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의 관세 인상 압박에 대응하는 협상 카드로 출발한 2천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가 발전소와 원전, LNG 등 대규모 프로젝트로 구체화했다. 이제 관건은 '실익'이다.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하면서 국내 기업의 수주와 미국 시장 진출, 에너지 안보 등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첫 사업부터 '수익성' 따졌다…실제 구매계약이 성패 좌우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정부가 대미투자 협상에서 최우선으로 내세운 원칙은 '상업적 합리성'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존속기간 내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가'를 핵심 기준으로 봤다"며 "가스발전소는 40년 이상, 원전은 60년 이상 운영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업보다 원리금 회수 측면에서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협상 과정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사업 가운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제외한 사례도 있었다. 민간 사업으로는 수익성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 자금이 투입되는 전략투자인 만큼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여러 검토 끝에 첫 사업으로 선정된 것이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의 가스복합화력 발전 프로젝트다. 한국 정부가 총사업비 223억달러를 투자해 6.472GW(기가와트) 규모의 발전설비를 건설한다. 2029년 1단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32년 전체 설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전력수요 증가와 예상 전력가격 등을 토대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 장관은 이 사업의 내부수익률(IRR)을 약 15%로 예상하면서 전력가격 급락이나 건설 과정의 변동 등 주요 가정을 달리한 분석에서도 원리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수익구조의 핵심은 '톨링(Tolling)' 방식의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이다. 가스비 등 발전에 들어가는 변동비는 전력 구매자가 부담하고 발전소는 실제 발전량이 아닌 약정 설비용량을 기준으로 고정요금을 받는다. 연료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면서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구조다.
원리금 회수 기준에는 장기간 투자에 따른 이자도 포함된다. 미국 국채 20년물 금리에 사업별 가산금리를 더한 간주이자율을 적용하고 이자는 복리로 계산한다. 단순히 투자원금만 회수하면 끝나는 구조가 아니다. 장기간 누적되는 이자까지 포함하면 원리금 회수를 위해 필요한 명목상 회수액은 원금의 2배를 웃돌 수 있다.
김 장관은 "가스 가격은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를 전력가격 구조를 통해 상쇄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전력 구매처인 데이터센터가 제공하는 고정가격을 토대로 안정적인 현금 유입이 가능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변수는 아직 PPA를 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력을 살 수요자와 구체적인 계약조건은 정해지지 않았고 정부가 제시한 PPA 체결 예정 시점은 2027년이다. 결국 실제 계약가격과 조건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어 공급자에게 유리한 여건인 만큼 서둘러 가격을 고정하기보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구매자를 찾겠다는 입장이다. 최소 40년간 운영되는 사업인 만큼 작은 전력가격 차이도 장기간 누적되면 전체 수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미국 정부도 PPA 체결을 적극 주선하기로 했다.
리스크 풀링·그로스업…안전장치는 마련했지만
개별 사업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협상에 반영했다. 대표적인 것이 '리스크 풀링'이다. 하나의 우산형 투자목적회사(I-SPV)에서 전체 사업의 투자금과 수익을 통합 관리하고, 개별 사업은 I-SPV가 출자한 프로젝트별 P-SPV를 통해 추진한다.
한국이 전체 프로젝트의 원리금을 모두 회수할 때까지는 모든 사업의 한미 간 수익 배분 비율을 5대5로 유지한다. 당초 원리금 회수 이후 적용되는 1대9 배분으로의 전환을 전체 투자금 회수 때까지 미루는 구조다.
예컨대 텍사스 발전소에서는 원리금을 모두 회수했더라도 원전 등 다른 사업에 아직 회수하지 못한 투자금이 남아 있다면 텍사스 사업의 수익도 계속 5대5로 나눈다. 먼저 성과를 낸 사업의 한국 몫을 줄이지 않고 다른 사업의 미회수분까지 보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금으로 실제 수령액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그로스업(gross-up)'도 도입했다. 한국 측이 미국에 내는 소득 관련 세금을 배분금에 가산해 세후 기준에서도 한미 간 합의한 배분비율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총 2천억달러, 연간 200억달러라는 투자 한도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운영계약에 명시하기로 한 것도 추가 부담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다. 이번 전략투자는 지난해 합의한 총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가운데 조선 협력 1500억달러를 제외한 범위에서 추진된다.
사업성이 훼손될 경우에는 정부 간 협의를 통해 사업계획과 예산, 양국 간 배분비율 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 등에 대한 정보권과 사업범위의 중대한 변경 등에 대한 동의권도 확보했다.
다만 이런 장치가 투자 손실 자체를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리스크 풀링은 한 사업의 부진을 다른 사업의 수익으로 보완하고, 그로스업은 세금에 따른 실수령액 감소를 막는 장치다.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에 부진해 배분할 수익 자체가 줄어들면 손실은 발생할 수 있다. 개별 사업의 수익성을 계속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원전은 '수익+수주' 겨냥…APR1400 美 진출 길 열어
AI 생성 이미지원전 프레임워크는 투자수익뿐 아니라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함께 겨냥한다. 정부는 한국형 APR1400 2기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 등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에 최대 1200억달러를 활용하는 협력 틀을 마련했다. 약 1천억달러는 건설비, 나머지 200억달러는 공사비 증가에 대비한 예비비다. 예비비는 실제 사용하지 않더라도 대미투자 이행액으로 인정된다.
