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일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투표지분류기 운영요원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지 분류기 모의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믿지는 않는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조차 국민투표로 대권을 장악했는데, 이 역시 하늘의 뜻이었다 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처럼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현대 국가의 선거와 투표 결과도 늘 올바른(righteous)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 '이렇게 가면 좋겠다', '이건 아니다'와 같은 민의를 담아낸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미루고 그 민의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조제프 드메스트르의 말대로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는 정부를 가질 뿐'인 까닭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투표 결과에 따라 권력을 얻거나 잃는 차원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생계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고 마는 직업 정치 그룹의 입장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룹 내 정치인들은 권력 획득을 위한 쟁투 과정에서 확증편향, 집단동조 현상, 더닝-크루거 효과 등 다양한 인지편향에 빠질 수 있다. 이는 끼리끼리 모인 반향실(echo chamber) 안에서 극대화한다. 이에 따라 명백한 패배 앞에서도 '이럴 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주변에는 죄다 자신과 같은 의견인데 언론 반응이나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지 않다면 취재나 조사 방식의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최종 투표 결과마저 예상과 다르다면 어떨까. 이쯤 되면 자신의 판단을 교정해야 하겠지만 그저 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인지부조화 상황을 빗겨나려 한다. '윤어게인' 세력 안에서 아직도 가라앉지 않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그러하고, 과거 K값을 들고 나왔던 '김어준 계열'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그러했다.
오늘 치러지는 이번 6.3 지방선거도 한껏 열기가 고조되면서 제대로 된 지역일꾼을 뽑자는 취지를 넘어 각 정당간 사투의 대리전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내란 세력 척결'을 내세우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독주 정권 견제'를 피력한다. 그렇다 보니 각각은 '본인들 시각을 과도하게 절대화 한다', '과거 적폐와 확실한 단절을 못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여기에 '스타벅스 논란'이 정치권에 불똥을 튀겼고,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론이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진영 내 갈등의 골도 깊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선거에 임했느냐와 여러 이슈를 어떻게 다루었느냐에 대한 평가가 곧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이다.
저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기보다 선거로 드러난 민의를 그대로 받아안는 게 우선이다. 광역·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교육감 그리고 보궐선거 지역 국회의원 등 모두 4241석의 당선자를 가리는 까닭에 전체 선거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일이 쉽지는 않을 수 있다. 그 중 관심이 집중된 지역에서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그 원인을 곱씹어야 한다. 후보를 공천해 배치할 때와 다른 판세가 나왔다 해도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정치인들이 주관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민심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선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입에 달콤한 몇몇 결과만을 꼽아 아전인수로 민의를 해석한다면 이번 선거는 더 큰 봉변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민심은 무서웠다'는 입에 발린 말 뒤로, 실제로는 반향실 안에 숨어 어떠한 변화를 거부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선거 결과는 국민이 정치권에 보내는 성적표이자 '방향 전환 명령서'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기존의 마이웨이를 고집한다면, 부정선거론자들의 시대착오적 태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로부터 배우기를 거부할 때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