 하기도 해요. 만약 모든 정책들이 분절적으로 작동을 하게 되면 종합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년들이 원하지 않아요"…정부의 고독사 예방 대책 '산 넘어 산'



고독사 예방법에 따르면,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이한 경우를 의미한다.
 
2022년에는 고독사 사망자를 '홀로 사는 사람'으로 한정했으나, 지난해 2월 '시신이 일정 시간 흐른 뒤 발견된 죽음'이라는 정의마저 지워져 혼자 살지 않더라도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생활해왔던 사람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됐다.
 
관련 법 제정 당시 고독사 위험이 있는 경우 국가 및 지자체가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의무도 함께 규정됐다. 이에 정부는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 집에 센서를 설치해 일정 시간 움직임이 없는 경우 자동으로 알람을 보내는 '스마트 돌봄 시스템'을,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독사 위험 가구를 발굴하는 '안부 확인 서비스', '우리동네돌봄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고독사 예방·관리 체계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각종 지자체에서 고독사 예방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행 중이지만, 모든 연령층을 중심으로 한 통합적인 서비스 연계와 조정 체계는 미흡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의 한 주민센터 고독사 담당 공무원 A씨는 "청년들 스스로가 (정부의 고독사 예방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고독사 방지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청년의 비중은 거의 제로라고 봐도 된다. '고독사 위험군'이라고 하면 중장년 이상의 연령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타 지역의 공무원 B씨는 "사회적 고립 가구를 상시 돌보는 '우리동네돌봄단' 활동은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청년들에게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고독사 예방 및 대응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박정현 서울시 고독·고립 보호팀장은 "고독사 발생 연령대 중 50~60세대가 많다 보니 기존 서비스 이용자들이 중·고령자 위주인 것은 사실이다"고 공감했다. 이어 "정부는  청년층 고독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정책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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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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