핵심은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기존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 간 타협협정(SA)에 따르면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은 제한돼 있다.
이번 프레임워크에는 전략투자기금을 활용한 APR1400 2기의 미국 건설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산업부는 기존 SA로 미국 내 APR1400 진출이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미국 정부·주정부·의회 등을 상대로 협상을 벌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건설로 이어지면 상징성도 크다. 1978년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기반으로 고리 1호기를 가동했던 한국이 약 반세기 만에 자체 개발한 APR1400을 미국에 건설하게 된다. 미국에서 원전 기술을 도입했던 한국이 '원전 종주국' 미국 시장에 자체 노형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확보한 실적은 향후 제3국 원전 수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기회는 APR1400 2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P1000 6기 건설에도 한국 시공사와 기자재 기업이 참여한다. 미국의 원전 기술과 한국의 시공·제작 역량을 결합해 현지 원전 공급망에 진입하고, 향후 제3국 공동 진출로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추진한다.
원전은 기자재 제작기간이 긴 만큼 관련 국내법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먼저 지급해 장주기 품목을 확보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한국산 기자재 활용 기회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원전 사업은 비용 증가 위험이 크다. 미국 보글 3·4호기는 당초 계획보다 가동이 약 7년 늦어지고 총사업비도 140억달러에서 약 350억달러로 늘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공사 지연과 비용 증가는 투자수익을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무엇보다 이번 프레임워크가 원전 8기의 개별 투자를 확정한 것은 아니다. 부지와 사업구조, 건설 일정 등이 구체화되면 사업별로 상업적 합리성을 다시 검토하고 국회 절차 등을 거쳐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 결국 APR1400의 미국 진출과 AP1000 공급망 참여가 실제 계약과 국내 기업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원전 투자의 실익을 가를 전망이다.
알래스카 LNG는 자원안보까지…경제성 검증은 전제
알래스카 LNG 사업은 투자수익에 에너지 안보라는 전략적 가치까지 함께 노린다. 알래스카 북부의 천연가스를 남부로 운송하는 대규모 파이프라인과 해외 수출용 LNG 터미널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현재는 투자를 확정한 것이 아니라 상업적 합리성 검토에 착수하는 단계다.
김 장관은 과거 이 사업에 부정적이었다.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에너지 안보 측면의 가치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으로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카타르 등 중동산 LNG가 지나는 호르무즈해협과 아시아로 향하는 주요 해상 수송로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북미에서 직접 들어오는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공급망 다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장관은 "북미 서해안이나 캐나다, 알래스카에서 직접 들어오는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면서도 "전략적 의미가 있더라도 상업적 합리성이 없다면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업성 우려를 낮추기 위한 조건도 협상에 포함됐다. 사업을 추진할 경우 미국은 철강 등 관련 기자재에 관세 인하 혜택을 부여하고, 경제성 있는 조건의 장기 LNG 구매계약과 한국의 생산물량 우선 접근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기자재 수출과 장기적인 가스 조달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실제 실익은 세부 조건에 달려 있다. 관세 인하의 적용 품목과 폭, 장기 구매계약의 가격과 기간, 우선 접근권의 물량과 이행 조건에 따라 경제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장거리 파이프라인 건설과 혹독한 기후 조건, 인력 확보, 인허가 비용 등도 따져야 한다. 미국 측은 약 670억달러 규모의 사업비를 제시했지만 텍사스 발전소와 원전 사업 등을 단순 합산하면 전체 2천억달러 투자 한도를 넘어선다. 정부는 미국 측의 사업 규모 조정안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알래스카 LNG를 추진하더라도 총 2천억달러, 연간 200억달러라는 투자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수익성 나빠도 철수엔 통상 부담…끝까지 '상업적 합리성' 관건
대미투자의 본질적인 변수는 이들 사업의 출발점이 순수한 투자가 아니라 관세협상이었다는 점이다. 개별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악화되더라도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투자 결정을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장관은 사업성이 나빠지면 출자를 중단하거나 철수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이 경우 MOU에 따라 미국이 관세를 올릴 수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상업적 합리성이 무너지면 투자를 중단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실제로 그 선택을 하는 순간 다시 통상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는 구조다.
이번 프로젝트 발표문에 기존 15% 관세 유지가 직접 명시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김 장관은 "이번 프로젝트 발표에 관세 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미국 측 입장이 있었다"며 "기존에 합의한 15% 관세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 현재 미국 정부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대미투자의 성패는 협상 과정에서 마련한 안전장치를 실제 수익과 국내 산업의 몫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렸다. 텍사스 발전소에서는 경쟁력 있는 PPA를 확보해야 한다. 원전에서는 APR1400의 미국 진출과 국내 기업 수주를 현실화해야 한다. 알래스카 LNG에서는 에너지 안보의 가치를 경제성 있는 공급조건으로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사업성이 악화됐을 때 통상 부담 때문에 투자를 계속하는 상황도 경계해야 한다. 관세 방어를 위해 시작한 투자가 장기적인 재정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개별 사업마다 '상업적 합리성' 원칙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느냐가 2천억달러 대미투자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김 장관은 "프로젝트가 틀어지면 언제든 통상 문제로 넘어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끊임없이 관리하고 한미 통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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