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루시드폴 "좋은 음악은 또 듣고 싶은, 주변 시공간을 변화시키는 음악"[EN:터뷰]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핵심요약

3년 만에 열한 번째 정규앨범 '또 다른 곳' 발매
'꽃이 된 사람', 소속사 직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타이틀곡 돼
이번 앨범에 총 9곡 수록…계속 '정규앨범' 내는 이유는
세 번째 우주에 집중해 곡 작업,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협업
"텍스트의 연대를 음악적인 연대로 구현하고 싶어"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안테나 사옥에서 정규 11집 '또 다른 곳' 라운드 인터뷰를 연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안테나 제공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안테나 사옥에서 정규 11집 '또 다른 곳' 라운드 인터뷰를 연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안테나 제공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라고 하며 평소보다 구석구석 몸을 닦고 천천히 씻었다.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는 쭉 음반을 들었다. "몇백 번은 들었을" 음악을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 음악을 처음 곡을 딱 썼을 때의 그 귀로 들으면 좋을 텐데, 내 귀는 이미 망쳤다'라고. 9곡이 실린 새로운 정규앨범을 3년 만에 내는 마음은, "그냥 담담한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되게 좀 두렵기도" 하다. "이게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드릴까 정말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 동시에 "또 누군가에게는 이 노래가 닿아서 전해지겠지" 하고 생각한다.

제주에서 머물며 귤 농사를 짓고,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지난 7일 열한 번째 정규앨범 '또 다른 곳'을 냈다. 앨범이 나온 당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안테나 사옥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루시드폴은 정규 11집을 내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새 앨범 '또 다른 곳'은 "디스토피아를 이겨내고 '또 다른 곳'에 다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찬가"로 소개돼 있다. "'또 다른 곳'은 보도자료에 어떻게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너스레를 떤 루시드폴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일단은 지리적으로 '여기'가 아닐 거라는, 그러니까 저 같으면 제주도가 아니고 한국이 아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닌 또 다른,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세상, 좀 더 나은 곳, 크게 보면 그 두 가지 의미가 섞여 있다"라고 설명했다.

평소 세상을 '세 개의 우주'로 나눠 생각한다는 루시드폴. 첫 번째는 나, 두 번째는 나랑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우주, 세 번째는 나랑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어쩌면 나와 관계없다고 착각하기 쉬운 우주다. 루시드폴은 최근 들어 '두 번째 우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느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보면서 피로감도 쌓였다. 에너지의 레벨을 분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를테면 지금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 캄보디아에서 일어나는 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혹은 그냥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들 이런 게 사실은 우리랑 관련 없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테마가 된 것들이 좀 많아요. '늙은 올리브나무의 노래' '피에타'라든지… '아구아'(Água)도 사실은 브라질이라는 나라와 뭔가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서 쓴 곡이기도 하고, '등대지기'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 사는 뮤지션들과 작업을 하면서 이분들이랑 뭔가 음악적으로 연대하려고, 음악에 담겨 있는 텍스트의 연대를 음악적인 연대로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앨범에는 총 9곡이 수록됐다. 안테나 제공이번 앨범에는 총 9곡이 수록됐다. 안테나 제공
아르헨티나,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뮤지션과 협업했고, 재킷 사진은 칠레에 있는 작가가 찍었다. 앨범 소개 글인 라이너 노트는 일본에 있는 작가가 썼다. '우리가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뭔가 음악적으로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해 나간 것이었다.

"뭔가가 자꾸 배제하고 잘라내고 선호하고 이러는 경우가 되게 많잖아요. 다른 사람들 다 나누려고 하고. 근데 그게 별로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런 식의, 굉장히 작은 일이지만 이런 노래들을 여러 세계에 있는 여러분들이랑 같이 만들면서 지금보다 좋은, 또 다른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첫 곡 '피에타'를 시작으로 '마음' '늙은 올리브나무의 노래' '등대지기' '아구아' '수선화' '레미제라블 파트 3' '꽃이 된 사람' '춘분'까지 총 9곡이 담겼다. 루시드폴은 "'또 다른 곳'이라는 앨범 타이틀이 타이트하게 9곡을 모은 주제는 아니"라며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어떤 큰 화두, 그 화두가 음악화(化)된 결과물인데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이기도 하고, (전체를) 크게 아우르는 건 있지만 콘셉트 앨범처럼 짜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타이틀곡은 트랙 리스트의 8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꽃이 된 사람'이다. '작정하고' 타이틀곡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곡을 다 만들고 나면 회사에 '타이틀곡을 뽑아주세요' 하고 넘긴다는 루시드폴은 회사에서 '폴님은 원하시는 거 없으세요?'라고 해도 그저 '없다'라고 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듣는 분들이 판단해야지 제가 타이틀곡을 판단하는 게 옳지 않더라고요, 맞지도 않고."

