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당시 구루마다 마사미씨. 오른쪽은 세인트세이야 40주년 포스터 이미지. 엑스(X) @chuzaiina·유튜브 영상 캡처일본의 인기 만화 '세인트 세이야'의 작가 구루마다 마사미(車田正美, 72)씨가 25년간 곁에서 일해 온 매니저에게 46억 엔이 넘는 회사 자금을 빼앗겼다며 소송을 냈다. 매니저가 "선생은 사람을 싫어해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며 외부 접촉을 차단하고 경리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6년 넘게 돈을 빼돌렸다는 것이 작가 측 주장이다.
지지통신의 2일 보도에 따르면 구루마다씨는 이날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대표를 맡은 구루마다 프로덕션 등 3개 회사에서 전 이사인 매니저 등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46억 8617만 엔(약 402억 원)을 횡령했다고 밝혔다. 작품의 저작권과 상품화권을 관리하는 이 3개 회사는 변제된 18억 엔(약 154억 원)을 뺀 28억 9688만 엔(약 248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냈다.
일본 법률 매체 변호사JP의 3일 보도에 따르면 피고는 주범으로 지목된 매니저와 그의 동생, 지인 등 개인 7명과 매니저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 4곳이다. 매니저는 약 25년 전 출판사 슈에이샤의 계약사원으로 구루마다씨의 담당 편집자였다가 잡지가 휴간되자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됐고, 회사 설립을 제안해 저작권 관리 등을 맡는 3개 회사를 세우게 한 뒤 경리와 대외 교섭 일체를 맡았다.
관계자와 거래처에는 "선생은 예술가이고 사람을 싫어해 만나지 않는다"며 자신을 거치지 않고는 작가와 연락할 수 없게 했다. 법률대리인 가와이 히로유키 변호사는 회견에서 매니저가 작가를 신격화해 까다로운 사람이라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하고 할 말이 있으면 전부 자신에게 하라며 모든 접촉을 막았다고 말했다.
소장에 따르면 매니저는 회사 명의 예금 계좌에서 자신이 지배하는 회사들로 돈을 무단 송금했고, 굿즈와 완구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회사 'NEXT WING'과 비슷한 이름의 별도 회사를 세워 거래처의 라이선스료를 그쪽으로 입금하게 했다.
구루마다 마사미씨 기자회견 장면. 지지통신 유튜브 영상 캡처
횡령사실은 세무 당국에게 걸려 드러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2일 보도에 따르면 2024년 2월 도쿄국세국의 지적을 계기로 자금 흐름이 확인됐다. 구루마다씨는 기자회견에서 "발각 당시 회사 계좌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아 거액의 세금을 낼 수 없는 상태였다"며, "자칫하면 프로덕션이 도산하고 자신도 만화가로서 무너졌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후 2년 반 동안 불안과 초조 속에서도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창작을 이어왔다고 했다. 그는 "46억 엔은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지난 10년 동안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중국계 완구 회사가 가져다준 재산이 10억 엔 넘게 계좌로 들어오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구루마다씨는 매니저에 대해 "이런 횡령 사건은 (뉴스에서)가끔 들어왔지만, 애니메이션과 만화 세계에서 나쁜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50년 넘게 이 세계에서 일했지만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왜냐고 묻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노보다 허무가 앞섰다"며, "사리사욕을 위해 믿어온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배신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어찌할 도리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고 했다.
일본 스포츠호치의 3일 보도에서 구루마다씨는 돈을 되찾으면 어디에 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액, 그런 더러운 돈은 필요 없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부 써서 깨끗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피해는 팬들에게도 미쳤다. 구루마다씨는 횡령 발각 여파로 2024년 6월 도쿄 롯폰기힐스에서 열 예정이던 데뷔 50주년 기념 대원화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전 세계 팬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2027년 봄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세인트 세이야' 40주년 기념 원화전으로 다시 열겠다며 이번에는 꼭 와달라고 했다.
횡령 사건 소식을 접한 한 누리꾼이 올린 구루마다 마사미씨의 40주년 기념 사진. 엑스(X) @ZanEngineer 캡처도쿄 출신인 구루마다씨는 1974년 '스케반 아라시'로 데뷔해 '주간 소년 점프'에 '링에 걸어라'와 '세인트 세이야'를 연재했다. 1985년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세인트 세이야'는 코믹스 누계 발행 부수가 국내외 5천만 부를 넘고, 브라질에서는 30년 전부터 방영돼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구루마다씨는 1989년 납세액이 3억엔을 넘어 고액납세자 문화인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회견에서 한때 인간 불신에 빠질 뻔했다면서도 전 세계에서 자신의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그려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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