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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퀴벌레다"…인도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씨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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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의대 입시 논란'…거리로 나온 인도 청년들
바퀴벌레국민당(CJP) 등장…'청년 저항' 움직임 확산
유일한 '기회의 사다리' 무너지자…누적된 분노 폭발
경제성장에도 '청년실업' 여전…모디 정부에 대한 실망
밟으려는 정부, 꿈틀대는 청년들…인도의 미래는?



"바퀴벌레들이 온다." 여기, 스스로 벌레를 자처한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퀴벌레 가면'을 쓰고 거리로 몰려든 인도 청년들입니다. 인도 청년 정치운동 단체 구성원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그 이름도 심상치 않습니다. 'Cockroach Janta Party'(CJP), 이른바 '바퀴벌레국민당'이라는 명칭을 내걸었는데요. 이들은 왜 갑자기 거리로 나온 걸까요?

의대 입시 논란부터 대법원장 망언까지…폭발한 인도 청년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실시된 의대 입학 시험이었습니다. 220만 명 이상이 응시한 NEET(전국의대입학시험) 시험지가 사전에 유출됐고, 재시험이 결정됐습니다. 박탈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만 10명이 넘습니다. 설상가상 "바퀴벌레 같은 젊은이들이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시스템만 공격한다". 들끓던 청년들의 분노에 인도 대법원장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청년들을 이끈 건 인도의 청년 활동가 아비지트 딥케입니다. 딥케는 인도 집권 여당인 인도인민당(BJP)을 패러디한 바퀴벌레국민당(CJP)을 만들었습니다. 가상의 정당이긴 하지만 CJP의 가입 조건은 제법 까다로운데요. 무직일 것, 나태할 것,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의 스크린타임을 보유할 것, 그리고 '프로불평러'일 것!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CJP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열흘도 채 안 돼 2천만 명을 넘어섰고, '만약 모든 바퀴벌레가 한데 모인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딥케의 제안에 수천 명의 청년들은 바퀴벌레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시위는 인도 곳곳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험지 유출에 분노한 수험생부터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배달노동자가 된 대졸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교육부 장관 사퇴"와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경제 성장했지만, 일자리는 없다

처한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회의 사다리'가 무너진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좌절된 건데요. 이광수 부산외대 인도학과 교수는 "청년 실업에 대한 분노, 신분 상승의 기회가 무너진 것에 대한 분노 그 두 개가 결합된 것"이라며 "'나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도 시험만 잘 보면 '이라는 생각이 좌절되자 (인도 청년들이) 터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이냐고요?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제가 공고한 인도에선 '극대노'할 일이 맞습니다. 인도에서 의대 입학 시험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신분 상승을 가능케 해주는 기회의 사다리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의대 입학시험은 한 학생이 아닌 한 집안이 다 함께 치르는 시험인데요. 가족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 한 명에게 모든 자원을 몰아줍니다. 의대·공대 입시 학원의 메카, 즉 '인도판 대치동'으로 불리는 도시 코타에는 매년 15만 명 이상의 학생이 몰려들곤 합니다. 일부 가난한 농촌 가정은 할아버지의 땅을 팔거나 빚을 내 수백만 원에 달하는 학원비를 마련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2024년에 이어 올해 또 의대 입시 비리가 반복되자 켜켜이 쌓였던 분노가 그야말로 폭발한 겁니다. 전명윤 작가(인도환타)는 "시험을 잘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어른들의 약속에 어긋난 것"이라며 "교육을 통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험 관리 부실과 비리로 유명무실해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분노의 저변에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있습니다. 2014년 집권한 모디는 비엘리트 계층으로 분류되는 OBC 출신, '기차역에서 짜이차를 팔던 어린아이'라는 서사로 청년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일자리를 만들겠다", "인도를 성장시키겠다"는 약속도 청년들의 기대를 키웠습니다.

실제로 인도는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2012년 세계 경제 순위 11위였던 인도는 2022년 5위까지 올라섰습니다. 세계는 인도를 '가장 뜨거운 시장', '중국을 잇는 경제대국'으로 주목하고 있고요.

하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인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2022년 기준 인도 대졸 청년 실업률은 29.1%로 문맹 청년 실업률(3.4%)보다 9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지난해 라자스탄주에서 단순 사무직 약 5만 명을 뽑자 247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박사도, MBA 졸업자도, 법대 졸업생도 줄을 섰고요.


전명윤 작가도 "대졸 청년 실업률은 대략 40%(25세 미만 청년 기준) 정도고, (심지어)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라며 "'대학을 가라, 대학을 가면 신분 상승할 수 있다'면서 대학을 보내놨는데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인도의 대학생 수는 2000년대 약 840만 명에서 2020년대 약 4330만 명으로 20년 사이 5배 이상 늘었지만,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나라는 커졌지만 정작 내 일자리 하나 없고, 경제는 성장했지만 내 삶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은 거죠.

밟으려는 정부, 꿈틀대는 청년들…인도의 미래는?


모디 정부는 청년들의 분노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인도 정부는 경청 대신 억압을 택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CJP의 X(옛 트위터) 접속을 차단했고, 이들을 외세와 결탁한 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바퀴벌레는 어린아이조차 슬리퍼로 밟아 죽일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키웠고요.

이 패턴, 처음은 아닙니다. 모디 정부가 반복해 온 수법인데요. 2020년 농업개혁법에 반대하던 대규모 농민 시위 당시에도 인도 시위대에겐 '파키스탄 배후설'과 같은 딱지가 달라붙었습니다. 이광수 교수는 "인도에서 이러한 운동, 즉 정부에 저항하는 운동이 있을 때마다 모디가 했던 것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아니라 '외세', 예를 들어 파키스탄하고 결부를 시키는 것"이라며 "프레임 자체를 바꿔버리려고 정부 측에서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풍경,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대중은 개돼지', '청년세대는 극우'라는 등 단일한 언어로 특정 집단이나 세대를 규정짓고 낙인찍는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시선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전명윤 작가는 "예전에 한국의 한 교육부 공직자가 '대중은 개돼지'라고 해서 난리가 났었다. 그 말이 결국 인도로 건너가서 '청년들은 바퀴벌레'라는 말이 된 것"이라며 "어른들이 이것(청년 분노의 함의)을 읽어내지 못하고 단지 '너희들은 반체제야', '극우야'라는 딱지만 붙여낸다면 결국 청년들은 더욱 과격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취업난, 경제난, 제도에 대한 불신,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에 대한 실망.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나 버린 인도 청년들의 불만은 어디로 향할까요?

바퀴벌레들의 행진이 계속될지 끊길지, 미래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인도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질문은 '바퀴벌레를 어떻게 밟을지'가 아니라, '왜 수많은 청년들이 바퀴벌레를 자처하게 됐는지'라는 사실 말이죠. ※바퀴벌레 청년들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 유튜브 <씨리얼> 채널에서 영상을 보시고 댓글로 남겨주세요. 🪳🪳: "열심히 공부하고 일자리 기대한 우리가 바보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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