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손자를 봐 주고 받은 용돈을 모으다 보니 어느새 1천만 원이 가까웠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난 A씨는 지난해 주식 계좌를 열고 건설주와 방산주, 반도체주까지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주식은 무료한 은퇴 생활의 활력소였다. 종목을 분석하고 주식을 사고파는 재미도 잠시, 아내가 신약 치료를 받기 시작해 약값이 늘면서 A씨는 반도체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남은 돈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올인'하기로 했다. A씨는 "9천피도 도달한 마당에 뭐가 오를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다른 걸 투자해 손실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 9천선에 올랐지만 시장의 눈은 벌써 '1만피' 달성 여부에 가 있다. 석 달 넘게 코스피를 짓눌렀던 미국-이란 전쟁이 사실상 종결 수순으로 접어들면서 반도체가 이끄는 코스피 장세에 기대감도 고조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형 반도체주로의 쏠림이 심화되는 데다 인버스·레버리지 상품으로 인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주식 시장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9천피 주역 반도체주…"1만피도 달성 가능"
21일 한국거레소에 따르면 올해 1월 5천선을 돌파한 코스피는 2월 6천선을 넘었다. 3월에 미-이란 전쟁 여파로 5천선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4월 6천선을 재돌파하면서 다음 달인 5월 7천과 8천선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달 18일 9천선을 돌파해 9063.84로 장을 마감했다.
파죽지세 코스피의 원동력은 단연 반도체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스퀘어, 삼성전기 등 시총 상위 4개사가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반도체주는 12개월 선행 영업이익 기준으로 연초 이후 코스피 실적 증가분의 약 97%를 기여했다. 이들 주식의 시총 비중도 59.62%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152조 8920억 원, SK하이닉스는 2034조 765억 원으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9천피를 돌파한 지난 18일 오전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 8천조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안에 '1만피' 달성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신증권은 지난 17일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8800에서 1만 1500으로 상향 조정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9000에서 1만 2000으로 상향 조정했고, 현대차증권과 IBK투자증권도 강세 시나리오에서 1만 2000을 전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반도체와 비반도체 순이익 증가와 주가수익비율(PER) 상승을 반영해 올해 코스피 목표치를 1만 1500으로 상향 조정했다"며 "8월 말 9월 초 변곡점이 예상되지만 단기 과열 해소 시 실적에 기반한 밸류에이션 정상화로 사상 최고치 경신을 반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9000선을 넘어선 1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지난 8000돌파 이후 22거래일 만에 9000을 돌파한 코스피는 전 거래일(17일)보다 2.25% 오른 9,063.84에 장을 마쳤다. 황진환 기자코스피 양극화, 빚투로…커지는 주도주 의존도
하지만
코스피 상승이 주도주 일부에 국한되면서 지수가 상승해도 수익을 보지 못하는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 코스피가 9천을 넘겼을 당시 상승 종목은 109개인 반면, 하락 종목은 791개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에 대한 쏠림 현상은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로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빚투' 지표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17일 기준 37조 85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사상 최고치인 38조를 넘어선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 중이다.
연내 1만피 돌파가 가능한 상황에서 반도체주 투자는 '정답'과 다름없다는 게 투자자들의 목소리다.
외부 불확실성에 흔들릴 때마다 주도주 의존도를 높게 가져가는 게 승률 높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B씨는 "최근 주식을 오래 공부한 친구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은 돈 긁어모아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참에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해서 주식투자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스닥에서 코스피 대장주로 갈아타기 수요도 증가추세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코스피가 9천을 돌파했음에도 이들 주식 비중이 낮거나 코스닥 비중이 높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역대급 랠리를 선뜻 체감하기 어렵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소수업종에 대한 극단적 쏠림 현상으로 코스닥 시장 전체에 걸쳐 코스피 대장주로 갈아타기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증권사들 '빚투' 제동…대통령도 "자산 양극화" 우려
개인투자자들의 빚투가 심해지면서 금융당국은 소비자주의를 발령하며 경고에 나섰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락하는등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에 주의를 당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투자금 9조 6000억 원의 90% 이상은 개인투자자"라며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자산인 개별 주식 종목의 일일 수익률의 배수를 추종하는 상품인 만큼 국내 주식의 가격제한폭이 ±30%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도 최대 60%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증권사들도 빚투에 제동을 걸었다. 미래에셋증권은 두산에너빌리티, 삼성전기, 삼성SDI,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홀딩스, 한화오션 등 10개 종목의 종목군을 'E'에서 'F'로 변경했다. 특히 'HANARO Fn K-반도체'와 'TIGER 200 IT' 지수상장펀드(ETF), 카카오뱅크, 신세계의 경우 종목군 'F' 변경에 더해 증거금률도 기존 30~40%에서 100%로 상향했다. 위탁증거금 100% 종목 또는 F군 종목은 신규 융자 및 만기 연장 등이 제한된다.
KB증권은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신용공여한도 준수를 위해 신용융자 매수 주문이 일시 제한된다고 안내했고, 메리츠증권도 이날 제주반도체와 주성엔지니어링 등 3개 종목의 증거금률을 30~50%에서 100%로 상향했다.
증시 양극화에 정부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주식시장 양극화는 사실은 심각한 자산 양극화를 부른다"며 "문제고 걱정인데 이를 완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반도체 대장주 중심 쏠림 현상이 우려스럽다"며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 신용상 상임연구위원은 "단일종목 레버리지가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건 분명하다"며 "앞으로도 변동성은 굉장히 커질 것으로 보이고 시장도 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