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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6세 중학생은 왜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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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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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경감의 사기(詐欺) 프로파일링]

온라인 그루밍 피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 규정이 강화(미수범 처벌규정 신설)되면서 경찰의 단속과 예방 활동은 확대되었고, 성평등가족부, 경찰청, 교육부는 예방교육과 상담·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그루밍 피해가 뚜렷하게 감소했다는 공식 통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SNS, 메신저, 게임 등을 통한 접근은 계속 발생하고 있어 잠재적 위험은 여전히 큰 상황이다. 지난주에 이어 청소년 피해 범죄에 대해 살펴보겠다.

2025년 12월 서울시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동·청소년 5명 중 1명이 온라인 그루밍 접근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고, 성평등가족부가 '26. 7월 발표한 '2025년 성매매 실태조사'에 의하면 온라인 성적 유인 피해청소년의 62.9%는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루밍 가해자들은 SNS, 오픈채팅, 게임 채팅, 라이브 방송 등을 통해 청소년에게 접근한 뒤 장기간 신뢰를 형성하고 심리적으로 지배하여 성착취물 제작, 금전 요구, 협박 등으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피해자의 상당수는 처음부터 범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좋은 오빠", "친절한 언니", "나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다가 범죄에 휘말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학교 3학년 박모양 이야기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16세 박모 양은 특별한 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머니는 가정주부였고 아버지는 직장에 다녔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았지만, 집안일을 하거나 다른 가족들을 돌보느라 박 양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일일이 살피지는 못했다. 박 양은 학교와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자신의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SNS를 하거나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부모는 딸이 집 안에서 생활하고 있어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휴대전화 사용도 또래 아이들이 모두 하는 일이라 여겨 크게 제한하거나 점검하지 않았다.

사건은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박 양은 자신의 작품 사진을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성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림 정말 잘 그리네요." 상대는 자신을 스무 살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림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교생활과 취미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박 양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항상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고,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사소한 이야기까지 끝까지 들어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매일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밥은 먹었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박 양은 자신을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이 처음이라고 느꼈다. 친구들과 다툰 이야기를 하면 그는 "너는 잘못이 없어.", "네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나뿐이야."라고 말해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박 양은 그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하루라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상대는 영상통화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얼굴만 잠깐 보여주는 정도였지만, 그는 조금씩 더 친밀한 행동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만 보는 거니까 괜찮아.", "나를 믿잖아." ,처음에는 거절했던 박 양도 계속되는 설득 끝에 조금씩 요구를 들어주었다. 상대는 이를 몰래 녹화해 두었다. 며칠 뒤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진을 더 보내."

"안 보내면 부모님하고 친구들에게 영상을 다 보낼 거야." 박 양은 너무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삭제했다고 믿었던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협박을 계속하며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부모 몰래 문화상품권을 구매하게 하거나 부모 계좌에서 소액을 이체하도록 시켰다. 돈을 보내도 협박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요구했고, 다른 SNS 계정을 만들도록 시키기도 했다.

학교생활도 점차 무너졌다. 휴대전화 알림이 울릴 때마다 불안해졌고, 수업시간에도 계속 상대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피했고, 집에서는 방문을 잠그는 시간이 늘어났다. 성적은 급격히 떨어졌고, 밤마다 울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 달 뒤 담임교사는 밝던 학생이 갑자기 말수가 줄고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다. 상담 과정에서 박 양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학교는 즉시 부모에게 알렸고, 부모의 신고로 수사가 진행되었다. 수사 결과 상대는 여러 명의 청소년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협박해 온 온라인 그루밍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SNS 대화였지만 불과 몇 달 사이 온라인 그루밍은 한 중학생의 일상을 무너뜨렸고, 가족의 신뢰와 아이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피해자의 심리

박 양은 낯선 사람을 쉽게 믿는 성격이어서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 또 처음부터 위험한 사람을 만나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SNS를 이용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문제는 가해자가 처음부터 범죄자의 모습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친절했고, 공감해 주었으며, 누구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들어주고, 친구들보다 더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끼면서 박 양은 점점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박 양은 협박이 시작된 이후에도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고, 부모가 실망하거나 혼낼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가해자의 요구를 거절하기보다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따르는 것이 낫다고 믿게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가해자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협박과 죄책감은 정상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혼자 해결하려다 피해가 더욱 커지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적 해설

