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호의 피로 물든 운동화(사진 왼쪽)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의 황영조. 황영조 SNS 영상 캡처·대한체육회 자료 사진'몬주익의 영웅' 황영조(56)가 아시안게임(AG)에서 '핏범벅 운동화'로 화제가 된 박민호(27·국군체육부대)를 만났다.
박민호는 지난달 26일 일본 나고야 도로 코스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G 남자 마라톤에서 발이 찢어진 채 42.195km 풀코스를 완주(2시간 15분 35초)했다. 골인 지점을 통과했을 때 그의 운동화는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피범벅 운동화'는 울림을 줬다.
두 마라토너의 만남은 후배를 격려하기 위한 황영조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황영조는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SNS) 채널(영조형)에 "핏빛 투혼 박민호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이 영상에서 "신발을 흥건하게 젖게 만든 피를 보면서 어떻게 끝까지 완주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핏빛 질주가 메달 딴 것보다 더 이슈가 되고 박수를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박민호는 그날의 레이스를 상세히 전했다. 그는 "10km 정도 지날 때부터 발에 안 좋은 느낌이 있었다. 중반을 지나 피가 고이고 피부가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25km 지점부터는 엄지발가락으로 디딜 때 피부가 발톱 쪽으로 계속 말려 올라가 통증이 너무 심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피부 표면이 벗겨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엄지발가락 부분이다 보니 추진력을 내기 힘들었다. 몸이 안 따라주니 답답했다"며 "(통증 때문에) 도저히 딛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앞에 가는 선수들을 잡으려고 뛰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다"고 덧붙였다.
황영조도 30년 전 경기 중 발바닥 찢어지는 부상
박민호(사진 왼쪽)와 황영조. 황영조 SNS 영상 캡처
부상 당시의 감정에 대해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페이스 유지가 안 됐다. 복잡한 감정이 생겼지만 무조건 완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여기까지 왔는데 1km, 한 발 한 발이 결국에는 마지막(골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뛰었다"고 전했다.
완주 결심의 원동력으로는 팬들의 응원을 꼽았다. "주로에서 많은 팬들이 응원해 주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응원을 듣고 힘을 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황영조는 박민호의 AG 기록에 대해 "부상 상황에서 15분대에 골인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기록이다. 잘 뛴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뒤 은퇴한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되짚었다. "나도 마라톤 대회에서 발바닥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신발이 피에 흥건하게 젖을 정도였다. 부상으로 마라톤 인생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신발을 오픈하지는 않았다."
황영조는 실제 30년 전인 1996년 3월 24일 열린 동아국제마라톤에서 잊지 못할 사고를 당했다. 선두 그룹을 형성하며 달리다 27㎞ 지점에서 발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것. 당시 레이스를 이탈했다가 다시 일어나 달렸지만 29위(2시간 25분 45초)로 골인했다.
제주도, 韓 마라톤 중심 등도 닮은 꼴
황영조(사진 왼쪽)와 박민호의 경기 장면. 황영조 SNS 영상 캡처
박민호는 목표 기록을 묻는 질문에 "한국 신기록"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은 2시간 10분 13초다. 한국 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도쿄 국제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07분 20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황 감독님이 선수 시절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운동에 몰입하셨던 것처럼 열심히 집중해서 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핏빛 투혼에 대한 관심이 칭찬이라기보다는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한다. 위로와 격려를 에너지로 삼아 2030년 카타르 AG에서는 메달을 목에 걸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황영조는 "민호는 한국 마라톤의 중심 선수다. 대한민국 마라톤은 민호 없이는 얘기가 안 된다"며 "박민호가 살면 한국 마라톤도 살아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운동하라"고 후배를 격려했다.
그는 또 △'피범벅 운동화' 투혼 △제주도(박민호의 고향·황영조 어머니의 고향) △한국 마라톤의 중심 선수 등 3가지 공통점을 들며 박민호와 '평행이론'이 성립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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