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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우린 형제입니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페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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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섭의 페이스메이커, 러닝의 모든 것

사람들은 왜 달릴까요?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전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유이며,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자가 직접 달리고, 만나고, 묻습니다. '페이스메이커'는 러너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달리기 너머의 이야기를 담는 '러너리즘(Runnerism)'을 지향합니다.

['월클 마라토너' 신행철의 국제 대회 도전기③]

▶ '월클 마라토너' 신행철의 국제 대회 도전기
① '압도적 1위' 하프마라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
② 애국가 5번이나 울렸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
③ "메달? 우린 형제입니다"…'70대 세계 1위' 신행철의 5관왕 도전기

"뭐…그냥 뛰는 거지."

'70대 세계 1위 마라토너' 신행철 고수(高手)가 '2026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5관왕에 올랐다.

신 고수를 따라다니며 여러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경기 전후로 건네는 말, 경쟁자를 대하는 태도다.

러너들 사이에서 '달변가'로도 유명하다. 신 고수가 출연했던 각종 유튜브 영상에는 "하나, 하나 던지시는 농담에서도 젊음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신행철 형님의 멘트에 배꼽 잡고 웃는다", "유쾌하고 위트 있으시다" 등 '말'과 관련된 댓글들이 수없이 달린다.

실제로 지난 6월 신 고수의 기사를 접한 한 러너는 '페이스메이커'에 "좋은 말들이 많아서 따로 저장해 뒀다"며 "신행철 선생님의 인성과 품격도 세계 기록에 걸맞은 분인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번 대회 기간에도 입담은 살아 있었다. 신 고수가 직접 했던 말들로 대회를 정리해 봤다.

5번째 금메달을 보여주고 있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5번째 금메달을 보여주고 있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
"올해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가 있습니다. 전 세계 선수들이 나이 그룹별로 시합을 해요. 저는 7개 종목을 신청했는데, 금메달 5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페이스메이커'와 인터뷰에서 세운 목표였다. 신 고수는 약 두 달 뒤, 이를 실현했다.

로드 10㎞(8월 23일·41분 49초)를 시작으로, 트랙 800m(8월 25일·2분 30초 85), 트랙 5000m(8월 27일·19분 11초 61), 하프마라톤(8월 30일·1시간 27분 22초), 트랙 1500m(9월 1일·5분 12초 02)까지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열흘 동안 5개 종목을 소화하면서도,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크로스컨트리 6㎞(9월 2일)에서는 1위와 불과 2초 차이로 은메달을 땄다. 마지막 종목인 4X400m 계주(9월 3일)는 70대 그룹 팀이 결성되지 않아, 60대 그룹으로 연령대를 낮춰 뛰었다. 해당 종목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7개 종목 출전, 금메달 5개·은메달 1개.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다.

경기를 마치자마자 라이벌을 위로하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경기를 마치자마자 라이벌을 위로하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
"우리는 형제입니다. 같은 러너로서 유대감을 가지고 있고, '열정'은 모두 똑같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서 한자리에 모여 뜻깊은 경험을 하게 돼서 기쁘네요."

"동시대에 태어나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러너들과 호흡을 맞춰 뛴다는 게 승패를 떠나서 감동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이 아닐 수 있어도, 우리 연령대에서는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평생 잊지 못하고 무덤까지 가져갈 만한 짜릿한 느낌입니다."


열정. 대회 기간 신 고수가 가장 자주 꺼낸 단어였다.

신 고수는 대구까지 찾아온 외국 선수들을 끊임없이 치켜세웠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와 시차를 극복하고 경기에 나선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메달을 딴 선수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결승선을 통과한 모든 선수가 존경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열정을 향한 존경심은 행동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 고수가 트랙 1500m 결승에서 1위로 경기를 마친 뒤, 가장 먼저 한 행동은 2위 선수를 안아준 것이었다. 함께 경쟁한 14명의 '형제'를 모두 꼭 안아주고 격려했다.

시상대에 함께 오른 경쟁자들에게는 특별한 선물도 건넸다. 그러면서 "나는 홈 어드밴티지를 받았다. 당신의 나라에서 대회가 열렸다면 내가 졌을 것"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전 세계의 러너들이 완주를 목표로 힘을 내고 있다.  이우섭 기자전 세계의 러너들이 완주를 목표로 힘을 내고 있다. 이우섭 기자
신 고수의 말대로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종목에서든 열정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 됐다.

