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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술로 원전 짓던 한국…반세기 만에 종주국에 '역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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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원전' 2기 美 건설 추진…웨스팅하우스 협정 개정키로
美 전력수요 급증에 韓 시공·공급망 주목…유럽 공동진출도 기대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인수 추진…AP1000에도 韓 기업 참여
개별 사업·기술료는 추가 협의…美 건설 실적 확보가 관건

부산 기장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왼쪽부터 고리1호기, 고리2호기) 이미지. 한수원 제공 영상 화면 캡처부산 기장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왼쪽부터 고리1호기, 고리2호기) 이미지. 한수원 제공 영상 화면 캡처
미국 기술로 첫 원전을 지었던 한국이 약 반세기 만에 '원전 종주국' 미국에 한국형 원전(APR1400)을 역수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 원전의 미국 진출을 막아온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정을 대미 전략투자를 지렛대 삼아 개정하고, APR1400 2기의 현지 건설을 추진하기로 하면서다.

개별 사업 확정과 실제 건설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미국 진출이 성사되면 기술을 공급받던 한국이 자체 노형과 축적된 시공 역량을 앞세워 기술 공급국의 본토 시장에 진출하는 전환점이 된다. 미국에서 쌓은 실적을 토대로 유럽 등 제3국 수주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1978년 美 기술로 시작한 한국 원전…APR1400로 본토 진출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이 마련한 '원전 프레임워크'는 대미 전략투자 자금 최대 1200억달러를 활용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원전 협력 구상이다. 웨스팅하우스 노형인 AP1000 6기와 한국형 원전 APR1400 2기를 짓는 내용이다.

한국의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1호기는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로 건설돼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미국 기술을 들여와 원전 산업을 시작했던 한국이 이제 자체 노형과 시공 역량을 앞세워 미국에 원전을 짓는 파트너로 나서는 셈이다.

APR1400은 국내 원전의 설계·건설·운영 경험을 토대로 개발한 대형 가압경수로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수출됐고 2019년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도 획득했다.

히자만 미국 시장 진출은 막혀 있었다.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타협협정(SA)에 따라 APR1400을 미국에 건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프레임워크에는 대미 전략투자 기금을 활용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APR1400 2기의 미국 건설을 허용하도록 기존 SA를 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 정부는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 의회, 업계를 다각도로 접촉하며 협상의 돌파구를 찾았다.

협상 과정에서는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을 경쟁 확대 요인으로 보는 웨스팅하우스 측의 경계심도 상당했다고 한다. 웨스팅하우스 측으로부터 '당신 같으면 당신 물건보다 좋은 물건이 우리 시장에 들어오는 걸 허용하겠냐'는 취지의 말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원전의 미국 진출이 APR1400 2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 사업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 원전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美 AI 전력난에 원전 시공·공급망 필요…한미 이해 맞아떨어져

한국형 원전의 미국 진출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미국 원전 산업이 처한 현실도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 필요성이 커졌지만, 실제 원전을 지어낼 시공사와 기자재 공급망 확보가 과제로 꼽힌다.

웨스팅하우스가 원전 설계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발전소로 구현하려면 설계·조달·시공(EPC) 역량과 기자재 공급망이 필요하다. 원전 설계부터 기자재 제작, 시공까지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를 갖춘 한국과의 협력이 미국에도 필요한 이유다.

미국 원전 건설의 어려움은 AP1000을 적용한 보글 3·4호기에서도 드러났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의 '2025년 국가별 원전도입 및 수출 동향분석'에 따르면 두 원전은 당초 계획보다 약 7년 늦은 2023년과 2024년 각각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총사업비도 당초 140억달러의 2.5배인 350억달러로 불어났다.

반면 한국은 국내 원전 건설을 통해 설계와 기자재 제작, 시공을 연결하는 공급망을 유지해왔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원전 사업에 참여하면 공급업체 확보와 공정 관리 측면에서 미국 원전 건설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막에 세운 UAE 바라카 원전은 한국 원전 산업의 해외 시공 경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해외에서 대규모 원전을 건설하고 상업운전까지 연결한 경험은 미국 측에도 한국의 시공 역량을 보여주는 근거가 됐다.

미국은 한국의 시공·제조 역량을 활용해 신규 원전 건설을 확대하고, 한국은 이를 발판으로 그동안 막혀 있던 미국 원전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지점이다.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 추진…美 넘어 제3국 공동진출 노린다

미 펜실베이니아의 웨스팅하우스 본사. 연합뉴스미 펜실베이니아의 웨스팅하우스 본사. 연합뉴스
파급효과는 APR1400의 미국 진출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프레임워크에는 AP1000 건설에도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우선 고려하고 한국 측이 참여 기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APR1400을 미국에 수출하는 동시에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공급망에도 국내 시공사와 기자재 기업이 참여하는 길을 넓히는 것이다. 미국에서 협력 경험을 쌓으면 웨스팅하우스가 추진하는 유럽 등 제3국 원전 사업으로 공동 진출할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도 추진된다. 프레임워크에는 웨스팅하우스 보통주 5~10%를 기업공개(IPO) 가격보다 10% 할인해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원전 건설 참여뿐 아니라 AP1000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까지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지분율을 놓고는 이사회 참여 문제가 맞물렸다. 10% 이상 지분을 확보할 경우 이사회 참여가 가능해지는데, 웨스팅하우스 최대주주 측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지분 인수는 이사회 참여 기준에 미치지 않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인수 비율과 구체적인 투자 조건은 추후 기업 간 협상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합의 역시 원전 8기의 건설이 곧바로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별 원전의 부지와 사업구조, 일정 등이 구체화되면 사업별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내 절차를 거쳐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기술료와 역무, 핵연료 등을 포함한 미국 사업 참여 대가도 기업 간 추가 협의 사항이다. 기자단 참고자료 역시 관련 대가는 추후 기업 간 협의로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건설은 AP1000 2기를 먼저 추진한 뒤 APR1400 2기와 AP1000 2기를 함께 추진하고, 마지막으로 AP1000 2기를 추가하는 순서다.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의 EPC 계약 시차는 6개월 이내가 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APR1400의 실제 미국 진출 시점과 조건을 구체화할 후속 협상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 현장에서 한국 원전의 시공·공급망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은 그다음 과제다. 미국 기술로 원전 산업을 시작한 한국이 약 반세기 만에 자체 노형을 미국에 역수출하고, 미국에서 쌓은 실적을 다시 세계 시장 수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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