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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우리 같은 여성들 돕고 싶다"…연대로 싸운 김복동·길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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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위안부는 가짜'라는 망언이 이어지고, 평화의 소녀상은 가려졌다. 그러나 '싸움꾼 할머니들' 앞에서는 이들의 망언도 속수무책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거친 욕설이 섞인 불호령으로, 다른 나라 전시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로, 때로는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 자체로 싸워왔다. 남은 생존자는 5명뿐이지만, 이들의 싸움을 이어받은 후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존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광복절 기획 <싸움꾼 할머니들>에서 정의기억연대 소장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피해자로만 기억돼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주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싸워 온 모습을 4회에 걸쳐 조명한다.

[싸움꾼 할머니들②]
2012년 세계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 돕는 '나비기금' 설립
'베푸는 마음' 가진 김복동, 경찰엔 양말·피해자 지원엔 기부
길원옥 "후손은 당하지 말라고, 어디든 간다" 적극 증언
나비기금, 콩고·베트남·팔레스타인 등 해외 피해자까지 지원
콩고 피해자의 편지 "거리 상관없이 고통 기억해줘 감사"

'김복동, 길원옥은 평화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있는 두 할머니의 동상.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던 그 날을 잊지 않겠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김지은 기자'김복동, 길원옥은 평화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있는 두 할머니의 동상.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던 그 날을 잊지 않겠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김지은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일본 두들겨 패는 놈은 나 하나"…욕쟁이 할머니의 불호령
②[단독]"우리 같은 여성들 돕고 싶다"…연대로 싸운 김복동·길원옥
③혐오시위에도 밥 한 공기 뚝딱…'존재 자체가 증언' 박필근 할머니
④"끝나지 않은 전쟁 우리가 이어간다"…싸움꾼 할머니들의 후예
(계속)


"내 힘 닿는 데까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들 같은 일을 당한 여성들에게 보답이 되도록 힘껏 써보겠습니다"

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201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나비기금' 설립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싸워온 김복동 할머니는, 세계 각지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를 겪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기로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그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함께한 고(故) 길원옥 할머니도 "여기 계시는 분들은 이렇게 아프다는 게 얼마큼 아픈 건지 모르실 거예요"라며 "앞으로 배상금 나오는 것은 내가 어찌 됐든지 손을 대지 않고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맡겨 가지고서 '정말로 어린 것들이 당하고 있는 그곳에 잘 요진하게 써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피해자로만 여겨졌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다른 피해자를 돕는 인권운동가로 나선 순간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도 국경을 넘어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로 확장됐다. 연대, 그것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싸우는 방식이었다.

'베푸는 사람' 김복동, 다시 싸움의 길로

201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증언하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201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증언하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일본놈들은 다 나쁘진 않아. 그래도 '똑같이 고향을 떠나서 결국 같이 있다' 하는 걸 생각해"

CBS노컷뉴스는 전쟁과여성인권 아카이브에 보관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5개월간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피해자들의 증언과 활동을 분석했다.

그중 2018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증언 영상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일본군을 미워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 타국에 와 있던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려 했다.

1995년부터 할머니들과 함께 '위안부' 운동을 해 온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김동희 관장은 김복동 할머니를 "베풀고 '뭔가를 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누구보다 갖고 계셨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복동 할머니가 처음부터 적극적인 활동가였던 것은 아니다.

1940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김복동 할머니는 1947년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귀국했다. 이후 1992년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듬해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이후 한동안 활동을 멈췄다. 힘들게 증언해도 일본 정부는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2년 김복동 할머니가 증언하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2002년 김복동 할머니가 증언하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할머니는 백내장 수술 부작용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이후 1.5리터짜리 됫병 소주를 밥처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지냈다. 당시 정의연 활동가들은 눈을 치료하러 서울에 오라고 권했고, 할머니가 내건 조건은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였다. 김동희 관장에 따르면 할머니는 수요시위도, 아이들 앞에서 증언하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온 할머니는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며 적극적으로 '위안부' 운동에 나서는 다른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결국 스스로 내건 조건을 거뒀다.

