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로 국내 유가 하락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연합뉴스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따른 유가 정상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80달러선까지 떨어졌지만, 국내 유가는 고환율과 물류 시차, 최고가격제 등에 따른 영향으로 정상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유가와 맞물려 상승한 물류비 역시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내려가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급락해도…국내 주유소는 '3주 전' 기름 팔아
1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83.8달러 안팎,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 격인 두바이유는 전주보다 배럴당 4.5달러 하락한 89.7달러였다.
두바이유는 5월 마지막 주 배럴당 98.09달러에서 지난 12일 83.18달러로 불과 보름여 사이 15% 넘게 급락했다. 반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2010원 안팎에서 횡보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유가가 국내 주유소 기름값에 즉각 반영되지 못하는 일차적 원인은 물리적 시차 때문이다. 해상 운송 기간, 정유사의 정제와 유통 기간, 재고 소진 주기 등을 고려하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기름값이 '정상화' 되는 데에는 보름 이상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해상 운송 거리다. 중동에서 원유를 싣고 국내 정유 공장에 도착하기까지 평균 15~20일이 걸린다. 그 뒤 정제 과정을 거쳐 휘발유·경유로 생산되는 기간을 더하면,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기름은 최소 3주 전 중동에서 비싸게 사 온 원유다.
유통 단계의 재고 소진 주기도 기름값 정상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전국 일선 주유소들은 자체 저장탱크에 통상 1~2주일 분량의 기름을 비축해 둔다. 국제 유가가 내리더라도 호르무즈 해협 폐쇄 시기에 비싸게 매입한 기존 재고를 먼저 소진해야 한다.
고환율에 최고가격제까지 부담
1500원대를 넘어선 높은 원·달러 환율과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도 국내 기름값 정상화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는 전량 달러로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안정화되더라도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져 있으면 국내 정유사에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아직 시행 중인 만큼 정유업계의 재고 손실 보전 문제 등이 얽혀 있는 것 역시 기름값 인하의 걸림돌이다.
지난 4~5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라 국제 유가는 두 배 넘게 폭등했다. 하지만 정부가 3월 중순부터 도입한 최고가격제 탓에 국내 정유사들은 국제 유가에 맞춰 국내 유가를 인상하지 못 했다.
현재 주유소 가격의 기준인 국내 최고가격을 원유 가격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약 88달러 선이다. 현재 최고가격은 휘발유 리터당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묶여 있다. 최근 두바이유가 83달러선까지 떨어진 만큼 국내 기름값도 더 내려가야 하지만, 정유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누적된 적자를 어떻게 보전받을지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가격을 낮출 수 없는 상황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한 상황에서 (비싸게 사 온 원유) 재고 관련 손실이 발생된 부분을 정부가 어떻게 정유사에 보장해 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부는 "최고가 종료 여부는 오는 19일 종전선언과 호르무즈 정상화 여부, 국제유가 흐름, 해제 시 국내가격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중동 지역 원유 생산·수출 인프라 복구 속도도 유가 흐름을 결정할 변수로 꼽힌다. 전쟁 중에 호르무즈 해협 인근 원유를 싣고 나르는 터미널과 정유 시설들을 얼마나 빨리 정상화하느냐에 따라 유가 안정 속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는 18일 발표할 예정인 7차 석유 최고가격을 일단 지금 수준 그대로 묶어둔 뒤 종전 합의 내용을 보며 출구 전략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에 발맞춰 상승한 물류비…"정상화까지는 최소 2개월 걸릴 것" 전망
유가 상승과 맞물려 산업계 전체를 짓눌러온 고가의 물류비도 안정화 계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기업들로서는 다행이지만, 이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상화되기까지는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날 관세청이 발표한 지난달 기준 수출입 운송비용 현황을 보면, 유럽연합(EU)·중동으로 향하는 해상 수출 운송비용(컨테이너 2TEU당 운송비 평균값·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은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중동으로의 해상 수출 운송비는 681만 3천 원으로 이란 전쟁 전인 1월(374만 원)보다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일단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더라도 한국 선박 24척을 포함해 해당 해협에 발이 묶여있던 수백척의 배들이 빠져나오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 관측이다. 또 기뢰 제거와 안전 확인 등 통행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도 남아있다. 향후 60일 동안의 미국·이란 본협상 과정에서 해협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한재완 한국무역협회 물류서비스실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물류비 정상화 과정에는 이처럼 선결돼야 하는 조치들과 변수가 존재한다며 "정상화까지는 최소 2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