'온라인 그루밍 범죄 예방 영상' PC방 브라우저 및 배너. 법무부 제공'온라인 그루밍 범죄 예방 영상' PC방 브라우저 및 배너. 법무부 제공
청소년 온라인 그루밍은 단순한 인터넷 만남이나 일회성 범죄가 아니다. 이는 가해자가 청소년의 발달적 특성과 심리적 취약성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를 쌓고 심리를 조종하는 범죄이다. 피해 청소년은 스스로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친한 사람을 만났다."고 믿는 경우가 많아 피해 사실을 인식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첫째, 신뢰 형성(Grooming Process)이다. 가해자는 처음부터 성적인 요구나 협박을 하지 않는다. 또래인 것처럼 접근하거나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 게임 친구,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 등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며 피해자에게 다가간다. 매일 안부를 묻고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 가족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모습을 보이며 "세상에서 나를 가장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 준다. 특히 부모와의 갈등, 학교폭력, 외로움, 낮은 자존감을 경험하는 청소년은 이러한 관심과 공감에 더욱 쉽게 마음을 연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취미, 관심사, 고민, 생활 패턴까지 파악하며 심리적 의존 관계를 형성한다. 결국 피해자는 상대를 낯선 사람이 아닌 믿을 수 있는 친구나 연인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후의 요구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둘째, 점진적 요구(Foot-in-the-Door Technique)이다. 신뢰가 형성되면 가해자는 아주 작은 부탁부터 시작한다. "얼굴 사진 한 장만 보내 줄래?", "영상통화 5분만 하자.", "우리만 볼 수 있게 비밀 사진 하나 보내 줘."처럼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를 한다. 청소년은 이미 상대와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탁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요구를 수용한 이후에는 "지난번에도 보내줬잖아.",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라는 방식으로 요구의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 평범한 셀카는 노출 사진으로, 노출 사진은 성적인 영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직접 만나자는 요구나 금전 요구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문간에 발 들여놓기(Foot-in-the-Door)' 효과라고 하는데, 한 번 수락한 사람은 이전 행동과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심리 때문에 이후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셋째, 심리적 고립(Isolation)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부모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 관계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부모님이 알면 너만 혼날 거야.", "친구들에게 말하면 네 비밀이 모두 퍼질 거야."와 같은 말을 반복하며 피해자의 불안을 키운다. 또한 "나는 너 편이지만 다른 사람은 너를 비난할 거야."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입하여 피해자가 오직 가해자만을 의지하도록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는 부모와의 대화를 피하고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주변에서 이상 행동을 눈치채더라도 "아무 일 없다."며 숨기려 하고, 결국 피해는 장기간 지속된다. 이처럼 심리적 고립은 피해자를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떼어 놓아 구조의 기회를 차단하고, 가해자의 통제력을 극대화하는 핵심 수법이다.

넷째, 두려움과 죄책감의 이용(Fear and Shame Manipulation)이다. 가해자는 확보한 사진이나 영상, 대화 내용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사진을 부모님에게 보내겠다.", "학교 친구들에게 모두 유포하겠다.", "SNS에 올려 인생을 망치겠다."는 식의 협박은 청소년에게 극심한 공포를 안겨 준다. 그러나 청소년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협박 그 자체보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라는 죄책감이다. 피해자들은 "내가 사진을 보낸 것이 잘못이다.", "처음부터 대화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신을 비난한다.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 줄 것이라는 두려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것이라는 수치심, 학교생활이 망가질 것이라는 불안이 겹치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이러한 심리는 가해자에게 더욱 유리하게 작용한다. 가해자는 "신고하면 더 크게 퍼뜨리겠다.", "경찰도 너를 도와줄 수 없다.", "네가 먼저 보냈으니 네 책임이다."라는 거짓말을 반복하며 피해자의 무력감을 키운다. 결국 피해자는 협박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사진을 보내거나 돈을 송금하고, 심지어 직접 만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를 들어준다고 협박이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가해자는 피해자의 두려움과 순응을 확인한 뒤 더 큰 요구와 착취를 반복하며 범행 수위를 높여 간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청소년 온라인 그루밍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자가 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를 가해자의 공범처럼 여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침묵을 선택하고, 그 침묵이 피해를 더욱 장기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 주변 어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를 묻기보다 "네 잘못이 아니며 지금이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먼저 전달해야 한다.

온라인 그루밍 사건의 공통점은 처음부터 협박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오랜 시간 피해자의 신뢰를 얻고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든 뒤 범행을 시작한다. 그래서 피해 청소년들은 범죄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 "조금만 참으면 끝날 것이다."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학교전담경찰관(SPO)이 상담하는 사례를 보면 피해 학생 상당수는 "부모님께 혼날까 봐 말하지 못했다.", "내 잘못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온라인 그루밍의 책임은 피해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치밀하게 접근한 가해자에게 있다. 범죄자는 청소년의 외로움과 호기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것이다.

경찰은 그루밍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가해자의 계정과 접속 기록, 디지털 흔적을 신속히 확보하여 추가 범행과 영상 유포를 막기 위한 수사를 진행한다. 동시에 피해자가 더 이상 혼자 두려움을 감당하지 않도록 전문 상담기관과 연계하여 심리 회복과 일상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부모들도 자녀의 작은 변화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갑자기 특정 SNS를 숨기거나, 낯선 사람과 밤늦게까지 대화를 이어가고, 휴대전화를 빼앗기지 않으려 하거나,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성격이 급격히 변했다면 온라인 그루밍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삭제한 줄 알았던 사진이나 영상 때문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혼내기보다 먼저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말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온라인 그루밍 피해는 숨길수록 가해자의 협박이 커지고 피해도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부모와 학교, 경찰에 즉시 도움을 요청하면 영상 삭제 지원, 수사, 심리치료 등 다양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청소년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감시가 아니라 신뢰와 대화이다. 아이가 혼자 두려움을 감당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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