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7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초임 장교들이 서욱 국방부 장관의 축사를 듣고 있다. 박종민 기자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군인 중 일부는 정부의 3군 사관학교 통합 추진을 반대하면서 이를 '통폐합'으로 규정한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11일 페이스북)과 정승조 전 합동참모의장(11일 중앙일보 시론)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1, 2학년은 동문수학하고 3, 4학년은 각자 운영하는 방안을 거론할 뿐 폐교는 전혀 언급한 바 없음에도 그렇다. 사실 정부의 안은 말이 통합이지 이른바 '2+2', 반쪽 통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통합 + 폐교'라 단정하는 이유는 육사의 지방 이전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를 지방으로 옮기면 폐교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특권적 발상이고 오만한 선민의식이다.
그렇다면 이미 1985년 서울에서 충북 청주로 이전한 공군사관학교는 뭐가 되나?
공사가 지방대가 됐을진 모르지만 생도들의 자질은 육사 못지않다. 육사가 서울을 떠나면 우수한 학생이 오지 않는다는 주장은 낯 뜨거운 얘기다.
학교가 정예 장교를 길러낼 실력이 있다면 그 소재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생도 전원이 기숙사에서 집체교육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야전으로 향하는 사관학교가 '인 서울' 타령을 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육사 이전을 반대하는 또 다른 논리는 '호국의 성지론'이다.
이상돈(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군인공제회장은 최근 신문에 실은 의견광고에서 "(정부가) 호국의 성지인 화랑대를 역사에서 지우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화랑대(육사의 별칭)가 국군을 창설한 역사적 장소이고, 6·25전쟁 기간 중 생도 539명 중 245명이 전사했으며, 이후 80여년 간 호국의 간성을 길러낸 곳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이전 반대의 이유가 될 순 없다. 지난한 항쟁의 역사를 지닌 우리 국토는 그 자체가 호국의 성지다. 육사만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육·해·공군본부가 30여년 전 충남 계룡대로 이전한 것은 결코 호국의 강도가 낮아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군 통수권자가 있는 청와대도 옮기는 판에 육사의 절대적 권리 주장은 사리에 어긋난다.
따지고 보면 호국의 성지는 화랑대보다 오히려 경남 진해가 돼야 할지 모른다.
육사는 6·25가 발발하자 진해로 피난을 떠났고 그곳에서 비로소 4년제 정규 사관생도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 육사는 몇 주에서 몇 달 짜리 단기속성 코스였고, 만주군과 일본군 출신, 남로당 좌익계열까지 혼재된 상태였다.
그 정규 1기생이 바로 전두환·노태우다. 이들이 선배 기수와의 차별성과 우월감, 엘리트 의식을 퍼뜨리며 군을 갉아먹고 '하나회' 결성과 12·12 군사반란 등의 씨앗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런 흑역사 때문에 진해 시절 육사는 잊고 싶은 기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김용현·여인형 같은 12·3 주역들을 키워낸 화랑대 육사의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관학교 통폐합 반대를 외치는 일부 육사 동문들이 지금 할 일은 더 늦기 전에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과거와 절연함으로써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