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베르데 수문장 보지냐. 연합뉴스인구 52만 명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무적함대' 스페인을 멈춰 세웠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꼽힐 만한 결과다.
카보베르데는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으로 비겼다. 전력과 선수들의 이름값을 고려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의 스페인은 세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강호다. '신성' 라민 야말을 비롯해 마르크 쿠쿠레야, 로드리 등이 건재하다. 반면 카보베르데는 무명 선수들로만 전열이 채워진 약팀이다. 월드컵 출전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되지 않았다면 본선 진출이 어려웠을 팀으로 평가받았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대서양에 위치한 카보베르데는 15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 국가다. 5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다 1975년에야 독립했다. 1986년 FIFA에 가입한 뒤 2002년 한일 대회부터 월드컵 예선에 꾸준히 도전해 왔다. 이번 아프리카 예선 D조에서는 '전통의 강호' 카메룬을 제치고 조 1위(7승 2무 1패)로 사상 첫 본선행 티켓을 품에 안았다.
카보베르데의 FIFA 랭킹은 67위다. 이번 대회에 나서는 48개국 중 가나(73위), 퀴라소(82위), 아이티(83위), 뉴질랜드(85위) 정도만을 아래에 두고 있다. 게다가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이 생소한 팀이 스페인을 상대로 무실점 무승부를 지켜낼 것이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실제 경기 주도권은 스페인이 쥐었다. 스페인은 무려 804개의 패스를 시도해 745개를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약 93%에 달했다. 스페인은 카보베르데를 한쪽 진영에 가둬 놓고 일방적인 파상공세를 펼쳤다. 페널티 박스 안팎을 가리지 않고 27차례의 슈팅을 쏟아부었고 측면에서 40개의 크로스를 시도했다.
페랒 토레스 가로막는 카보베르데 선수들. 연합뉴스그러나 카보베르데는 끈끈한 조직력과 몸을 던지는 육탄 방어로 스페인의 맹폭을 견뎌냈다. 수비벽을 촘촘하게 세운 카보베르데에 막혀 스페인의 유효 슈팅은 7개에 그쳤다. 크로스가 동료에게 정확히 연결된 것도 단 6차례에 불과했다. 특히 90분 내내 이어진 스페인의 슈팅 중 6개가 카보베르데 수비수들의 온몸을 던진 블록에 가로막혔다.
스페인의 파상공세는 단 6번의 슈팅으로 맞선 카보베르데의 수비 조직력과 40세 수문장의 투혼 앞에서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0-0 무승부를 알리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스페인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처음 오른 월드컵 무대에서 귀중한 승점 1을 따낸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이 역사적인 승점 1을 지켜낸 최후의 방패는 40세의 베테랑 수문장 보지냐였다. 불혹의 나이에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그는 2012년 국가대표 데뷔 이래 총 88번의 A매치에 출전했다. 카보베르데 역대 최다 출장 2위에 올라 있는 살아있는 영웅이다.
보지냐는 나이가 무색하게 90분 내내 끈질긴 집중력을 발휘했다. 스페인의 포격을 온몸으로 튕겨낸 그는 사상 첫 승점 획득을 알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환상적인 월드컵 데뷔전을 완성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