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전면 개방을 앞두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석 달째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의 종료 시점에 관심이 쏠린다.
최고가격제 종료 요건이 상당 부분 충족되면서 정부도 정책 종료 시점을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오는 18일 7차 석유 최고가격제 고시를 앞두고 있다. 다만 국내 유가 하락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분간은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국제유가 80달러선까지 떨어져…최고가격제 폐지론 고개
16일 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사실상 합의하면서 100일 넘게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이 곧 개방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SNS를 통해 "이란과의 협상이 이제 완료됐다"며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개방을 전적으로 승인한다"고 밝혔다. 해협은 서명식이 열리는 오는 19일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석유·천연가스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되면서 국제유가는 안정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날 종전 소식이 나온 이후 브렌트유는 배럴당 83.8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도 전주보다 배럴당 4.5달러 하락한 89.7달러를 기록했다.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해상운임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올해 초 1567선이었던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달 중순 3195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들어 2천대 후반으로 떨어졌다. 전쟁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종전 서명 이후 추가 하락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에 따라 정부도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전쟁 종료 △국제유가 배럴당 90달러 수준 회복 등을 최고가격제 종료 요건으로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전쟁이 종료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며 국제유가가 적정 수준인 90달러 정도가 되면 최고가격제 종료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최고가격제 시행 장기화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국제유가와 국내 최고가격의 차이만큼 정유사 손실을 보전해 주는 구조인 터라 막대한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4조 2천억원 규모의 목적예비비를 편성했는데 손실 규모가 곧 예산 범위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유업계 역시 손실 누적을 우려하고 있다.
원유시설 복구·기뢰 제거에 상당한 시간 소요
그러나 빠른 시일 내 최고가격제를 종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더라도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주유소 기름값이 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국내까지의 해상 운송 시간과 정유사의 정제·유통 기간, 재고 소진 주기 등을 고려하면 국내 가격 반영까지는 2~3주 정도가 소요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는 한국 선박은 총 24척이다.
현재 기름값은 2천원선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전날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9.58원, 경유는 2004.31원이다. 주간 평균 가격 기준으로 4주 연속 소폭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2천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섣불리 최고가격제를 폐지했다가 기름값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동안 최고가격제로 억제했던 가격 인상분이 종료 이후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물가 상승 압박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최고가격제로 휘발유와 경유, 등유 가격을 각각 200원, 300원, 400원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즉 국제유가 하락세가 충분히 이어져 가격 상승 압력이 해소된 이후에야 제도를 종료하겠다는 것이 산업부의 판단이다.
호르무즈 해협. 연합뉴스해협이 열리더라도 전쟁 이전과 같은 수준의 통항이 곧바로 재개되기는 어렵다는 점도 빠른 정상화 기대를 낮추는 요인이다. 해협에 매설된 기뢰를 제거하는 데만 수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호르무즈 해협 수로와 주변에 매설된 기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최소 2개월에서 최장 6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미 의회에 보고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의 원유 생산시설이 상당 부분 피해를 입었고 해운업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 기름값이 빠르게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최소 올해 말이나 내년까지는 완전한 정상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지난달 22일 '국제 유가 및 천연가스 도입 가격 전망'을 발표하며 "6월 말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종료될 경우 유가는 6월 최고점을 기록한 후 점진적으로 안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설비 재가동과 기뢰 제거가 진행된 뒤 8월부터 유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오는 18일 예정된 7차 석유 최고가격제 발표에서는 우선 현상 유지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19일 실제 종전 서명이 이뤄지는지 확인해야 하고, 이후 에너지 수급 전망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제도 폐지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