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제공책 속에 숨겨진 익명의 편지 한 장이 외로운 사람들의 일상을 흔든다.
모이라 맥도널드의 장편소설 '스토리북 엔딩'은 시애틀의 작은 서점 '리더룸'을 배경으로 한다. 재택근무로 고립감을 느끼는 에이프릴은 어느 날 단골 서점의 매력적인 점원에게 익명의 편지를 남긴다. 하지만 그 편지는 뜻밖에도 5년 전 남편을 잃고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로라의 손에 들어간다.
로라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 서점 직원이라고 오해하고 답장을 쓴다. 그렇게 두 여성은 서로를 서점의 남자라고 믿은 채 다정한 편지를 주고받는다. 정작 두 사람의 상상 속 남자가 된 웨슬리는 중고책 더미에서 발견한 낯선 소설과 그 작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스토리북 엔딩'은 오해에서 출발한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빌리지만, 관심은 단순한 연애 소동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고 믿는 마음과 실제로 알아가는 시간 사이의 간극, 설렘 뒤에 숨어 있던 외로움과 애도, 다시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는 망설임을 따라간다.
작품 속 서점 '리더룸'은 또 다른 주인공에 가깝다. 새 책과 헌책이 함께 놓인 이 공간은 웨슬리에게는 숨을 수 있는 클럽하우스이고, 에이프릴에게는 현실과 다시 접촉하는 장소이며, 로라에게는 엄마와 직장인의 역할 밖에서 자신으로 돌아오는 공간이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책의 이름도 반갑다.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에이프릴이 편지를 쓰게 된 계기이고, '위대한 개츠비'와 '남아 있는 나날'은 로라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노생거 사원', '오즈의 마법사', '모스크바의 신사', '사랑의 역사' 등도 인물들의 마음을 비추는 장치로 등장한다.
소설은 책을 읽는 일이 잠시 세상을 차단하는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닿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속에 끼워진 편지, 누군가가 두고 간 기념일 카드, 밑줄과 메모가 남은 중고책들은 타인의 삶을 엿보게 하는 작은 문이 된다.
모이라 맥도널드 지음 | 박산호 옮김 | 민음사
황금가지 제공한국 공포 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단편 9편이 한 권으로 묶였다.
황금가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에 일월명, 클레이븐, 배예람, 김아직, 차삼동, 현이랑, 영선, 이상준, 창궁 등 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책은 2006년부터 출간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와 2017년 나온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후속작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두 번째 밤'을 잇는 신간이다. 수록작은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엄선한 단편들로 구성됐다.
작품들은 익숙한 현실에서 출발해 초자연적 공포와 과학소설(SF), 오컬트, 스릴러로 뻗어 나간다. 매일 밤 가로등 아래 나타나는 여자를 둘러싼 사건을 다룬 '야!', 핵전쟁 이후 화성 거주 구역에 퍼진 정체불명의 곰팡이 생태계를 그린 '구더기의 왕'이 먼저 독자를 끌어들인다.
방 탈출 카페 제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담은 '괴담 - 방 탈출 카페 제작 중에 생긴 일', 직장 동료의 대화 속에서 저주성 주문과 세뇌를 드러내는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도 실려 있다.
기술과 괴담을 결합한 작품도 눈에 띈다. '코스모노미콘의 추억'은 고등학교 오컬트 동아리 학생들이 만든 증강현실 앱이 현실의 끔찍한 형상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고전 서사를 비트는 시도도 있다. '호러 심청'은 심청전을 잔혹한 복수극과 스릴러의 감각으로 다시 구성한다. '입춘 벽사문'은 조선시대 선비가 입춘 전야 흉산에서 마주하는 마물과 원죄를 다룬다.
'우리 안에서'는 건설 현장의 사고를 은폐한 작업반장이 불길한 호텔 공사장에 갇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인류의 소멸을 불러올 수 있는 우주적 재앙 '진공 거품' 탐사를 따라간다.
책은 납치 범죄, 직장 생활, 방 탈출 카페, 학교 괴담, 조선시대 벽사 의식, 화성 거주지, 우주적 재앙까지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한국 공포 문학의 폭을 보여준다.
일월명·클레이븐·배예람 외 지음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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