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파크컴퍼니 제공원로배우 신구(91)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발인 당일에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오른 이유와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신구는 2일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시리즈 '시대목격'에 출연해 "공연은 내 개인의 생활과는 관계가 없다"며 "관객하고 공연하기로 약속해 놓은 거니까 개인 사정은 개입될 수 없지"라고 밝혔다.
이어 "(아내가) 갑자기 가더라.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고 아, 이렇게 사는가보다 싶더라"고 덧붙였다. 당시 신구는 장례를 치른 뒤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평소와 다름없이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제작사 박정미 파크컴퍼니 대표는 "선생님을 많이 사랑하시는 분을 떠나보내는 날 무대에 섰다"며 "그 의미가 뭘지"라고 떠올렸다.
이상윤은 "선생님께서 장례를 치르고 금요일 지방 공연 가면 되니까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고 하셨다"며 "다들 장례식에서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시지'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인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공연하셨다고 하더라. 선생님의 무대는 무엇일지"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신구는 '100년 후 박물관에 들어갈 자신의 물건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포스터 아니면 거기 사진 하나"라고 꼽았다.
이어 "내 말년에 인생극이다. 박근형 씨가 잘하셨고 합이 잘 맞았다. 다른 사람이랑 했으면 그런 맛이 안 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나도 일생 연극을 하면서 처음 경험했던 연극이다. 전 회차가 매진돼 자랑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연극 '불란서 금고'연극 '불란서 금고'를 연출한 장진 감독도 "선생님이 무대에 서는 걸 허투루 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며 "전 국민이 다 알고 전 국민이 사랑하는 배우가 주인공의 역할로 1시간 40분 동안 등퇴장도 거의 없는 무대를 지켜내주시더라. 우리의 프라이드를 만들어주셨다"고 감탄했다.
신구의 64년 연기 인생도 함께 조명됐다. 그는 화폐개혁이 단행된 1962년, 26세의 나이로 연기에 입문했다.
그는 "동랑 유치진 선생님이 드라마 센터를 개관하고 부설로 극작가, 연출가, 배우를 육성하는 연극 아카데미(현 서울예대)를 만들어줘 2년 과정으로 교육받았다"며 "당시 적극적인 성격이 못돼 연기를 통해 바꿔보려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원래 이름이 '순기(順基)'인데 연극을 하면서 쓰는 이름으로 미흡하고 촌스러운 거 같아서 선생님께 여쭤봤다"며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신구(申久)'로 해보라고 하시더라. 무슨 뜻입니까 묻지도 않고 고맙습니다 하고 바로 나왔다. 그때부터 제 예명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신구는 1966년 동아연극상 남자 연기상 조연상에 이어 1969년, 1971년 동아연극상 남자 연기상 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국내 대표 연극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연극 아카데미 동기인 전무송은 "그 형님은 배역을 맡을 때마다 특이한 걸 만들어낸다"며 "어떤 천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노력을 통해 배역하고 맞게 만든다. 그게 배우지"라고 강조했다.
EBS 제공
드라마 센터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신구는 1987년부터 서울예대에 '신구 장학금'을 만들어 어려운 환경에 있는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는 사연도 소개됐다.
'신구 장학금' 수혜자 중 한 명인 유해진은 "넉넉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선생님 도움으로 무사히 마쳐 제가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신구는 "아주 소액이다. 그거 가지고 얘깃거리가 안 된다"며 "무슨 도움이 됐겠냐. 버스비 좀 보태줬겠지"라고 웃었다.
끝으로 신구는 연극에 대해 "그냥 사는 것"이라며 "늘 곁에 두고 살았으니까 내가 즐겨하고, 해보고 싶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밥 먹듯이 그냥 해왔다"고 말했다.
신구의 아내 고(故) 하정숙 씨는 지난해 7월 별세했다. 신구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집에 들어갈 때 '나 왔어~' 하고 들어간다"고 밝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박근형, 조달환, 이상윤과 함께 연극 '베니스의 상인'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한편, '시대목격'은 영화, 연극, 문학, 음악, 바둑, 예능, 스포츠, 패션, 언론, 광고, 안무 등 문화·예술·언론과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삶과 발자취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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