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들은 범행 대상을 속이기 위해 상황과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수법과 행동 패턴을 보인다. 연애를 미끼로 한 로맨스 스캠(연애 사기)부터, 고수익을 미끼로 한 투자 사기, 첨단 기술과 두려움을 이용한 최신 피싱 사기에 이르기까지 수법은 제각각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 심리의 약점을 공략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연재하는 칼럼을 통해 최근 발생하고 있는 주요 사기 유형을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보고,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행동 특징을 살펴보겠다.
70대 노신사 – 검찰 사칭 전화 사건
하루는 70대의 노신사 김모 씨가 시내 은행 창구를 찾았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김 씨는 통장에 든 전 재산을 현금으로 인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창구 직원은 깜짝 놀랐지만, 차분히 용도를 여쭈었다. 김 씨는 횡설수설하며 "집 수리비가 필요하다"고 둘러댔지만, 목소리는 불안으로 떨고 있었다. 거액의 예금을 갑자기 찾는 데다 노신사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은행원은 보이스피싱을 직감했다.
은행원이 조심스럽게 추가 질문을 드리자, 김 씨는 마지못해 "검찰청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며칠 전 집 전화로 검찰 수사관을 자칭하는 사람이 연락해 왔다는 것이다. "김○○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돈을 인출해 안전계좌로 옮기지 않으면 모두 몰수당합니다." 상대방은 이렇게 김 씨를 다그쳤다. 처음엔 의아한 마음도 들었지만, 전화를 건 남성은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신분증 번호와 가짜 사건번호까지 대며 자신의 신뢰성을 강조했다. 깜짝 놀란 김 씨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그는 김 씨의 모든 예금을 찾아서 지정된 계좌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김 씨가 망설이자, 전화 속 남성은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말했다. "김 선생님, 지금 저희가 도와드리는 겁니다. 이걸 이행하지 않으시면 김 선생님도 공범으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김 씨는 두려운 마음에 결국 지시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틀 내로 돈을 옮기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협박에 극도의 불안을 느꼈고, 자신의 평생 모은 재산을 지키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김 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은행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사기범은 "은행 직원에게는 말하지 말라, 이 건은 극비 수사"라고 당부했기 때문에, 김 씨는 주변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속수무책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은행원의 기지 덕분에 김 씨의 돈은 간발의 차로 지켜졌다. 은행원은 김 씨를 진정시키며 시간을 끄는 동시에 몰래 경찰에 신고했다. 잠시 후 지구대 경찰관들이 은행에 도착했고, 통화 내용을 들은 뒤 사기가 분명함을 확인했다. 경찰관은 "검찰에서 절대 이런 방식으로 돈을 직접 요구하지 않는다"며 김 씨를 안심시켰다. 비로소 자신이 속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차 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노신사의 얼굴에는 안도와 함께 깊은 허탈감이 교차했다.
피해자의 심리
연합뉴스김 씨는 평생 사기를 당해본 적 없고, 본인은 그런 일과 거리가 멀다고 믿어온 분이었다. 그러나 '검찰'이라는 말 한 마디에 그 믿음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국가 기관을 사칭한 전화를 받자, 김 씨는 순식간에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내 통장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통보를 들었을 때, 혹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큰 잘못에 휘말린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평소 법을 잘 지켜온 선량한 시민일수록,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결백하다, 빨리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김 씨 역시 바로 그 심정이었다. 자신이 억울하게 범법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냉정한 판단력을 잃고, 전화를 건 상대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김 씨 세대에게 검찰, 경찰 같은 권위는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하는 대상이다. 전화 속 사람이 비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낯선 이였지만, 스스로 "검찰청 ○○과장"이라고 밝힌 순간 김 씨의 마음 한켠에는 "설마 검찰이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막연한 신뢰가 생겨버렸다. 사기범은 바로 그 심리를 파고든 것이다. 김 씨가 완전히 믿지 않을까 봐, 사기범은 전화 통화 내내 김 씨를 친절하게 "김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예우를 갖췄다. 그러다 김 씨가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 갑자기 목소리를 굳게 바꾸어 "지금 협조하지 않으시면 체포됩니다"라고 압박했다. 이렇게 친절과 위압을 교묘히 오가며, 김 씨가 순종적인 태도를 유지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한편으로 김 씨는 자신의 노후 자금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범죄 조직에 내 돈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에 크게 동요한 그는, 어떻게든 전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기범은 "안전계좌로 옮기면 지켜드리겠다"고 거듭 강조하며 김 씨를 안심시키는 척했다. 김 씨 입장에서는 그 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셈이다. 지금 돌아보면 터무니없는 지시였지만, 공포와 불안에 압도된 순간에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심리학적 해설
이 사례는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피해자의 심리를 어떻게 조종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 권위 남용 효과이다. 사기범은 '검찰청'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피해자의 복종 심리를 끌어냈다. 사람은 권위 있는 대상의 말에는 평소보다 이성을 잃고 따르기 쉽다. 특히 김 씨처럼 법을 준수해온 분일수록 "정부 기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에 맹목적으로 협조하게 된다. 둘째, 공포 유발과 긴급성이다. "범죄 연루", "몰수당한다""체포된다" 등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지금 당장" 행동하라고 몰아붙였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 아래에서는 누구라도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심리 연구에 따르면, 갑작스런 위기 상황에서는 인간의 뇌가 이성적 사고보다 감정적 대응에 치우치기 쉽다고 한다. 사기범들은 바로 그 순간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다.
또한 이 사기범은 김 씨에게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고립 전략 역시 전형적인 수법이다.. 피해자가 가족이나 은행 직원 등 객관적인 조언을 받을 기회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오로지 사기범의 지시만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김 씨가 끝까지 속았더라면, 결국 홀로 돈을 인출해 사기범이 알려준 계좌로 송금했을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은행원이 눈치를 채는 바람에 이 고립 전략이 깨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김 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설마 내가 속겠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놓이면 속기 쉽다.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진실 편향'도 교묘히 이용한다. 진실 편향(Truth bias)이란 특별한 의심거리가 없으면 상대방을 믿는 인간의 경향을 말한다. 김 씨도 전화를 건 사람이 조목조목 설명을 늘어놓자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당신을 도와주려 한다"는 말에 그나마 안도하며 상대를 믿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믿음이 생기는 순간, 사기의 덫이 덥석 채워진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연합뉴스이 경우는 은행원의 기지로 피해를 막은 사례이다.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의 말처럼 들려도, 전화로 금전을 요구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여야 한다.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직접 전화를 걸어 자금 이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이는 '06년도경 보이스피싱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신고될 때부터 현장에서 수사를 하며 누누이 강조한 말이다. 순간의 두려움에 넘어가 판단을 상대에게 맡기지 말고, 반드시 전화를 끊은 후에 해당 기관의 공식 번호로 다시 연락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시는 것이 최선이다. 가족이나 지인, 혹은 은행 직원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낯선 전화는 그 자체로 의심해야 마땅하며, "설마 검찰이 거짓말하랴" 하는 선입견을 경계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러분 자신의 재산은 여러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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