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금메달을 따낸 뒤 대표팀 주장 이기혁이 방송사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들어 보인 모습. KBS 중계 화면 캡처 그토록 고대하던 금메달을 땄는데 초상집 분위기다. 우승을 위해 흘렸을 땀과 눈물의 가치가 철없이 놀린 세치 혀와 SNS질로 칭찬은커녕 오히려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언행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숙적 일본을 꺾고 4회 연속 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뤄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아니 비난 여론이 역대 어느 대회 때보다 뜨겁다.
2000년생 이기혁(강원)은 경기 후 방송 인터뷰에서 "(금메달이) 어때요, 무거워요?"라는 취재진 질문에 금메달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군대 안 갑니다"고 답했다. 대표팀 주장이라 23살 이하 선수들보다는 그래도 생각이 깊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걸. 물론 인터뷰 당시 분위기도 살펴야 하지만 "9일 뒤에 군대 갈 뻔했다"는 발언과 맞물려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20살 양민혁(KVC 베스테를로)은 더했다. "메달이냐 트로피냐가 중요하지 않았다"면서 "군 면제라는 보상이 있어서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다"는 인터뷰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일본과 결승전에서 투혼의 크로스로 엄지성(스완지 시티)의 결승골을 도운 공을 스스로 까먹은 실언이었다.
박승수(뉴캐슬)는 자신의 SNS에 전역모를 쓰고 미소를 짓는 사진을 올렸다. 실제로 군 생활을 마친 예비역처럼 삐딱하게 모자를 썼다. 실제 예비역이야 껄렁껄렁해도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만큼 주위에서 어느 정도 눈을 감아주기 마련. 그런데 짬밥을 단 한번도 먹지 않은 19살 대표팀 막내라면 예비역들의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다.
박승수 SNS
사실 앞서 금메달을 따낸 야구 대표팀도 아슬아슬하긴 했다. 김도영(KIA), 곽빈(두산) 등 프로야구 정예들이 나선 대표팀은 사회인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0-5 완패를 당한 뒤 결승에서 간신히 3-1로 이기면서 5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주장 노시환(한화)은 한국 야구 경쟁력 약화에 대한 질문에 "그런 말들은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어쨌든 우리가 금메달을 땄지 않나"라면서 "과정보다는 금메달이라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아시안게임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나라를 대표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대회가 아니라 개인의 군 면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렇게 점화된 아시안게임 병역 혜택 논란에 축구 대표팀이 기름을 쏟아부은 격이다. 아시안게임 성화가 꺼지기도 전에 한국에서 더 큰 불길이 번진 형국이었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해당 선수들의 사과에도 민심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국회의원들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장 병역 혜택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방부 강신철 장관은 "병역 특례는 점진적 축소, 궁극적 폐지가 국방부의 목표"라고 공언했고, 체육계를 대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조차 "당연히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물론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혜택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1998년 방콕 대회부터 프로 선수들이 출전한 야구에서 불거졌다. 1998년 당시 메이저 리그(MLB)에서 뛰던 박찬호까지 최강 전력을 꾸렸고, 2010년 광저우 대회 때는 추신수(이상 은퇴)도 병역 혜택을 받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을 따낸 뒤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 노컷뉴스 2014년 인천 대회 때는 각 구단들의 나눠먹기식 대표 선발로 논란이 촉발됐다. 군 입대를 코앞에 둔 20대 후반의 각팀 주전급 선수들이 나섰는데 부상을 당해 제대로 뛰지 못했음에도 금메달에 따른 혜택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군 입대를 미루고 나이가 꽉찬 선수들이 또 나섰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대표팀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에 나서는 홍역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이전 대회에서는 나라를 위해 뛴다는 명분과 최소한의 '염치'라는 게 있었다. 박찬호는 병역 혜택을 받은 이후에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며 2006년 4강 신화, 2009년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2014년 인천 대회 금메달을 따낸 뒤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 고참 선수는 "많은 팬들에 대해 정말 미안했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일부 선수들의 표현은 국가대표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다. 가슴에는 태극기를 달고 있지만 마음에는 전역모만 품고 있는 것 같다. 금메달을 따고 나니 태극 마크마저도 새털처럼 가볍게 날릴 것만 같다.
