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남에서 열린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전력망 구축 토론회장에서 한 참석자가 '용인 반도체 산단 전면 재검토, 지방의 에너지 식민지화 중단, 에너지 지산지소 실현'이라고 적힌 팻말을 메고 있다. 김정남 기자비수도권을 관통해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선로 건설은 오래된 '에너지 불평등' 문제를 다시 내보임과 동시에,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어떤 실질적인 방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근본 대책으로 떠오른 '지산지소'와 '지역별 전력요금 차등제'
송전탑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이 꾸준히 거론된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현재 충남의 전력 자립률은 207%에 달한다. 자립률 100%가 지역 내 전력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의미하는데, 충남은 생산한 전력의 절반 이상을 타 지역으로 송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를 분리할 것이 아니라, 지산지소 원칙에 따라 전력 생산 지역에 전력 수요가 큰 기업이 입주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논의되는 방안이 바로 '지역별 전력요금 차등제'다. 전력 자립률에 따라 전기요금을 다르게 적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에는 송전 비용을 뺀 저렴한 요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는 생산지에 대한 합당한 보상일 뿐만 아니라, 저렴한 전기요금 자체가 해당 지역의 강력한 산업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당초 정부는 요금 차등 기준을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 등 3개 권역으로만 단순화하려 했으나, 전력 자립률이 높은 지역에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기준을 더욱 세분화해야 한다는 건의들이 나왔다.
지난해 4월 충남도 등 5개 시도가 중앙정부에 전달한 '전력 자립률을 고려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시행 촉구 건의안'. 충남도 제공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내용이 다시 언급되며 주목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에서 원거리 송전 비용이 또 많이 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해당 지역에 산업들을 유치하되 송전 비용을 뺀 좀 낮은 전기료로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송전 비용과 국가균형발전 지수, 에너지 집중도 등을 고려해서 지역별 전력요금을 차등하는 건 지금 설계 중에 있는데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이 "예를 들어 (전남) 신안에서 생산한 태양광 전력을 그 지역에서 쓰면 100원 미만인데 송전망을 만들어서 수도권까지 끌고 올라와서 쓴다면 송전 비용이 얼마나 추가될 수 있느냐"고 묻자 김 장관은 "킬로와트시(㎾h)당 10~20원 정도"라고 답하기도 했다.
수도권 송전 과정에서 전력 생산 비용의 약 15~20%가 추가로 발생한다는 의미다.결국 전력 생산 지역에 수요 기업을 적극 유치하면,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하고 이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송전선로 지중화율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지역 간 불평등 역시 정치권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재 서울의 송전선 지중화율은 90%에 육박하는 반면, 전력 생산지인 충남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충남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주민 반대로 지상 송전탑 건설 대신 무려 700㎞ 구간 전체를 지중화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사례가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인 국내 송전탑 갈등 역시, 정부와 정치권의 해결 의지와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남 넘어 전국으로…거세지는 '전력 식민지' 반발
기후·환경·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달 31일 국회 정문 앞에서 재생에너지·지산지소 원칙 없는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이 같은 목소리는 충남을 넘어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은 송·변전선로 건설 정책의 전면 재검토와 민주적 절차 확립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을 촉구하며 지난 2일 서울에서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전국행동은 "경과지 주민의 실질적인 동의 없이 사업을 강행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사업 자체도 수요 예측의 불확실성과 과잉 투자 논란, 장거리 송전 의존 구조로 인한 계통 수용성 문제 등 경제적·환경적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 주민들은 생활·환경권 침해, 공동체 붕괴 등의 피해를 일방적으로 강요받고 있다"며
"수도권 중심의 전력 소비 구조가 결국 비수도권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적인 에너지 불평등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고 성토했다.전국행동 측은 현재 충남, 대전을 포함한 전국 100여 개 지역 및 기후환경단체가 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31일에는 기후·환경·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진흥에 관한 특별법'의 추진 중단과 원점 재논의를 촉구하며,
재생에너지·지산지소 원칙에 기반한 AI 데이터센터 추진과 법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충청권 주민 250여 명은 7일 세종시 기후에너지환경부 청사 앞에서 송전탑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지역을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사업을 즉각 백지화하라"고 외치며,
지자체와 정치권을 향해 "주민의 편에 서서 보다 강력하게 대응해줄 것"을 거듭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