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현행 종목당 50억 원으로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국회 논의에 맡기겠다"고 정리했다.
주식 시장 활성화를 내세운 경제 정책 방향과 시장 반응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정책 일관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시절의 '부자 감세'를 되살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스피 5천 시대' 강조하던 李…투자자 반발에 밀려 '대주주 기준 확대' 사실상 무산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고 "주식 시장 활성화라는 것은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의 핵심 중 핵심인데, 그것(대주주 기준 강화) 때문에 장애받게 할 정도면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기를 요청했다.
앞서 지난 7월 정부는 상장된 주식을 한 종목당 50억 원 이상 갖고 있는 대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할 때 내는 양도소득세 부과기준을 10억 원으로 낮춰 과세대상을 확대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튿날 코스피가 4% 가까이 폭락했고, 투자자들이 대주주 기준 변경 소식을 폭락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세수 결손 정도가 2~3천억 원 정도라고 하고, 야당도 요구하고, 여당도 놔두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저에게 메시지도 많이 오는 것을 봐서는 굳이 50억 원을 10억 원으로 반드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의견을 모아보는데, 대체로 원래대로 놔두자는 의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비록 국회 논의에 맡긴다지만, 이 대통령의 말대로 여야 모두 현행 유지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지난 8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대주주 기준 완화에 힘을 실은 바 있어, 정부가 추진했던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으로 낮추는 방안은 사실상 무산될 전망이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 사항이나, 국회에 맡기겠다고 대통령께서 발언했으므로 지금 단계에서 정부 입장을 드러내기 어렵다"며 "일정을 조율 중인데, 조만간 국회와 최종 협의해 결론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김정식 명예교수는 "정부 의도대로 세금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조세의 형평성에 맞는 것"이라면서도 "내수 경기가 침체돼 시기상으로 적합하지 않아 대통령이 유보한 것 아닌가 싶다"며 당장은 현행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입장을 선회한 까닭은 대주주 기준을 놓고 주식 시장이 요동치면서 투자자들이 대거 반발했던 탓이다. 이 대통령 역시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의 의지를 의심하는 시험지처럼 느끼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굳이 끝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그동안 이 대통령은 주요 투자 수단을 부동산에서 금융으로 바꿔 코스피 5천 시대로 도약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 대통령은 "새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금융을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주식 시장을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이번 대주주 기준 논란이 부른 주식 시장의 혼란을 단순한 시장의 변동이 아닌, 정부 경제 정책의 시험대로 여기는 까닭이다.
尹정부 '부자 감세' 답습한 꼴…"대주주 기준 변경에 시장 폭락? 범인 잘못 잡았다" 비판도
문제는 애초 정부가 대주주 기준을 손보려던 이유에 있다. 이번에 대주주 기준을 '유지'한다지만, 오히려 10억 원으로 낮추는 정부안이야 말로 '원상회복'이자,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감세 정책을 '정상화'하려던 조치였다.
대주주 기준은 이명박 정부 시절 10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15억 원, 문재인 정부에서 10억 원까지 꾸준히 낮춰온 진보-보수 가릴 것 없는 과세 원칙이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금웅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다시 50억 원으로 높였다.
정작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했던, 금융투자로 거둔 소득에 매기는 금투세는 2020년 관련 법이 통과되고도 시장 반발 등을 이유로 유예되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면서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폐지됐다. 대주주 기준을 50억 원으로 높일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인 11일 코스피가 전날 기록한 장중 사상 최고치(3317.77)를 하루 만에 갈아치우며 상승 출발한 가운데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방송이 나오고 있다. 류영주 기자대주주 기준 변화가 시장에 미쳤다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애초 실제 부과 대상이 전체 투자자 중 상위 0.01% 수준에 불과한데도 충격이 과장 해석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조세 정책은 단순히 주식시장에 긍정적이냐, 아니냐로만 정할 문제가 아니다. 성급하고 신중하지 못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지엽적인 문제를 주식 시장의 변화와 결부시켜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정책을 결정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단순히 대주주 기준 때문에 결정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주주에 양도세를 과세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연말에 조금 팔았다가 다시 복원하는 주기적인 변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 기재부 관료도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지만, 이미 당정 협의 등을 통해 대주주 기준 변경이 언론에 예고되면서 며칠 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며 "더구나 이날 매도는 과세 대상인 개인투자자가 아니라, 아예 무관한 기관과 외국인이었는데, 대주주 기준을 범인으로 잘못 짚었던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정책끼리 부딪히던 형국" 비판도…"이래서야 앞으로 어떻게 증세하나" 우려 나와
정부가 그간 세제 대책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접근해 대주주 기준 문제를 섣불리 건드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유호림 교수는 "애초에 정책 방향이 충돌했다. 주가 5천 시대를 얘기하면서 대주주 기준을 낮추는 것은 서로 역행하는 것"이라며 "자본시장 활성화 방향으로 신호를 준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가 됐고, 이미 시장은 움직였다"며 결과적으로는 대주주 기준 논의가 시장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종부세와 같은 부동산 세제를 손을 봐서, 부동산 투자의 기회 비용을 올리고 증시 투자는 낮춰서 부동산의 돈을 증시로 옮겨야 했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다시 시장에 혼선을 줄 수밖에 없는,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근본적으로 취임 100일 만에 '조세 정의' 대신 이해관계자들의 여론 압박에 밀려 '부자 감세'를 선택하면서, 앞으로의 정책 행보의 여지를 대통령 스스로 좁혔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김우철 교수는 "금투세를 무효화해서 대안 과세로 대주주 기준을 확대했는데, 그렇다고 계속 기준을 확대하고 거래세를 올릴 수도 없는, 유지 가능한 방향이 아니었다"며 "금투세 도입을 철회한 잘못된 선택으로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정책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주식 보유 기반 과세는 연말에 주식을 덜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거래 기반 과세는 손실이 있어도 세금을 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며 "차라리 과세 대상을 축소하더라도 소득 기반 과세 형태를 보존해야 한다. 예컨데 기존 금투세가 5천만 원 이상 과세하기로 했다면, 이 기준 금액을 일단 높였다가 점차 낮추는 식으로 재도입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극적인 대안 과세마저 '고집하지 않겠다'는데, 정부가 낸 대안은 곧 대통령의 이름으로 낸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며 "앞으로 대통령이 어떻게 증세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겠느냐.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하겠다면서 정작 세입 정책에서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답답한 일"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