사실 인간인 이상 병역 혜택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대표라면 태극 마크의 무게를 먼저 느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동시에는 떠올려야 한다. 국가대표의 선전을 위해 세금과 응원,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선수들의 발언, 솔직한 건 좋지만 어느 정도 걸러야 하는데 너무 적나라하다. 병역 혜택을 받아 기쁜 건 알겠지만 군인이거나 군대에 가야 하는 일반인이나 이들의 부모님 등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자신들이야 혜택을 보겠지만 철없는 언행들로 인해 운동을 하는 후배들이 당장 피해를 입게 될 판이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야구 대표팀 노시환이 귀국 기자 회견에서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체육계의 병역 혜택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가뜩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가운데 우수한 인재들이 전성기를 보내야 각 종목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인 까닭이다. 그나마 KBO 리그가 최근 몇 년 동안 흥행 열풍을 일으킨 데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혜택을 받은 젊은 선수들이 지탱한 부분도 적잖다.
그런 야구는 물론 축구, 농구, 배구 등 프로 종목은 이미 외국인 선수는 물론 아시아 쿼터까지 늘어나는 상황. 그만큼 어린 선수들이 부족한 까닭이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종목에서도 병역 혜택은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다. 한 체육계 인사는 "점점 체육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나마 비인기 종목의 저변을 유지할 수 있는 한 원인"이라고 짚기도 했다.
국위 선양이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박찬호, 추신수는 물론 김병현(은퇴), 류현진(한화) 등 메이저 리거와 한국 축구 최고 스타인 손흥민(LA FC),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이 병역 혜택을 통해 전성기를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보내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이런 가운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들의 일부 신중하지 못한 언행은 한국 체육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물론 체육계 병역 혜택은 지난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도입된 제도로 독재 정권을 위한 홍보 수단의 목적도 있었을 터. 50년이 넘는 만큼 요즘 세대의 눈높이에 맞게 개선돼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고, 정부에서도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 나갈 계획이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부족 때문에라도 필연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 선수들의 설화로 생긴 부정적인 여론에 병역 혜택은 더 크게 줄고, 시기도 더 빨라지게 된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대한체육회 유승민 회장은 아시안게임 귀국 해단식에서 "일부 선수들의 경솔한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국민 여러분과 국군 장병 여러분께 체육회를 대표해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 회장 역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복식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았고, 선수 생활이 끊길 위기를 넘겨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이라는 찬란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대표팀 선수들이 기념 촬영한 모습. 최준용(왼쪽부터 시계 방향), 장재석, 이승현 등 2014년 인천 대회 최종 명단 제외의 아픔을 겪은 고참 3인방은 12년 만에 아쉬움을 풀어냈다. 연합뉴스 이번 대회 남자 농구 대표팀의 금메달을 이끈 주장 이승현(울산 현대모비스)의 묵직한 발언이 그래서 더 뚜렷하게 떠오른다. 이승현은 금메달을 따낸 2014년 인천 대회 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빠져 상무에서 군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2018년, 2023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30대 중반인 올해도 나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과 결승 뒤 이승현은 "자카르타-팔렘방(동메달), 항저우 대회(7위) 등 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었고, 국가대표를 하면서 정말 우승하는 일이 안 일어나나 했다"면서 "그런데 그게 오늘이 됐고, 농구 인생의 마지막 목표였는데 달성해서 너무 기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현중(포틀랜드), 이정현(고양 소노), 유기상(창원 LG) 등 병역 혜택을 받는 후배들에 대해서는 "10년 이상 한국 농구를 발전시킬 선수들"이라면서 "나는 많은 걸 못 누리겠지만 앞으로 어린 선수들은 책임감 있게 잘 해서 많이 누렸으면 좋겠다"고 주장다운 말을 꺼냈다.
이것이 바로 국가대표의 품격이다. 세치 혀를 잘못 놀리고, 치기어린 SNS 사진질로 후배들의 앞길을 막은 일부 선수들. "우리는 많은 걸 누리겠지만 너희들은 누리지 못하겠구나~" 이렇게 얘기할 텐가? 해당 선수들은 물론 이들의 발언과 생각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뼈저리게 느껴야 할 대목이다.
*임종률의 S담쓰談 - 취미와 직업을 넘어 人生이 된 Sports에 대한 담론. 그렇다고 너무 거창하거나 딱딱하기 않게 달달하고(Sweet), 담백하게 풀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 늘 즐거울 수만은 없는 법. 상처는 쓰다듬겠지만 때로 웅담처럼 쓰디쓴 이야기(談)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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