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캠프 모습. good!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빚 노트, 소주병 덩그러니…고독하게 떠난 청년 소연씨의 '흔적' ②[르포]쓰레기 속 웅크린 청년들…닫힌 방 안에 외로움이 쌓인다 ③빈 주머니에 다시 방문 닫는다…'고립·은둔 중년' 될까 걱정만 ④'우울 감옥' 사는 청년 "고립으로 찐 살 20kg, 내 마음은 쓰레기장" ⑤"저는 30대 고립청년입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⑥"죽거나 노숙자가 될 뻔 했는데"…'은둔 스펙'으로 탈고립한 청년 ⑦"눈 따가웠지만, 양파 손질 뚝딱"…탈고립 청년이 건넨 도시락 ⑧[단독]"즉시지원" 한다더니…尹정부, 고립청년 13%만 도왔다 ⑨韓·日 고립 청년들은 왜 시골로 떠났을까? '기회의 땅' 된 농어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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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사흘 만에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언젠가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려워졌다. 집에서 좋아하는 일만 하는데도 매일이 괴로웠다. 야마다 타로(17·가명) 씨는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갇혔다.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부모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여한 워크캠프에서였다. 그는 낯선 참가자들과 함께 진흙투성이가 될 때까지 목장 일을 도왔다. 일과 후엔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했고,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 주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와 웃음이 오갔고, 그는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내일이 기다려졌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워크캠프에 참여했다. 예전엔 혼자 있는 게 편했지만, 지금은 여럿이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겁다. 최근에는 중단했던 고등학교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기대가 커졌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눈앞에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해 부딪히고 싶어요."
히로시마 워크캠프 모습. good! 제공야마다 씨가 참여한 워크캠프는 일본 비영리단체 'good!'이 운영하는 회복 프로그램 중 하나다. 'good!'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부등교(不登校, 등교거부)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로, 워크캠프 외에도 공동생활 기숙사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회복을 돕고 있다.
워크캠프란 우리나라의 '농활(농촌활동)'과 유사한 형태의 자원봉사 공동생활 프로그램이다. 청년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3일에서 2주가량 마을에 머물며 농업·목축업 등 일손을 돕는다. 나가노, 시즈오카, 도야마현 같은 일본 소도시는 물론, 스리랑카·몽골 등 해외에서도 캠프가 열린다.
이소다 코지(磯田浩司) 'good!' 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비일상적 환경에서 타인과 함께 지내는 워크캠프는 단기간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활력을 되찾는 데 효과적"이라며 "
특히 함께 몸을 움직이고, 먹고 자는 생활 구조가 심리적 장벽을 낮춰 타인과 관계맺기를 수월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워크캠프 참가자 상당수는 학교와 사회에 복귀하는 등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한 청년은 "사소한 행동에도 칭찬을 건네고,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모르게 좋은 모습이 나왔다"고 전했다.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센터 전경(왼쪽). 청년들이 센터 내 자유공간에 모여 식사하는 모습. good! 제공2001년부터 단체를 운영해온 이소다 대표는 "최근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소한 실수에도 불안을 느끼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며 "
관계에 대한 피로감이나 불안을 호소하거나, 관계를 맺는 경험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초연결 사회'를 꼽았다. 그는 "코로나19와 SNS의 발달로 사람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경험은 줄어든 반면, 스마트폰을 통해 얕은 관계에 익숙해지고 하루 종일 과도한 정보에 노출된다"고 했다.
인간관계를 맺지 않아도 사회와 연결된 듯한 착각을 주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관계에 대한 부담과 회피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소다 대표는 "한국은 일본과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스마트폰·SNS 등의 급속한 보급이라는 현대적 변화 속에서, 그 부작용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지 못하는 청년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제주로 간 고립청년들…"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땅"
"제주 청년들은 너도 나도 육지로 간다. 그곳이 더 넓은 기회의 땅이니까. 하지만 난 반대로, 거슬러 내려왔다. 그들과는 다르게 내겐 이곳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으니까."
– 제주리트릿 참여자, 안혜진님 글 발췌
제주두더집 전경. 씨즈 제공사단법인 씨즈는 지난해 4월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쉼터 '제주 두더집'을 열었다. 서울에 이은 두 번째 거점으로, 제주 지역의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고, 육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제주 리트릿'과 '제주 일경험' 등을 운영한다. 청년들은
일정 기간 제주에 머물며 농촌 일손을 돕고, 공동체 마을을 탐방하며 짧게나마 지역의 일원으로 살아본다.
제주 두더집은
지역사회과 고립·은둔청년을 연결하기 위한 씨즈의 첫 실험지다. 제주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단법인 씨즈 이은애 이사장은 "지역공동체를 오랫동안 일궈온 분들이 계시고, 본인이 가진 지식과 자원을 동원해 미래세대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어른'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년에 첫발을 뗐는데, 벌써 세 명의 고립·은둔 청년이 정착했다.
서울에서는 실패로 여겨지는 비표준적인 삶이, 제주에서는 오히려 지속 가능한 형태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IT업계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고립청년 순이(가명) 씨는 현재 동네 목수이자 할머니들의 그림강사로 일하고 있다. 파트타임 보조강사라 수입은 많지 않지만, 정착 당시 마을 어른들이 방을 저렴하게 내어준 데 대한 보답의 마음으로 일을 이어간다. 사회가 청년기 과업으로 정해놓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본인 속도에 맞는 일인 데다 지역과 연결돼 만족스럽다고 한다.
제주도 풍경. 강지윤 기자
이은애 이사장은 "좋은 사람들의 환대가 있으니, 오히려 익명성이 강한 도시보다 이곳을 더 안전하게 느끼더라"며 제주에 정착한 청년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해남이나 고흥 같은
인구소멸 위험 지역에, 고립·은둔 청년들이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며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며, 청년이 느린 속도로 회복하면서도 지역에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확대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일본 산촌에는 히키코모리 청년들이 함께 지내는 공간이 생기고 있다"며 "이들은 농번기에 일손을 돕고, 번 돈으로 나머지 기간을 천천히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
수도권 집중과 경쟁 과열, 1인 가구 증가가 고립·은둔 청년 문제의 구조적 원인"이라며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으로 흩어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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