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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력이 괴물이 될 때, 난민은 물탱크에 갇혔다[책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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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권력'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로 읽는 국가와 인간의 경계

팔레스타인 소년이 손에 붕대를 감고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난민촌을 바라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연합뉴스·백악관 팔레스타인 소년이 손에 붕대를 감고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난민촌을 바라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연합뉴스·백악관 
대통령은 위임 받은 권력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경계 앞에 선 사람은 어디까지 밀려날 수 있을까.

한 권은 초강대국 미국 백악관의 권력을 해부하고, 다른 한 권은 국경 앞에서 사라진 난민의 몸을 응시한다. 미국 대통령제의 폭주를 다룬 정치학 책 '초권력'과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중단편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전혀 다른 자리에서 출발하지만, 두 질문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서 만난다.

권력이 자기 한계를 잊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얼굴이라는 점에서다.

윌리엄 G. 하월과 테리 M. 모가 쓴 '초권력'은 도널드 트럼프를 다룬다. 그러나 흔한 트럼프 비판서와는 결이 다르다. 저자들은 트럼프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돌발 인물로 보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권력이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커졌고, 그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를 흔들었는지를 추적한다.

미국 헌법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리는 것을 경계했다. 대통령이 있더라도 의회와 법원이 견제하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정부가 할 일이 많아지면서 대통령의 손에 쥐어진 권한도 커졌다. 경제를 관리하고, 복지를 확대하고, 전쟁과 외교를 이끌고,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백악관의 힘을 키웠다.

문제는 그 힘이 어느 순간 다른 방향으로 쓰였다는 데 있다. 책은 로널드 레이건 이후 공화당 대통령들이 '큰 정부와의 전쟁'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백악관의 통제권은 더 키웠다고 본다. 행정국가를 줄이겠다는 명분 아래 관료 조직을 장악하고, 충성파를 심고, 대통령의 일방적 권한 행사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 길 끝에 트럼프가 있다. '초권력' 속 트럼프는 원인이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그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대 세력을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만들며, 법과 제도의 경계를 거칠게 밀어붙인다. 민주주의의 기본 규범은 이 과정에서 귀찮은 절차가 된다. 견제와 균형, 법치, 관용과 자제 같은 말은 '이겨야 한다'는 정치 앞에서 힘을 잃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이 미국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3개 UN 회원국 중 53개 국가에 도입된 대통령제는 빠른 결단과 강한 리더십을 장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장점은 언제든 위험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책은 가장 민주적으로 평가 받거나 권력을 분산시키고 균형을 가진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지키려는 정치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빠르게 허물어진다고 진단한다.


메디치미디어·열림원 제공메디치미디어·열림원 제공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권력의 반대편에 놓인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 책의 인물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권력이 그은 선 때문에 고향을 잃고, 국경에 막히고, 생존을 위해 위험한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표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팔레스타인 출신 세 남자가 쿠웨이트로 가려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국경을 넘는 일은 여행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통로는 좁고, 가난한 난민에게 허락된 길은 더 위험하다.

세 사람은 사막을 건너기 위해 물탱크 안에 숨어든다. 이 물탱크는 작품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소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닫힌 탱크 안에서 사람의 몸은 천천히 지워진다. 그것은 이동 수단이면서 감옥이고, 피난처이면서 무덤이다.

카나파니는 거창한 역사 설명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밀폐된 물탱크 하나로, 국경 바깥에 놓인 인간의 처지를 보여준다. 작품의 마지막 질문은 오래 남는다. "왜 당신들은 물탱크의 측면을 노크하지 않았지?" 이 문장은 죽은 세 사람에게 던지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방향이 바뀐다.

왜 그들은 살기 위해 숨어야 했나. 왜 그들의 신호는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나. 왜 세계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나.

카나파니의 소설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정치 구호로만 말하지 않는다. '슬픈 오렌지의 땅', '가자에서 온 편지' 같은 작품에서도 전쟁과 추방은 지도 위의 선이나 뉴스 속 숫자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가족이 흩어지는 일, 신앙이 흔들리는 일, 떠나온 땅의 냄새를 끝내 잊지 못하는 일로 남는다.

그래서 '초권력'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따로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을 때 더 묵직하다.

'초권력'은 권력이 어떻게 자기 한계를 지우는지 보여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그 세계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밀려나는지 보여준다. 한쪽에는 백악관 안에서 커지는 권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국경 밖 물탱크 안에서 사라지는 몸이 있다.

두 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고한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사건으로만 오지 않는다. 누군가 법의 경계를 조금씩 밀어내고,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보지 않는 데 익숙해지고, 누군가 경계 밖 사람들을 숫자로만 부를 때 이미 시작된다.

'초권력'은 권력을 쥔 사람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묻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힘에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묻는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든 국가와 제도가 오히려 인간의 자리와 목소리를 지워갈 때,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게 될까.

■초권력
윌리엄 G. 하월·테리 M. 모 지음 | 이철희 옮김 | 메디치미디어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 지음 | 윤희환 옮김 |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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