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준 감독은 영화 '84제곱미터' 영문 제목을 'Wall to Wall'로 지은 부분에 대해 "84제곱미터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만 있어서 해외에선 공간의 크기로만 받아들여질 거 같았다"며 "영화의 주제를 제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이어서 골랐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그도 층간소음을 겪은 '피해자'였다.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를 연출한 김태준 감독은 작품 집필 당시 층간소음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예민하던 시기였는데 참다 참다 딱 한 번 윗집에 가서 항의했어요. 다행히 이후부터 조용해졌지만, 새벽마다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어요."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한 사람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당시 작품의 제목은 '공동주택'이었다. 우연히도 초고를 완성한 날에 윗집이 이사를 했고, 이후에도 똑같은 소리가 새벽에 들려왔다고 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김태준 감독은 "층간소음의 원인이 윗집이 아니었더라"며 "제게 영감을 주는 거 같았다. 사고가 확장되면서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 '84제곱미터'. 넷플릭스 제공'84제곱미터'는 아파트 내 층간 소음을 소재로 이웃 간의 첨예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은 이른바 '영끌'을 통해 아파트를 장만한 뒤 층간소음을 겪게 되는 노우성(강하늘)과 아파트 최고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입주민 대표 은화(염혜란), 노우성의 위층 집에 사는 이웃 영진호(서현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 감독은 층간소음을 표현하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 그는 "관람에 방해되지 않도록 소음의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데시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노우성의 감정선을 따라가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우성의 심리 상태에 맞춰 소음의 크기를 조절했다"며 "노우성의 기분이 좋을 때는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가도,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점점 커지고 소음 자체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작품 오프닝 장면도 노우성의 심리를 반영한 설정이다. 김 감독은 "가장 밝은 모습이지만, 이 장면 이후로 노우성은 웃을 일이 없다"며 "'서울의 찬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시대를 관통하고 있어 그에 맞는 무대를 연출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아랫집도 결국 평범한 사람…월패드 해킹 경각심도"
김태준 감독은 극 중 흑백으로 표현된 층간소음 장면에 대해선 "작품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수정하지 않은 장면"이라며 "생활 소음들을 이미지화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김태준 감독은 극 중 노우성, 은화, 영진호의 집 내부를 각기 다른 분위기로 설정했다. 노우성의 집은 서울살이의 '감옥'을 연상케 하는 답답한 공간으로, 은화의 집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함께 높고 긴 복도가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진호의 집 역시 어둡고 무거운 기구들로 채워져 묵직한 인상을 준다.
이런 가운데 노우성의 아랫집은 평범한 가정집으로 표현됐다. 김 감독은 "평범해 보이지만, 힘들어 보이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며 "아랫집에 들어간 우성이가 남아있는 고지서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동질감을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우성이가 유주택자인 상황에서 아랫집에 분노를 표출하지만 무주택자가 된 후에는 진호의 말을 듣고 다시 위를 올려다본다"며 "어찌됐든 전세로 살고 있지만 이 집에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카메라 구도에도 세심한 고민이 담겼다. 그는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의 심리를 다양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카메라 앵글을 의도적으로 당기거나 확 빠지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 "우성의 심리 변화에 따라 조명도 계속 바꾸고 소품 세팅도 조정했다"며 "우성이 어쨌든 혼자 있고 대부분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장면을 인서트 장면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소재로 활용된 월패드 해킹에 대해선 "실제로 한 차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소름돋았다"며 "전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와 겹쳐서 고민도 했지만, 이 문제를 모르시는 분도 많은 거 같아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강하늘, 가식의 껍데기 있을 줄 알았는데…"
김태준 감독은 작품 캐스팅과 관련해 "평소 장르물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염혜란 배우가 은화 역을 맡는다면 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서현우 배우는 민낯을 좀 보고 싶었다. 본인이 가진 순수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더라. 후반부에 30분 이상 감정을 폭발적으로 올려야하는데 잘 소화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김 감독은 평소 '미담 자판기'로 알려진 강하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도 소문을 익히 전해들어서 이번에 파헤치고 싶었어요. 가식의 껍데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엄청난 리더였어요. 정말 이런 형이 있었으면 좋겠고 생각했어요."그는 "전 회차에 출연하고 매 회차 다른 감정을 소화해서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연기할 때 제외하면 스태프를 챙기더라"고 떠올렸다.
이어 "먹을 걸 사주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잘했을 때 칭찬해 주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주고 굉장히 고마웠다"며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강하늘을 사랑하는 거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작품 후반부에는 정성일이 검사 역으로 깜짝 출연해 눈길을 끈다. 김 감독은 "원래 그 역할이 좀 유명한 분이 나와서 하면 작품의 마무리를 잘 지을 수 있을 거 같았다"며 "부탁을 드렸는데 선뜻 촬영에 나서 주셔서 정말 든든했다"고 웃었다.
김태준 감독. 넷플릭스 제공경영학도 출신인 김 감독은 영화 감독의 길을 걷게 된 배경도 털어놨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어 했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며 "어머니가 꿈을 지지해줄 테니 대학교에 가고 마음이 변할 수도 있으니 과도 영화로 한정 짓지 말자고 하셔서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경영학과에 간 경험이 지금은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며 "다양한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현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진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을 통해 "원 없이 놀아봤다"고 전한 김태준 감독. 그는 끝으로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밝혔다.
"언제부턴가 서울의 집을 갖는 게 인생의 목표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됐어요. 그 속에서 청년 세대들이 이리저리 치이며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우리 국민들은 항상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잖아요. 작품을 통해 이 문제를 공유하고 싶었어요."영화 '84제곱미터'는 지난 18일 공개 이후 3일 만에 64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을 기록해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영화 비영어 부문 3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일본, 프랑스, 홍콩 등 총 40개 국가에서 톱10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