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 플라타너스. 양형욱 기자오랜 세월을 간직한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가면 100년 넘은 은행나무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선 효자로 가을단풍길이 나온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플라나너스길로, 최근 러너들 사이에서는 경복궁 주변을 강아지 모양으로 뛰는 '댕댕런' 코스로도 유명하다.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 서 있는 높이 22m의 플라타너스도 이 길을 지켜온 100살이 넘은 나무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둘러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이 커다란 나무의 밑동에는 검게 썩은 쐐기 모양의 상처가 깊게 파여 있다.
종로구는 이 나무를 포함해 효자로 터줏대감인 플라타너스 세 그루를 5일 베어내려다 일정을 잠시 미뤘다. 구청이 나무를 적극 치료하거나 주민 안내·의견 수렴하는 과정 없이 성급히 벌목부터 추진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청은 가로수 안쪽이 썩어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주일 전 벌목 통보…구도 '안내 부족' 인정
서울환경연합 제공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종로구는 지난달 28일 효자로 플라타너스 세 그루에 대한 벌목 계획을 통보했다. 벌목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단체는 지난 8월 31일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재검증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냈지만, 한 달 가까이 답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종로구는 CBS노컷뉴스에 "주민들에게 알리는 시간이 다소 부족했던 점, 올해 태풍이 서울 지역에 영향을 줄 우려가 낮은 점 등을 고려해 당초 10월 5일 예정이었던 제거 계획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다만 주민과 충분히 소통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면서도, 같은 답변에서 전문가 진단 기준을 최우선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의견 수렴으로 조치 여부나 시기를 조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가로수들 내부가 심하게 썩어 제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바꾸지 않았다.
두 달 새 엇갈린 판정…오락가락 기준 비판
서울환경연합이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자료를 보면 종로구는 지난 7월 효자로 가로수를 육안으로 조사한 뒤 상태가 나쁜 나무를 골라 훼손 없이 나무 내부를 살피는 비파괴 정밀진단을 진행했다. 종로구에 따르면 이때 위험 판정을 받은 플라타너스 여섯 그루 가운데 E등급 두 그루는 8월에 베어졌다. 종로구는 나머지 D등급 네 그루는 다른 나무병원에 맡겨 9월 다시 진단했다.
두 달 사이 결과는 크게 달라졌다. 1차 진단에서 나무 내부가 썩거나 비어 결함이 발생한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인 '비율예상결함면적비율'이 32%와 34%였던 두 그루는 재진단에서 45%와 42%로 각각 뛰었다. 반대로 청와대 사랑채 앞 플라타너스는 1차 때 단층촬영 없이 줄기가 14도 기울었다는 이유로 D등급을 받았다가, 재진단에서 35%로 C등급을 받아 존치로 바뀌었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8월에는 예상결함면적비율이 37%라는 이유로 나무가 베어졌다며 구청이 '고무줄 기준'으로 벌목 결정을 내린다고 비판한다. 조해민 생태도시팀 활동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결국 구청에서 (벌목이라는) 결과를 정해놓고 진단 조사를 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종로구는 예상결함면적비율이 나무의 한 단면을 잰 값이어서 측정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기울기와 무게중심, 뿌리 상태까지 종합해 판단한다고 해명했다. 다만 두 차례 진단에서 측정 위치가 어떻게 달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환경단체는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하는 현장 재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1.3m 식재대에 갇힌 100년 나무…관리는 부실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 플라타너스 식재대. 양형욱 기자애초 가로수가 이렇게 '위험'해지기까지 종로구의 관리 책임도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벌목 대상 세 그루는 모두 약 1.3m 폭의 좁은 식재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줄기는 매해 굵어졌지만 뿌리가 뻗을 흙은 그만큼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활동가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좁은 식재 공간, 보도블록과 연석의 압박, 강전정 등으로 (구청은) 나무가 병들도록 방치해놓고 위험해지니 베어내겠다는 것은 관리 실패의 책임을 나무와 시민에게 떠넘기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자연환경 생태복원을 전공한 국립대 조경학과 A 교수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뿌리가 살기 어려울 만큼 생육 공간이 좁고, 굵게 웃자란 가지가 많아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고 진단했다.
가로수들을 남기려면 플라타너스 주변 2~3m의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을 걷어내 물이 스미는 구조로 바꾸고, 수관을 주변 은행나무 높이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A 교수는 나무의사가 쓰러질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면 따르는 게 맞다는 의견도 함께 냈다.
종로구는 이와 관련해 해당 보도가 좁고 통행이 많아 보조 시설 설치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수관 축소는 가로수 기능을 해치고 2차 부후를 부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존치하는 사랑채 앞 나무에는 내년 1월부터 수관을 솎거나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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