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 ▶ 글 싣는 순서 |
①탄핵 찬성 집회 가던 소년은 왜 '극우 인플루언서'가 되었나 ②"안 내면 이재명, 가위바위보!"…10대를 습격하는 '극우 알고리즘' ③"망해가는 나라에서 살아남기"…1020 각자도생 극우 ④'무균 교실'에서 '극우'가 자랐다 (끝) |
"대치동에서는 '창의적이지 마, 창의적이면 떨어진다. 생각하지 마, 생각하면 떨어진다' 이렇게 가르쳐요.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콘텐츠로 보는 걸 곧이곧대로 그냥 받아들여요. 생각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요."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는 가장 뜨거운 교육열을 내뿜는 대치동에서 가장 냉혹한 현실을 포착했다. 교실에서조차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이 콘텐츠의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숨 막히는 교실'보다 '숨 쉴 수 있는 온라인'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여기에 교사가 무방비로 던져졌다. 교실이 차츰차츰 온실로 변해갔다.
'무균 교실'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렇게 '온실이 된 교실'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는 운동회는 단 한 명의 패배자도 없도록 무승부로 끝내기 일쑤다. 다치면 안 되니까 점심시간엔 운동장 사용을 아예 금지하기도 한다. 유별난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초등학교 6189개교 중 수업시간 외에 축구·야구 등 스포츠 활동을 금지한 학교는 312곳에 달한다. 2025년 서울 전체 초등학교 605개교 중 1박 2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학교도 30개에 불과하다. 부모의 품을 떠나 아이들이 향하는 학교는 어느새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동떨어진 교실에서 아이들은 입시경쟁으로 내몰린다. 수업 시간은 국어·영어·수학을 빠르고 많이 배우기 위한 발판으로 전락했다. 입시에 필요하지 않은 요소들을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른바 '무균 교실'이다.
그 무균실에서 아이들은 엄밀한 판단능력을 키워내기 어려웠다. OECD 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사실·의견 구분과 정보 식별 능력에 취약했다. 2018년에 실시한 PISA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사실·의견 구분' 문항 정답률은 25.6%에 불과했다. OECD 평균 47.4% 대비 절반 수준,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권이었다.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피싱 메일 식별 역량' 평가에서도 손쉽게 속는 경향을 보였다. 디지털 정보의 편향성을 알아차리는 지표에서도 OECD 평균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 아이들의 거름망이 점점 더 헐거워지고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서 왁자지껄한 온라인
스마트이미지 제공CBS노컷뉴스 취재진은 학생들을 직접 만나 오늘날 '교실의 민낯'을 전해 들었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보이는 게 중요해요. 친구들끼리 말이나 행동으로 편을 가르거든요."(A 학생 인터뷰)
"요즘에 갈라치기가 예전보다는 많이 심해진 것 같아요. 단순한 거 가지고도 애들을 나누니까요. 이런 거(주제)에 손을 안 대면 거기(갈라치기)에 포함 안 되는 거잖아요. 친한 애들끼리여도 차이가 있는 게 싫을 수도 있고요."(B 학생 인터뷰)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민감한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를 꺼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얼굴을 맞댄 채 민감한 이야기를 섞기 껄끄러운 분위기는 '무균 교실'의 연장선이었다.
심지어 섣부른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는 애꿎은 학교폭력으로 불똥이 튄다고 했다. 서로 생각이 다름을 이해하고 격차를 줄여나가는 부단한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난지 오래였다. 오히려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빈틈이 드러나면서 학생들의 침묵은 더욱 굳건해졌다. A 학생은 "지금은 단어 하나만 잘못 말해도 학폭위로 넘어갈 정도"라며 "단순히 궁금해서 질문한 것만으로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교실이 조용할수록 온라인은 시끄러워진다. 아이들은 교실 대신 온라인에서 왁자지껄 소통하며 자신들만의 단단한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익명성이라는 그늘에 숨어 혐오와 증오를 마음껏 내지를 수 있는 아지트가 탄생한 셈이다.
취재진이 만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12·3 이후 무심코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정치적인 농담과 발언들이 더 과격하고 빈번해졌다고 했다. A 교사는 "과거에는 정치적인 혐오 표현을 내뱉는 아이들이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운을 뗐다. 혹시라도 인터뷰 이후 쏟아질 수 있는 민원을 걱정하던 A 교사는 조심스레 "최근 5학년 아이가 수업 시간에 '○재명'을 외치고 '노무현 부엉이 바위' 노래를 불렀던 적 있다. 아마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걸 무심결에 따라하는 것 같았다"고 에둘러 말했다.
무기력한 교사, 무너지는 교실
AI 생성 이미지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의 순간적인 비틀림을 바로잡기 어렵다고 한다. '무기력'이 교실 전반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괜히 나섰다가 악성 민원에 시달릴 바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무력감이 학교 전반에 퍼져있었다. 매일의 교실을 꼼꼼하게 기록해 온 최현희 교사는 "요새 교사들이 압도적인 무기력과 소진 상태에 놓여 있다"며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지키는 방어막이 없으니, 그동안 쏟았던 열정과 헌신마저 꺾이고 최소한만 추구하는 수동적인 태도가 만연해졌다"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지금은 학생 문제와 교사 문제가 더해진 매우 심각한 교육적 위기"라고 규정했다. 박 명예교수는 "학생들이 극단적인 혐오 표현, 왜곡된 정치적 발언 등을 내뱉을 때, 교사들이 침묵하는 현상은 학생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며 교실이라는 안전한 공동체를 무너뜨린다"고 설명했다.
박 명예교수는 해외 사례를 통해 해결책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이다. 독일은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른 능동적 정치교육을 하고 있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①학생들에게 특정 견해를 주입하지 않고 ②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 수업에서도 동일하게 논쟁적으로 다루며 ③학생들이 직접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교육 기준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정치적 선동으로 뼈아픈 교훈을 얻은 독일은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 5·18은 폭동이라는데요?" "계엄군은 잘한 거 아닌가요?"라는 학생의 질문에 "그 주장의 출처는 어디니?", "그와 반대되는 헌법적 가치나 자료들은 뭐가 있을까?"라고 물으며 비판적 탐구로 생각을 전환시킨다. 극단적인 혐오와 왜곡된 편견을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