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장동혁호(號)' 출범 한 달을 앞둔 국민의힘이 대여(對與)투쟁 화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손을 맞잡고 웃던 화기애애함은 온데간데 없다.
언어의 수위도 달라졌다.
장 대표는 특검 고발을 입에 올렸고,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권력 우위론' 발언 등을 두고는 "탄핵감"이란 얘기도 나왔다. 당의 중진인 나경원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당정을 향해
"계엄보다 더하다", "선출 독재" 등 독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는 궁지에 몰린 당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 11일 특검법 합의안 파기를 시작으로,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관련 실형 구형, 권성동 의원 구속,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법안 발의, 당사 압수수색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감지된다.
21일 '텃밭'인 대구에서 당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는 이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다만 내부에선 마냥 '강공 모드'만 고집하기도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이 직면한 3대 딜레마를 꼽아 봤다.
①장기전 카드는 아닌 '장외투쟁'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를 연다. 당은 대구·경북 당원협의회에 당협별 300명 이상의 참여를 요청하는 등 대대적 집회를 예고했다. 보수정당이 장외전에 나서는 것은 '조국 사태'가 있었던
지난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시절 이후 약 6년 만이다.
장외투쟁은 이재명정부 들어 줄곧 거론돼온 카드다. 다만, 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광장의 정치'와 다소 거리를 둬왔다. '윤 어게인(Yoon Again)'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권을 쥔 장 대표조차도 그랬다.
의원들이
본진인 원내를 두고 나가는 것은, '최후의 보루'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강성 당원들과 원외 인사가 대거 동원되는 구조상, 발언의 내용과 수위를 통제하기 힘들다는 리스크도 있다. 다음 달 추석 직후에는 흔히 '야당의 무대'로 불리는 국정감사도 예정돼 있다.
실제로 지도부도 당장 장기투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은 없다. 신동욱 수석최고위원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정기국회 중인 상황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로 (계속)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부담을 좀 갖고 있다"고 했다.
여론전 측면에서도 생각보다 효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고민이 깊다. 매 주말 광화문을 향했던 '황교안 체제'를 겪은 국민의힘 관계자는 "빨리 나가서 빨리 망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자조하듯 말했다. 또 다른 원내 인사는 "국회 안에선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도
"(싸울) 전략 없이 나가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②약발 다한 '반(反)이재명' 구호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법원붕괴 독재탄생, 사법종속 범죄천국' 피켓을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 기자계엄·탄핵 국면부터 6·3 대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천착해온 '반명(反明·반이재명)' 구호가 시효를 다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당정의 실책을 예리하게 짚고 국민의 '가려운 곳'은 긁어주는 대안정당의 면모가 실종됐다는 내부 평가도 나온다.
녹슨 칼로 전의만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석 달여 전 국민의힘은 사법리스크를 떠안은 이 대통령을 '가장 쉬운 상대'라고 평가했지만, 대선 결과는 냉정했다. 수도권 기반 의원들은 전체 41%대 득표율보다 지역구의 민심 이반에 주목했다. '이재명 때리기' 말고는 전략도 대안도 없었다는 자성이 나온 배경이다.
이는 공수가 바뀐 지금도 유효한 문제의식이다.
'타격감 있는' 여당 견제를 위해서는 새로운 구호와 내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은 18일 조정훈 의원(재선·서울 마포구갑)과 가진 토크콘서트에서 "당이 아직도 '여당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만 공격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는 분들도 계신데, 왜 (국민적) 지지를 못 받는지를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전국지표조사(NBS) 등 복수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여전히 민주당의 반토막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
③본격화된 '선거 모드'에 또 멀어진 혁신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질문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같은 맥락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당 전반의 혁신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위원장에 나경원 의원을 임명하며 '압도적 승리' 의지를 다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최근 여야가 나란히 선거 준비체제에 돌입한 상황이 혁신을 더 멀어지게 만들 거란 우려도 흘러 나온다.
전국적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내부를 결집해야 하는데,
단일대오를 해칠 수 있는 '껄끄러운' 사안을 굳이 꺼내겠냐는 것이다. 즉,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반목했던 반탄(탄핵 반대)파와 찬탄(탄핵 찬성)파가 당분간 불편한 동거를 더 이어갈 거란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애매한 포지션'이 중도층에게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당'이란 인식을 줄 수 있고, 향후 선거 구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거가 끝나고 성적표가 나와야, 비로소 혁신이 또다시 화두에 오를 것"이라며 "그 전에는 분당(分黨)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