"우리는 이미 당했지만은 또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은 우리들과 같은 일을 안 당한다 할 수는 없잖아요"

김복동 할머니는 이후 수요시위에 꾸준히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 현장에 나온 경찰들에게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양말을 챙겨주라고 활동가들에게 일렀다. 할머니의 '양말 선물'은 2010년쯤 시작돼 5~6년간 이어졌다.

수요시위가 끝난 어느 날, 김복동 할머니는 "내가 죽으면, 얼마 없지만 정부로부터 생활비도 받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쓰면 좋을까. 내가 돌아다녀 보니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너무 많다. 이 여성들을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나비기금의 출발이었다.

"후손들은 당하지 않길"…부르면 어디든 달려간 길원옥

201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증언하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201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증언하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김복동 할머니가 다시 활동에 나서고 '베푸는' 마음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준 할머니가 있다. 1998년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여러 나라를 찾아 증언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 길원옥 할머니다.

김동희 관장은 "어디로 부르든지 해외로 나가서 이야기를 하는 강덕경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다시 힘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어"

길원옥 할머니는 2018년 정의연 증언 영상에서 '미운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을 당시 군인들이 밉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미운 생각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힘이 드는데 그때 힘들 때 지나가면 없어져야지"라고 말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황금주·김복동 할머니보다 피해 신고는 늦었지만, 이후 2007년 EU 의회 증언과 2013년 일본 순회집회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찾아가 증언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2004년 증언 영상에서 "우리는 얼굴 내놓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너무 아프게 당했으니까 우리 후손들은 이렇게 우리같이 당하는 사람은 절대 없어야 하니까. 나는 어디서든지 오라면 간다"라고 말했다.

2004년 정대협을 방문한 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증언하는 길원옥 할머니.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2004년 정대협을 방문한 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증언하는 길원옥 할머니.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하지만 길원옥 할머니에게도 피해 생존자로 살아가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CBS노컷뉴스가 전쟁과여성인권 아카이브를 통해 길원옥 할머니의 활동을 살펴본 결과, 2004년 정대협을 찾은 일본 대학생들을 만나는 장면도 확인됐다.

일본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할머니는 "해방이 됐다고 좋다고 하는데 저희들은 그대로 숨어야만, 숨어서 살아야만 하는 신세가 됐거든. 내놓고 펴놓고 '누구한테 놔요'하고 내놓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었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통역사가 대학생들에게 일본어로 통역을 하는 동안 길원옥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길원옥 할머니는 이어 "다시는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 한국만 당하라는 법이 없거든.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게 인간의 삶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힘써주시기 바란다"라며 눈물을 삼키고 애써 웃었다.

길원옥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할머니는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답변을 내놔야 한다"고 했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다시는 우리나라에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거리 상관없이 기억해 줘 감사"…세계로 뻗어나가는 나비

2019년 쉼터에서 길원옥 할머니를 만난 이라크 야즈지족, 아프리카 남수단 등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이 감사를 전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2019년 쉼터에서 길원옥 할머니를 만난 이라크 야즈지족, 아프리카 남수단 등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이 감사를 전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두 할머니는 손을 잡고 해외 전시성폭력 피해자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용기를 전하며 연대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내민 손길은 피해자들의 감사로 돌아와 또 다른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나비기금은 설립된 2012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당시 성폭력을 겪은 뒤 다른 여성들을 돕고 있는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씨를 통해 지원을 시작했다.

마시카씨는 지원이 시작된 2012년 4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저는 콩고 여성의 삶만이 성폭력에 일그러져 있다고 생각해, 한때 자살을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여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성폭력은 여러 다른 나라 여성들도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또한 지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여러분이 나를 비롯해 성폭력으로 매일을 고통 당하고 있는 콩고 여성들을 기억해 주고 계시니 정말 감사하다"고 밝혔다.

2019년 길원옥 할머니를 만난 이라크 야지디족과 남수단 등의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은 "할머니가 용기 있게 증언도 해 주시고 활동도 많이 하셨다. 할머니가 용기를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직접 전하기도 했다.

나비기금은 지금도 다른 나라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2013년부터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자녀들, 학살이 발생한 마을 등을 지원하는 데 쓰였고, 2021년부터는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함께 손잡고 싸우며 일궈낸 '희망'은 지금도 싸우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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