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피해자 모임. 연합뉴스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은행들의 과징금 수준을 6천억 원으로 대폭 감경했다. 금감원이 검토중이던 1조 4천억 원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당초 제시한 과징금 액수를 계속 줄이면서 금감원이 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렸는 지적이 나온다.
반의, 반 이하로 줄어든 과징금…포용금융 때문?
지난 4일 오전 10시 30분 금융감독원 11층에서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정례 회의가 아닌 임시로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금감원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의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에 대한 과징금을 6천억 원으로 의결했다.
금감원은 "지난번 금융위 보완요청에 대한 후속 검토결과를 보고하고 제재심 위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며 "세부사항을 확정해 빠른 시일내에 이를 금융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홍콩H지수 ELS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사건 초기 산정한 과징금은 4조 원 규모였다. 이후 논의를 거치면서 2조 원대로 낮춰졌고, 지난 2월 1조 4천억 원까지 줄었다. 금감원의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최근 금감원의 제재 안건을 이례적으로 돌려보내며 수정, 보완을 요구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법을 적용해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첫 대규모 사례이다 보니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안건을 금감원으로 되돌려보내면서 은행권 일각에서는 과징금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다. 과도한 과징금으로 은행의 포용금융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민감한 이슈였던 과징금 규모를 '신속히' 처리할거라는 분석도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선거 직후인 4일 임시 제재심이 열리면서 이같은 해석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앞서 이찬진 금감원장도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 ELS 과징금 규모에 대해 "1조 원 아래로 당연히 내려갈 것"이라며 "조 단위는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 자기 결정을 자기가 부정하는 모순 보여줘"
연합뉴스이번 임시 제재심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상 과징금 부과기준의 세부평가 항목을 하향 조정해 과징금 규모를 대폭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위반행위 '동기'와 '방법'항목에서 부과기준을 '중'으로 책정했지만 이번에는 '하'로 낮췄다. 위반 행위의 중대성이 낮다는 뜻이다.
불완전판매 등 위법 행위를 한 건 맞지만 '중대한' 위법사안은 아니라는 당국의 평가에 홍콩 ELS 피해자는 "은행에서 금감원 로비를 하지 않은 이상 이런 결과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규탄했다.
지난 2021년 1억 5천만 원을 홍콩 ELS 상품 두 개에 나눠서 투자했다는 A씨는 "당시 은행들이 국민들에게 판 상품 금액만 20조 원이었다"며 "수익 내고 성과 잔치 벌여놓고 고작 6천억 과징금이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액의 30%만 보전을 받았다는 A씨는 현재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집단 소송을 진행중이다. 그는 "1심 재판 변론 기일이 아직 잡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과징금을 대폭 삭감한 금감원 결과가 나오면서 재판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과징금 액수를 당초 4조에서 6천억 원까지 깎으면서 금감원은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보여줬다"며 "애초에 산정한 금액도 보여주기 식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 배상 권고를 은행들이 수용하도록 하려고 과징금을 이용한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며 "그렇다면 금감원은 과징금 결정에 있어서 너무나 허술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은행들은 금감원의 과징금 '삭감'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아직 당국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은 없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은행별 과징금 비율 등 법리적인 내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