트랙 경기 중 한 선수가 넘어져,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해당 선수는 피를 흘리면서도 레이스를 멈추지 않으려 애썼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 뒤, 한참을 지나서야 피니시 라인을 지나치는 선수들도 수없이 보였다.

하프마라톤 경기에서는 약 2시간 50분이 지나서야 결승선을 통과한 백발의 외국 러너가 보였다. 전체 1위를 차지한 선수의 기록이 1시간 6분대인데, 백발의 러너는 그만큼이나 큰 박수를 받으며 경기를 마쳤다.

트랙 1500m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선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트랙 1500m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선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
"태극기를 달고 뛴다는 것 자체에 책임감과 중압감이 있습니다."

신 고수에게 이번 대회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대회 자체가 국가대항전은 아니었지만, 어떤 종목이든 1등을 하면 시상대에서는 금메달리스트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총 다섯 차례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신 고수는 첫 금메달 시상식을 돌이켰다. 신 고수는 "애국가 나오는데 울컥했어요. 가끔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우는 선수들 있잖아요. 왜 그러는지를 알겠더라고요. 1등을 하면 태극기 높게 올라가고, 애국가 연주되는데 거기서 오는 감동은 서본 사람만 알 겁니다"라고 말했다.

신 고수는 모든 시상식을 진지하게 임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 태극기, 경기장에서 나오는 애국가를 들으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가슴에 달린 태극기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행철 고수가 1시간 27분 22초의 기록으로 하프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이우섭 기자신행철 고수가 1시간 27분 22초의 기록으로 하프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이우섭 기자
"고수는 전략이 없어요. 훈련이 안 돼 있으면 이런저런 전략이 있지만."

'세계 1위'니까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신 고수는 이 말을 하며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신 고수는 무슨 상황에서도 핑계를 대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꾸준하게 준비를 해왔으니, 어떤 변수에도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일례로 하프마라톤 경기를 앞두고 대구 지역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 출발 30분 전, 하늘은 맑아졌지만 비가 그치기 전까지는 경기 진행 여부를 따져봐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신 고수는 "비가 오니까 저는 오히려 좋다. 대구 날씨가 너무 덥다. 날씨는 모두에게 같은 조건이다. 날씨에 대해서는 핑계 댈 게 없다"고 말했다.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해서 특별히 불평하지 않았다. 경쟁자가 강하다고 해서 물러서지도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놓았다면, 다른 것들은 핑계로 삼지 않았다.

이우섭 기자이우섭 기자
젊은 러너에게 신 고수는 어떤 존재일까.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본 러너들에게 생각을 물었다.

하프마라톤을 함께 뛴 45세 그룹 김창국씨는 당시 레이스를 이렇게 기억했다.

"반환점까지는 4분 페이스로 달렸고, 그 후에 선배님의 페이스가 4분 25초~30초까지 밀리더라고요. 그런데 16~17㎞ 지점 지나니까 갑자기 4분 10초 페이스까지 올리셨어요. 저도 포기하고 싶었는데, 선배님께서 포기를 안 하시니까 열심히 뛰게 됐습니다."

신홍섭씨도 신 고수와 함께 뛸 수 있었던 것을 특별한 경험으로 삼았다.

"러닝하는 분들 중에 신행철 선배님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워낙 유명하시잖아요. 올해에는 세계 기록을 세우셨고, 이번 대회 3관왕을 차지하신 것도 알고 있어요. 같이 뛸 수 있었던 게 영광입니다."

신 고수의 레이스를 보기 위해 일부러 경기장을 찾은 러너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박빙이어서 '1등을 하실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끝까지 선두를 지켜내시는 모습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가 근접하기도 힘든 기록을 갖고 계십니다. 저도 신 선생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잘 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활짝 웃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활짝 웃는 신행철 고수. 이우섭 기자
지난 6월 인터뷰 당시, "언제까지 달리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신 고수는 짧게 답했다.

"달리기에 은퇴 시기가 어디 있습니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지."

금메달은 더 이상 신 고수에게 목적지가 아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러닝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것.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묵묵하게 뛰는 것이 전부다. '세계 1위 비결'을 묻는다면 아마 거창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뭐…그냥 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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