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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F가 공포로 바뀌는 순간,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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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내밀한 정보까지 사이버상에 노출, 해킹 위험 일상에 도사려
기술이 일상의 공포로 바뀌는 건 한 순간, 국가의 역할 중요
통신사 해킹 사건 발생해도 한가로이 영역 싸움한 정부 기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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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위대한 SF작가로 꼽히는 필립 K. 딕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무려 2002년 개봉한 작품이지만 최근 봐도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작가가 쓸 당시에는 '공상'이었던 콘셉트들이 기술이 발전된 오늘날 지극히 '현실'로 다가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든 사람들을 안구의 '홍채'로 체크해서 감시하는 미래사회 모습이었다. 홍채를 스캔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맞춤형 광고까지 내보내는 모습은 익명성을 잃어가는 우리네 모습과도 닮았다. 홍채가 내 것인 이상 숨을 곳은 없었다. 결국 주인공(톰 크루즈)은 숨기 위해 안구를 통으로 적출해 바꿔낄 수 밖에 없었다.

자아를 구성하는 것. 예컨데 소유 재산과 직업, 취미, 건강상태, 인간관계 등 모든 정보들이 디지털화 돼 기록으로 남고 있다. 그 정보는 홍채 한번 스캔하듯 손쉽게 열리고 있다. 버튼 몇 번을 누르면 나의 모든 자산을 한 눈에 보면서 관리할 수 있고, 민감한 신체 정보들도 작은 스마트폰에 차곡차곡 수집되는 세상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세밀하게 정보화될 것이며, 내가 원한다면 더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정보들이 해킹되는 순간, 장르는 'SF'에서 '공포물'로 바뀐다. 내밀한 부분까지도 모두 디지털화 됐기 때문에 그 정보가 털릴 수 있다면 인간은 벌거벗긴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통신사들의 해킹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우리는 언제든 벌거벗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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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불안감을 잠재워줄 주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킹 사태가 터지면 단골로 등장하는 기관들은 많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그 산하의 준 정부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메인이다. 여기에 국무총리 산하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원도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관들이 각자 역할을 하면서도 따로 놀고 있다.

기관들끼리 정보 교환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영역'을 두고 기싸움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KT 유심 해킹 사건이 발생한 뒤 과기부와 국정원이 대놓고 충돌하면서 영역 싸움을 벌였고, 결국 법제처에 의뢰까지 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도 정보 교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재계의 고위 관계자는 "뭔가가 적발되면 기업들의 제재와 처벌에만 초점을 맞출 뿐, 사전 모니터 강화와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의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숨을 수 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현실을 토로했다.

해커들의 공격은 이 시각 대한민국 어딘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24시간이 '사이버 전쟁'인 셈이다. 미국, 중국, 북한 등의 국가적 지원을 받은 요원들이 안보와 정보수집 목적으로 수시로 사이버상에서 공격을 감행한다고 한다. 기업들의 정보를 해킹해 순식간에 거액을 버는 범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체 불명의 해커들로부터 국민의 민감한 정보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사이버 보안은 국방 만큼이나 필수적인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의 편리함이 일상의 공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AI 강국을 선언하며 총력을 쏟아 붓겠다고 선언한 이재명 정부는 첨단 기술의 반대급부를 봐야 한다. 신기술 개발 만큼이나 필요한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가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를 바란다. 한가롭게 속칭 '나와바리' 싸움을 하고 있는 기관들을 정리하고, 사이버 보안을 위한 법규정을 재정비하는 것도 힘 있는 이재명 정부가 키를 잡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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