소속사 안테나 직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마흔 명 중 서른두 명이 '꽃이 된 사람'을 골랐다. 루시드폴은 "나머지 8명이 너무 궁금하더라"라며 웃었다. 앨범의 전체적인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난 곡을 타이틀곡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결정을 타인에게 맡기는 이유가 있을까. 그는 20년 전 두 번째 정규앨범 '오, 사랑'을 냈을 때 일화를 꺼냈다.

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은 소속사 직원들의 투표로 정해졌다. 안테나 제공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은 소속사 직원들의 투표로 정해졌다. 안테나 제공
당시 타이틀곡은 '보이나요'였다. 지금까지도 루시드폴의 대표곡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이다. 루시드폴은 "물론 그때는 그 곡을 진심을 다해서 썼지만 노래가 좀 오그라드는 거다. KBS 라디오에서 프로모션을 시작할 때, 희열이 형이 '보이나요'를 딱 찍었다. 저는 너무 싫은 거다, 라이브도 해야 하는데. KBS 주차장에 주차할 때까지 매니저한테 '(타이틀곡) 바꾸면 안 되나?' 했다. '물이 되는 꿈' 하고 싶어서. 근데 방송사 들어가자마자 '타이틀곡은 보이나요입니다' 했다"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루시드폴은 "지금 생각해 보면 희열이 형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뮤지션은 이런 게 있다. 내가 가장 돋보일 것 같은, 자신 있고 보여주고 싶고 뽐내고 싶고 멋있어 보이는 곡이 있다. 그게 대중들에게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음악 하는 사람이지만 음악 듣는 분들은 분석해서 듣지 않는다. 몸으로 뚫고 오는 게 좋은 거다. 그래서 이걸 내려놔야겠다 생각했다"라고 부연했다.

곡 순서는 어떻게 짰는지 묻자, 루시드폴은 "'이 곡은 첫 곡을 해야 해' 하는 건 앨범마다 항상 정해지더라. 이유는 잘 모르겠더라. 가장 먼저 쓴 곡이 1번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데모 1번이 진짜 앨범에서 1번이 되는 경우가 많고 마지막 곡도 정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라고 운을 뗐다.

"다이내믹한 큰 곡"인 피에타가 앞머리를 차지했고, 그다음에는 어쿠스틱한 곡을, 이후 밴드 구성에 인디 팝이나 로-파이 록 느낌으로 배치했다. 25분이 맥시멈인 LP를 기준으로 하면 이렇게 A면이 채워진다. 그는 "B면으로 넘어갈 때는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 '아구아'를 넣었고, 너무 비슷한 곡들은 거리를 띄우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3분이 채 못 되는 짧은 곡이 주를 이루는 요즘, 가장 짧은 곡이 3분 33초('춘분')고, 가장 긴 곡은 5분 58초('레미제라블 파트 3')에 이르는 정규앨범을 낸 루시드폴. 그는 원동력으로 "안테나의 전폭적 지원. 유희열씨의 전폭적 믿음과 지원"이라고 답한 후 "진짜로"라고 강조했다. 타이틀곡 한 곡을 가지고 디지털 싱글로 낼 수도 있고, 앨범을 반으로 쪼개 4곡 정도 모아 미니앨범을 내는 방법도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말이다.  

정규앨범을 발매하는 건 2022년 11월 이후 꼭 3년 만이다. 안테나 제공정규앨범을 발매하는 건 2022년 11월 이후 꼭 3년 만이다. 안테나 제공
"근데 아직까지 안테나는 음악을 그렇게 보진 않아요. 그건 당연히 중심에 희열이 형이 있기 때문이에요. 음반(으로) 하겠다, 싱글 하겠다 하면 거의 그대로 아티스트들이 하는 걸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시죠. 일단은 그런 이유가 있고 저라는 사람이 계속 앨범을 내면서 음악 해 온 사람이다 보니까 다른 생각하지 않고 풀렝스(full-length) 앨범을 내고 싶어요. 그게 저한테는 뭐랄까 기록이고 뮤지션으로서 걸어가는 발자국 같은 거라서요. 어떻게 생각하면 고리타분한데, 그래도 저는 어쨌든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정규앨범을 내는 사람이니까요. 2년 혹은 3년 동안의 나라는 사람 기록을 싱글이나 EP로 담기는 어렵더라고요. 왜냐하면 보여주고 싶은 거 들려드리고 싶은 것도 많고 그사이에 느낀 것도 많고요. 음악적으로든, 음악적이지 않은 것들도."

