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부산 남구 우암동 한 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SUV차량이 모녀를 덮쳐 7세 여아가 숨졌다.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에서 SUV 차량이 모녀를 덮쳐 7살 아동이 숨진 도로는 이미 관계기관들이 위험성을 인지했으나, 정작 보행자 보호를 위한 보완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4일 부산 남구 우암동 한 삼거리에서 유턴하던 SUV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모녀를 덮쳤다. 이 사고로 7살 초등학생 A양이 숨졌고, 어머니도 중상을 당했다.
이 도로는 폭이 좁은 2차로 규모 생활도로로, 신호가 따로 없어 평소에도 유턴하는 차량이 많은 곳이다. 인근에는 아파트와 어린이집 3곳, 유치원 1곳이 있어 아동들의 통행도 잦다. 그러나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안전 관련 시설은 무단횡단 방지용 펜스 정도에 불과하다.
관계기관들은 이 도로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보행자 보호'는 간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월 부산 남부경찰서는 남구청에 보낸 공문에서 '해당 도로 인근에 무단횡단이 잦고 노인 교통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속도 저감, 무단횡단 방지 시설 등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도로에서는 최근 3년간 모두 1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6건이 보행자 대 차량 사고였다.
이에 남구청은 재난안전특별교부세를 투입해 지난 10월 무단횡단 방지용 펜스 등을 설치했다. 하지만 정작 보행자를 직접 보호할 수 있는 방호울타리 등 보행자 안전과 직접 관련 있는 시설은 설치되지 않았다. 회전교차로와 보행신호 도입, 유턴 금지 등 교통 흐름을 개선하는 구조적인 대책도 검토되지 않았다.
부산 남구청 관계자는 "경찰에서 요청이 있어 예산을 확보해 노면 표시와 고원식 횡단보도, 무단횡단 방지 펜스를 설치했다. 펜스는 무단횡단을 막는 용도로 설치한 것"이라며 "교통시설물을 설치하려면 과속방지턱 1개도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빈번한 지역이라는 점을 사전에 인지했다면 무단횡단 방지 펜스보다는 보행자 보호시설이나 교통체계 개선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통상 사고는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행자가 길을 건너는 걸 막는 무단횡단 방지용 펜스는 보행자를 보호하기에는 부적절한 시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량이 속도를 줄일 수 있도록 요철 포장을 하는 등 도로 구조를 바꾸는 식으로 보행자 우선도로를 조성해야 한다"며 "또 유턴을 할 때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야 하고, 후진 시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좁은 도로는 유턴을 금지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고가 나자 관계기관은 부랴부랴 '사후약방문' 처방에 나섰다. 경찰과 남구청, 도로교통공단 등은 지난달 26일 합동 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호울타리와 시선 유도봉, 과속방지턱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 회전교차로 도입이나 유턴 금지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