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 연합뉴스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이 "사실 제가 한 일이 비굴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검찰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밝혔다.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에 자신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노 대행은 지난 12일 저녁 취재진과 만나 "제가 빠져줘야 (검찰 조직이) 빨리 정착 된다고 생각해서 빠져 나온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는 '잘못한 게 없다'고 부득부득 우겨서 조직에 득이 될 게 없다 싶어서 이 정도에서 빠져주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사퇴 결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4개월 동안 차장을 했던 것이 20년 동안 검사생활한 것보다 더 길었고 4일 동안 있었던 일이 4개월보다 더 길었다", "어제는 천번 만번 생각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아울러 "전 정권이 기소해놨던 게 전부 다 현 정권 문제가 돼버리고, 현 검찰청에서는 저쪽(현 정권)에서 요구사항을 받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저쪽에서 지우려고 하고 우리(검찰)는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시로 많이 부대껴왔다. 조율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도 말했다.
노 대행은 지난 7월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의 자진 사퇴로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다가 4개월여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노 대행은 전날 오전 사의 표명과 관련해 참모진인 대검 부장(검사장급)들에게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뒤 오후에는 부장들을 직접 불러 "이번 논란에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이 검찰 내부 집단 반발로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사퇴 결심을 굳힌 셈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황진환 기자앞서 서울중앙지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 시한인 지난 7일 자정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중앙지검은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법무부 의견을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행은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 이틀 뒤인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행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조직은 '대행의 대행' 체제로 일단 비상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장 대행은 대검 부장 중 서열상 선임인 차순길 기획조정부장이 이어받는다.
노 대행의 사표는 법무부와 대통령실을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한다. 사표가 수리되면 노 대행은 2012년 중앙수사부 폐지에 대한 조직 내 반발로 물러난 한상대 검찰총장에 이어 13년 만에 조직 내 불협화음 상황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검찰 수장이 된다.
풀리지 않은 '법무부 외압' 의혹
이진수 법무부 차관. 박종민 기자노 대행이 사퇴했지만 '법무부 외압' 의혹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게 됐다.
노 대행은 지난 7일 항소 포기 결정 전에 이진수 법무부 차관과 통화했다. 노 대행은 지난 10일 대검 과장들과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법무부 차관이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선택지 모두 사실상 항소 포기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차관이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발동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까지 언급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행은 평검사로 구성된 대검 검찰연구관들과 면담에서도 "용산과 법무부의 관계, 검찰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했다", "나도 정말 힘들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행의 설명은 사실상 법무부 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게 되면 검찰과의 충돌이 불가피해 이를 피하기 위해 정무적 고려를 했고,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는 취지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이진수 법무부 차관은 이런 외압 의혹에 대해 부인한 상태다.
이 차관은 전날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법사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서 "노만석 차장과 전화를 한 사실은 맞다"면서도 "제가 (노 대행에게) 선택지를 드릴 수도 없고 보완수사권과 관련해서 이 사건을 연결시키는 것도 내용상 이뤄질 수 없음을 잘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게 사전 조율이고 협의 과정이지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 대행에게 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고 했다는데 법무부 차관에게 이런 지시를 했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말에 "그런 사실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일선 청에서도 (법무부 의견을) '지휘'로 받아들였다면 서면으로 지휘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라면서 사실상 수사 지휘를 한 것 아니냔 지적에도 반박했다.
정 장관은 예결위 도중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검에 신중히 검토하라고 말한 게 외압으로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그게 무슨 외압이 있겠나. 일상적으로 하는 얘기"라고 답하기도 했다.
아울러 정 장관은 노 대행 사퇴에 대해 "사실 이해할 수가 없다"며 "그런 정도 의지가 있었다면 장관의 지휘를 서면으로 요구하든지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의견 제시'가 사실상 구체적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견과,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 간 통상적 사건 관련 협의라는 시각이 갈린다.
이밖에 문재인 정부 당시 꾸려진 대장동 1차 수사팀 검사들은 항소 포기 결정 과정에서 2차 수사팀의 의견만 반영됐다며 중앙지검의 의견 수렴 과정을 문제 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