계속 '앨범'이라는 형태를 고집하는 이유도 있다. 우선, 루시드폴이 음악을 시작할 때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앨범이어서 가장 익숙하기 때문이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곡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해 봤습니다' 하는 마음이 여전히 있고, 이를 충족하기에 '앨범'이라는 형태가 가장 알맞았다.

루시드폴의 음악은 '치유'와 '위로'라는 단어로 자주 설명되곤 한다. 정작 본인은 "위로는 제가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나는 뭘 하고 싶은가 생각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9년 나온 '레미제라블'의 파트 1과 2에 이어 16년 만에 나온 파트 3, 그리고 '등대지기'를 언급했다.

"최근에 시민들의 시위, 어떤 통치자들에게 저항하는 시민들의 움직임 이런 이슈들이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죠. 우리나라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 노래는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쓰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제 다만 2009년에 '레미제라블' 1, 2를 냈을 때랑 생각이 달라진 게 있다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그게 비참하고 가련하고 억제당하는 민중을 들을 얘기하는 거였겠지만, 요즘 제가 생각하는 건 그 비참한, 비루한 사람들은 시민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억누르려고 하는 통치자들이다. 정말 비참한 인간들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16년이 지난 후에, 저라는 사람이 바뀌면서 시각이 조금 바뀌기도 하는 거죠.

(…) 2015년에 제가 '아직, 있다.'를 쓴 적이 있어요. 그게 이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후였죠. 근데 그 후에도 그런 참사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정확히 10년 후에 (보내는) '아직, 있다.'에 관한 저의 응답 같은 노래이기도 해요. 연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등대지기'라는 노래는 '다시는 슬프지 않은/누구도 아프지 않는/아무도 이별하지 않는 세상으로 가자'라고 하고, '우리 함께 불 켜자' 이런 가사가 나오는데, '또 다른 곳'이라는 이 앨범을 구상하면서 메시지적으로만 본다면 이 곡이 제가 가장 직접적으로 내 생각을 투영해서 쓴 곡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안테나 제공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안테나 제공
루시드폴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무엇일까. 그는 '심플한 버전'과 '딥한 버전'의 두 가지가 있다고 답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또 듣고 싶은 음악"이자 "노래 중간쯤부터 (끝날까 봐) 벌써 아쉬운 음악"이다. 조금 더 파고들면 "내 주변의 시공간을 변화시키는 음악"이다. "음악을 듣기 전과 후에 내 주변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낀", 또한 "나를 잠깐 잊게 해 주는 음악"이다. 삶을 살면서 겪는 여러 관계와, 불안과 유혹에 시달리던 중에 그 모든 것을 '차단'시키는, 그래서 "정화하는 힘"을 생기게 하는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 "너무너무 개인적인 차원"으로 다가가기에, "제 음악을 듣고 그런 경험을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다고 루시드폴은 전했다. 현재 음악의 정체성은 어디 두었는지 질문에는, "언어적 부분을 배제한 청감적인 음악, 소리에 집중한 자아" 하나와 "싱어송라이터로서 예전보다 더 가사와 음악의 텍스트를 깊게 탐구하려고 써 보려는 사람" 이렇게 두 개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 작업에 영혼과 몸을 "갈아 넣느라" 올해 5월 지나고 나서는 농사에 "진짜 소홀"했다는 루시드폴은 "나무들이 잘 견뎌줬다"라면서도 "미안하다"라고 털어놨다. 10년 전 홈쇼핑에서 귤을 팔았던 영상이 지금도 회자하지만, 당시만 해도 거의 다 거절당하고 겨우 새벽 2시 편성을 받아서 진행한 것이 '우연히' 화제가 된 것이라고 루시드폴은 말했다. 홈쇼핑에 다시 나갈 생각은 없다고. "일단 새벽 2시에 못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음반을 꾸준히 내면서 살고 싶다'라는 다짐을 안고 산 루시드폴은 "음악을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운드 아티스트가 "1년에 한 번이든 10년에 한 번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자기 호흡대로 꾸준히 하는 게 뮤지션이다"라고 한 말을 듣고 2년에 한 번꼴로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지금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음악을 계속 만들고 노래 부르고 앨범을 내는 게 내 일이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지'라고 생각했고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어요.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근데 다음 일은 알 수가 없으니까 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할 수 있겠죠. (웃음)"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