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자택에서 나온 한국은행이 적힌 비닐로 포장된 돈뭉치. 2025.4.23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내일(22일) 열리는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서 이른바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의 경위를 다시 확인한다.
띠지 분실에 책임이 있는 담당 검사 등 수사팀과 압수계 수사관 사이 책임공방이 격화하는 가운데, 청문회에선 애초 띠지 분실 의혹의 핵심이었던 고의적인 증거 은폐 여부에 대해 규명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관봉권 띠지 분실 의혹, 수사팀-압수계 갈등으로 비화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일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회에는 건진법사 전성배씨 사건을 수사했던 최재현 검사와 수사팀 관계자들, 전씨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증인 출석을 앞두고 최 검사는 지난 1월 띠지 분실을 인지한 이후 수사팀과 압수계 담당자들이 나눈 대화를 검찰 내부망에 공개했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수사팀 수사관인 A 계장은 지난 1월 압수계에 근무하던 B 수사관에게 "원형보존 지휘했는데, 보존 안 된 게 있다"며 "오늘 금고 확인 결과 띠지 및 비닐 포장이 모두 제거된 상태로 확인되었는데, 제거 경위를 확인하려 한다"고 띠지가 분실된 경위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수사관이 "원형보존은 현금을 계좌 보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현금을 세려면 필수적으로 띠지와 포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압수계에 따로 보관된 띠지와 포장지 등은 없는 걸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후 최 검사도 B 수사관에게 메시지를 보내 "원형보존은 증거물이 그 자체로 증거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검사로부터 원형 보존의 필요 유무에 대한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수사관이 관련 내용이 업무 매뉴얼에는 없다는 취지로 답하자 최 검사는 "사건과장에게 보고 드려 올바른 업무절차를 마련하라"고 보냈다. 최 검사가 공개한 내용은 결국 관봉권 띠지 분실의 책임이 압수계에 더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최 검사가 조광훈 조사과장에게 연락해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조 과장은 "사건이 발생하니 마치 관봉권의 존재를 알고서 원형보존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꿰맞춘 것은 아닌가"라는 반박 입장을 냈다.
논란이 이어지자 최 검사는 잘못을 부인하기 위해 글을 올린 게 아니라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게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 했던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덧붙였다.
여권은 관봉권 띠지 분실이 고의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지만, 고의 여부가 입증되지 않고 일부 수사 담당자들의 실수로 결론 난다면 관봉권 띠지 분실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상부 보고 왜 안 했나…또 '특검 수사' 가능할까
다만 띠지 분실 이후, 이를 인지한 최 검사가 수사관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감찰을 진행하거나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단순히 업무매뉴얼 정비만 주문했다는 대목이 석연찮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일 열린 국회 법사위 입법 청문회에서 박건욱 부장검사는 띠지 분실을 알고도 담당 검사가 즉시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최 검사는 이와 관련한 해명은 내놓지 않았다.
지난 5일 청문회에 나온 압수계 수사관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방어적 태도를 보이면서, 애초 검찰에 감찰을 지시했던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특검에서 수사할 필요성을 언급한 상황이다. 정 장관은 "(검찰이) 국민 신뢰를 못 받는 상황이니 김건희 특검에서 수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며 "새롭게 드러난 게 많으니까 상설특검을 통해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당정의 협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우려를 해소할 제3의 독립된 기관으로는 이미 건진법사 사건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과 상설특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거론된다. 다만 김건희 특검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만으로 포화상태라는 분석이 나오고, 상설특검을 새로 꾸리기엔 3개의 메머드급 특검이 이미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수사인력 구성조차 녹록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공수처의 경우 공수처법상 수사대상이 검사로 한정돼 의혹의 중심에 있는 수사관이나 이미 퇴직한 검사 등은 피의자로 조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앞서 청문회에 출석한 수사관들이 사전에 증언을 조율하고 국회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는 취지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오는 24일 고발인 조사를 잡았다. 관련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주도권을 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편 지난해 12월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수사하던 서울남부지검은 전씨의 집에서 띠지에 묶인 5천만 원어치 관봉권을 압수했다. 이후 띠지와 돈의 출처를 추적할 정보가 담긴 스티커가 모두 분실됐지만 제대로 된 보고는 물론 감찰도 진행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띠지 기재 내용 등까지 포함된 스티커는 당시 사진을 촬영해뒀기 때문에 수사를 위한 정보는 남아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